언제부턴가 ‘강남 불패’라는 말 대신 ‘대세 하락’이란 표현이 더욱 익숙하다.

빚을 잔뜩 안고서라도 사두기만 하면 시세 차익이 보장되던 한국, 특히 강남 부동산의 상승세가 꺾이면서 하락론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강남 부동산 침체의 핵심은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기존 아파트 단지들이다. 반면 새로 분양한 신규 아파트들은 여전한 ‘강남 수요’를 증명하며 청약 열기를 잇고 있다. 기업과 자본이 몰려들면서 빌딩도 고액 자산가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과 청담동 상가들도 요즘 웃고 있는 강남 부동산 중 하나다.
[부동산 불패 강남의 ‘두 얼굴’] 재건축 단지 '강남 불패' 신화 깨지다
‘강남·서초·송파’는 한데 모아 ‘강남3구’라고 불린다. 기업과 자본, 심지어는 강북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통했던 문화까지 죄다 끌어들이면서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성장한 강남을 빗대어 부르는 표현이다.

강남이 서울의 ‘한강 이남’ 지역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이들 세 개 구를 중심으로 한 특수 지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돈의 힘, 즉 자본의 집중에서 기인한다. 특히 부동산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해 강남권의 부동산은 ‘불패 신화’라는 말을 낳으며 승승장구해 왔다. 시세의 90%까지 대출을 끼고 사도 결국엔 급등한 가격이 상환해야 할 원리금을 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가 만연하게 된 배경이다.

지금도 강남 부동산은 대한민국 부동산 경기와 투자의 바로미터 역할을 맡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시작된 전세난이 강북과 판교로, 다시 분당에서 수도권, 마지막에는 전국으로 확대되는 식이다. 하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강남 부동산도 변화의 바람을 맞기 시작했다. 미국의 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끝을 알 수 없었던 부동산 활황이 꺾이기 시작한 것이다. ‘학군’으로 상징되는 이주 수요 등 ‘강남은 다르다’는 인식이 깨지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1번지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올 3월 초까지 서울 강남구의 아파트 가격이 매달 400만 원 이상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 동안 강남구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11억5507만 원에서 11억385만 원으로 5122만 원 하락했다. 한 달 평균으로 치면 427만 원으로, 통계청이 지난해 4분기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으로 계산한 427만 원과 우연히도 정확히 일치한다. 1년간 꾸준히 한 달 월급만큼 아파트 값이 날아갔다는 뜻이다.
[부동산 불패 강남의 ‘두 얼굴’] 재건축 단지 '강남 불패' 신화 깨지다
재건축 단지 ‘강남 불패’ 신화 깨지다

강남구에 이어 송파구도 월평균 353만 원이, 서초구도 117만 원이 떨어졌다.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59㎡는 지난해 3월 14억4000만 원이었던 것이 현재는 11억8000만 원으로 1년간 2억6000만 원이나 하락했다. 월평균 무려 2167만 원이 허공으로 사라진 셈이다.

우는 곳이 있으면 웃는 곳도 있다. 신규 분양된 아파트, 중·소형 빌딩, 떠오르는 상권에 자리한 상가 등이 대표적이다. 금융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올 2월까지 1년간 강남권에 새로 분양된 11개 아파트 중 7개 단지가 모두 1~3순위 안에 청약이 마감됐다. 5개 단지는 1순위에서 모집 가구를 채우는 기록을 세웠다. 11개 아파트 단지에서 일반 분양한 물량은 총 1315가구로, 평균 청약 경쟁률은 2.56 대 1을 기록했다. 일부 지방 부동산을 제외하고 서울에서 이 정도 청약 열기를 이어간 곳 역시 강남이 유일하다.

강남 부동산의 ‘양극화’ 내지 ‘차별화’는 신규 분양 아파트 외에도 ‘빌딩’이 주도하고 있다. 50억~100억 원대의 빌딩은 안정적인 임대 수익 외에도 강남 프리미엄을 통한 엄청난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사동·청담동 일대 빌딩이 지역의 인기를 바탕으로 자산가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강남권 ‘단독주택’도 몸값을 올리고 있다. 단독주택은 주택 자체보다 ‘나대지’ 개념으로 거래되는 게 일반적이다. 매입 후 건축물을 그대로 두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뜻.

나대지는 임대 수익도 없고 건물을 새로 지으려면 공사비도 추가되기 때문에 인근 지가에 비해 싸게 나온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건물 신축 후 임대 수익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부동산 좀 아는 사람은 기존 빌딩보다 단독주택을 찾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취재=장진원·우종국 기자
전문가 기고=채훈식 부동산1번지 실장·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
사진=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