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의 화려한 비상

지난해 9월 11일 강남 일대 빌딩 매매 중개인들 사이에선 “도대체 이런 거래가 말이 되느냐”는 말이 돌 정도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강남역 대로변의 한 빌딩이 3.3㎡당 무려 4억2465만 원에 팔린 것이다. 빌딩의 시세는 입지와 외관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총면적이 기준이다. 강남에선 3.3㎡당 1700만~2000만 원 사이가 평균적인 시세다. 4억 원이 넘는 가격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깨지기 힘든 역대 최고가 거래액이다.

위에 소개된 거래는 매우 특이한 사례이긴 하지만 현재 강남권 빌딩 투자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아파트 등 주택을 위주로 한 부동산 경기가 좀처럼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빌딩, 그중에서도 강남권 빌딩은 하루가 다르게 매매가가 치솟고 있다. 50억~100억 원 사이의 중소형 빌딩은 웬만큼 좋은 입지만 갖추고 있으면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갈 정도다. 강남 빌딩 매매·임대 전문가인 박종복 미소부동산컨설팅 대표는 “작년 하반기에 비해 빌딩 임대 거래가 30% 이상 빠졌다”며 “아예 건물을 사는 기업이나 개인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 경기와는 완전히 다른 사이클을 그리고 있는 곳이 바로 강남의 빌딩 투자다.
[부동산 불패 강남의 ‘두 얼굴’] 신사·청담동 일대 매매가 ‘쑤욱’
주택 경기와는 완전히 다른 사이클

일반적으로 빌딩 매매가는 총면적을 기준으로 뽑게 마련이다. 현재 강남에선 총면적 3300㎡(1000평) 빌딩의 매매가가 170억~200억 원 수준이다. 연 수익률로 치면 3% 정도. 반면 강북에선 같은 면적의 빌딩이라고 하더라도 연 수익률 6~7% 사이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수익률만 보면 강북이 강남의 2배에 이르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딩 투자에 관심 있는 자산가들이 유독 강남으로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강남의 지가 상승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10년 전 강남과 강북에서 똑같이 100억 원이었던 빌딩이 있다. 현재 이 빌딩의 한 달 임대 수익은 3000만~4000만 원 사이다. 반면 강북은 6000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 매매 시세는 강북 빌딩이 150억 원인데 비해 강남 빌딩은 250억 원을 호가한다. 10년 전과 비교해 2.5배 차이, 액수로는 100억 원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강북 빌딩은 월세로 1년이면 3억6000만 원인데, 10년 동안이라고 하더라도 36억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세는 100억 원 넘게 차이 난다. 일반적으로 월세는 지가 상승분만큼 급격히 오르지 않는 특징이 있다. 사정이 이러니 투자자가 강남을 고집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3~5년 전만 해도 도산대로변 빌딩의 3.3㎡당 시세는 8000만 원 수준이었다. 요즘은 1억8000만~2억 원 사이다. 강남권에서도 요즘 가장 ‘핫’하다는 가로수길은 5년 전 3.3㎡당 5000만~6000만 원 하던 시세가 현재는 1억3000만~1억5000만 원에 이른다. 강남대로변은 8000만~1억 원이던 것이 지금은 2억~2억3000만 원을, 테헤란로 일대는 1억5000만 원 수준이 현재 2억8000만~3억 원을 호가하고 있다.

강남이라고 해서 어디든 빌딩을 사두기만 하면 대박을 칠 수 있다는 환상은 금물이다. 공실률이 10% 이하로 비교적 낮은 곳이 많은 반면 반대로 공실률 30%가 넘는 빌딩도 있기 때문이다.

강남권에서 상대적으로 공실률이 높고 지가 상승이 더딘 곳은 역삼동·논현동·대치동·양재동·개포동 등이다. 역삼동은 대형 오피스 건물이 많아 한 개 층만 비더라도 공실 면적이 크게 느는 입지 특성이 있다. 역삼동을 제외한 논현동과 대치동 등이 신사동·청담동 등에 인기 면에서 밀리는 이유는 하나다. 그만큼 임대 수요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신사동과 청담동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트렌드세터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런 환경은 개인이나 기업이 다르지 않다.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선 이미 “신사동·청담동 소재 주소지가 찍힌 명함을 내밀었을 때와 아닐 때가 천지차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져 있을 정도다. 논현동과 청담동은 불과 도로 하나 차이지만 월세 100만 원을 더 들여서라도 청담동에 사무실을 얻겠다는 임차인들이 줄을 서 있는 게 요즘 강남의 풍속도다.

빌딩에 입주하는 임차인도 중요하다. 우선 상가가 많이 입점해야 인기 있는 건물이다. 지하에는 노래방·유흥주점이, 1층에는 편의점·커피숍·제과점이, 2층에는 커피숍·호프집이, 3층 위로는 업무 시설이 들어선 경우가 전형적인 세팅이다.

강남의 중소형 빌딩 매매에 나서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인근 부동산 중개인들의 말에 따르면 투자에 나선 자산가들의 연령이 상당히 ‘낮아졌다’고 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50대는 보기도 힘들었지만 최근에는 50~6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부동산 불패 강남의 ‘두 얼굴’] 신사·청담동 일대 매매가 ‘쑤욱’
전문 임대 사업자가 대부분

공식적으로 빌딩 매매에 나서는 이들은 개인과 기업이 5 대 5 수준이다. 하지만 법인을 따로 세워 투자할 때도 많기 때문에 중소형 빌딩은 개인 투자자가 조금 더 많다. 빌딩을 사들이는 개인은 대부분 전문적인 임대 사업자다. 하나의 건물을 종자로 몇 년 동안 받은 임대료를 꾸준히 모아 또 다른 건물을 사들이는 식이다. 강남 지역 중소형 빌딩은 그래서 한 사람이 5~6개의 빌딩을 보유한 경우가 흔하다.

강남 빌딩 투자자들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대출’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자기자본이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일부러 대출을 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00억 원짜리 빌딩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것보다 살아생전 증여하는 것이 세금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 상속은 건물 가치 100%, 즉 100억 원에 대해 세금을 매기게 된다. 이에 비해 증여는 대출분을 뺀 나머지 금액만 징세 대상이다.

또 100억 원의 건물을 100% 자기 돈으로 샀다고 신고하는 순간 세무 당국의 표적이 되기 쉽다.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의 자산가 중 자신의 재산 내역을 온전히 공개할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빌딩 매입가 100억 원에 대한 자금 출처’를 밝히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예 일부러 대출을 받는 것이다.

등기부등본상에도 대출금을 완전히 상환하기 전에는 계속 애초 대출 설정액만 표기된다. 10억 원 대출을 받아 9억 원을 갚고 1억 원에 대한 이자만 내고 있어도 서류상에는 여전히 갚아야 할 대출금이 10억 원으로 표시된다는 뜻이다. 세무서에서 일일이 은행에 전화를 걸어 얼마를 갚았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확인할 수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빌딩 투자에 관심이 많다면 투자 유의점도 놓쳐선 안 된다. 우선 수익률(임대료)이 주변 시세에 비해 정상적인지 확인해야 한다. 또 권리금이 너무 세면 임대 활용도 면에서 떨어지기 쉽다. 반대로 임대료 수준이 낮다면 그 이유를 분석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의 유무나 속도 같은 사소한 사항으로도 임대료는 확 달라진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3~6층의 업무 시설 임대료는 거의 차이가 없다. 전망이 좋다는 이유로 오히려 고층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입지’다. 건물의 외관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므로 현재의 멋들어진 외관에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빌딩 투자는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가 아닌 미래의 지가 상승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뜻이다. 단적인 예로 ‘역세권 10분 이내’라면 금상첨화다. 지하철역과 가까울수록 지가 상승률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반대로 역과 멀어질수록 공실률도 높아지는 게 일반적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