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한 라면 업체 임원이 한국경제신문을 찾아왔다. 농심·삼양식품·오뚜기·한국야쿠르트 등 라면 제조업체 4곳이 담합 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식품 업체 사상 최대 과징금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임원은 회사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하고 갔다. 자신들은 확고한 업계 1위이기 때문에 굳이 담합까지 해가며 무리해 판매 전략을 짤 이유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공정위는 4개 업체에 총 135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01년 5월부터 2008년 4월까지 6차례 담합으로 라면 가격을 올린 혐의다. 업체별로 농심 1077억6500만 원, 삼양식품 116억1400만 원, 오뚜기 97억5900만 원, 한국야쿠르트 62억7600만 원순이다.

이 같은 과징금은 이들 업체의 2010년 기준 영업이익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농심과 삼양식품의 영업이익은 각각 1071억9600만 원, 115억8400만 원이었다. 다만 삼양식품은 담합 사실과 관련 자료를 자진 신고해 과징금 116억1400만 원 전액을 감면받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담합은 라면 시장점유율 70%인 농심이 주도했다. 농심이 가격을 인상하면 다른 업체들이 길게는 6개월까지 시차를 두고 따라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농심이 삼양식품에 가격 인상 계획을 알리면 삼양식품이 오뚜기·한국야쿠르트 등 나머지 2개 업체에 관련 사안을 전달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공정위가 확보한 이들 4개 업체 간의 e메일 자료만 340건이었다.

이들 업체들은 가격 인상 계획을 비롯해 ▷인상 내역과 일자 ▷제품의 생산·출고일자 ▷홍보 및 판촉 계획 ▷신제품 출시 계획 등의 영업 정보를 수시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라면 제조사들은 매년 3월 말에 열리는 라면협의회 정기총회 및 간사 회의를 지속적인 교류 창구로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농심 신라면, 삼양식품 삼양라면, 오뚜기 진라면, 한국야쿠르트 왕라면 등 각사의 주력 제품은 권장소비자가격이 2001년 480원에서부터 2008년 750원까지 6차례에 걸쳐 인상됐다. 매번 인상 폭도 똑같았다.

하지만 업계에선 공정위의 판단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쟁점은 담합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하느냐다. 실제 공정위는 라면 제조사들이 담합을 ‘합의’한 직접적인 문건이나 증언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다만 ▷가격 인상 내역과 일자 ▷신제품 출시 계획 ▷홍보 및 판촉 계획 등의 정보를 나눈 e메일과 팩스 자료를 담합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특집 2면)농심사옥(중)
(특집 2면)농심사옥(중)
공정위에 따르면 이번 담합은 매번 농심이 가격 인상 계획을 2위 업체인 삼양식품에 먼저 알린 뒤 삼양식품이 오뚜기와 한국야쿠르트 등 나머지 2개 업체에 관련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공정위가 확보한 이들 4개 업체 간의 e메일 자료만 340건에 달했다. 하지만 업계는 농심이 가격을 올리면 후발 업체들이 눈치를 보다가 따라 올린 것일 뿐 이에 대해 ‘합의’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도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을 감안해 담합으로 인해 생긴 매출의 2% 수준으로 과징금을 매겼다. 법적 상한선은 10%다.



한편 이번 담합 건에서 삼양식품이 리니언시(Leniency: 담합 자진 신고자 감면제)로 법망을 빠져나간 것을 놓고 삼양이 1989년 우지 파동의 ‘아픈 기억’ 때문에 재빨리 자진 신고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부를 상대로 오랜 기간 소송을 벌이는 과정에서 농심에 추월당한 경험 때문에 공정위 조사가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협조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 농심을 비롯한 오뚜기와 한국야쿠르트 등은 이번 과징금 부과 결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선 반면 삼양식품은 “국가기관의 결정에 대해 우리가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박신영·임현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