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1일 오후 신사동 가로수길과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를 차례로 들렀다. 마침 낮 기온이 10도 이상 오르며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였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었지만 가로수길에는 끊임없이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젊은 여자 2~3명 일행이 함께 온 경우가 가장 많았고 데이트하는 젊은 남녀도 간간이 있었다. 남자끼리 온 경우는 별로 없었다. 젊은 여성 일본인 관광객 등 외국인도 간간이 보였다. 이곳의 랜드마크가 된 커피스미스(coffeesmith)에는 1~2층 모두 빼곡히 차 있었다.

가로수길의 특징은 대로변에 아직 독특한 콘셉트의 외관을 한 의류 판매점이 많다는 점이다. 커피점이 들어서 있지만 먹고 마시는 데는 한 블록 뒤의 이른바 ‘세로수길’에 위치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해외 유학파 디자이너들이 만든 의상실들이 아직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반면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인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인근 직장인으로 보이거나 중년으로 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다만 ‘패션 1번가’였던 압구정동의 명성에 맞게 화려한 옷차림으로 치장한 여성들이 이따금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저녁도 주말도 아닌 평일 낮에는 압구정동이라는 명성에 걸맞을 정도의 북적거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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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 ‘스몰 숍→대기업 숍’ 손바꿈 중

가로수길의 부상과 압구정동의 침체는 살아 움직이는 상권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1990년대 압구정동은 초기 유학파 디자이너들이 자리 잡으면서 유행의 최첨단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여기에 카페·음식점·주점 등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상권을 형성했다. 그러나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한 디자이너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이 자리를 대형 프랜차이즈 의류 매장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다소 거리가 멀지만 로데오거리의 배후로 덩달아 떴던 압구정역 일대는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자리를 차지했다. 대형 브랜드 매장과 병원이 입점 경쟁을 하면서 임대료가 치솟기 시작한 것도 디자이너들이 떠나는 데 일조했다.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를 떠난 디자이너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 신사동 가로수길이다. 압구정동과 자동차로 5~10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기존 고객층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롭게 둥지를 틀 수 있는 입지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디자이너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고 2007년 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서면서 가로수길은 압구정동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쇼핑과 차(茶)문화가 접목되면서 젊은 여성들의 소비력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여성들이 몰리니 남성이 따라서 몰리고 외국인이 몰리면서 갑자기 붐이 일었다.

그러나 가로수길도 압구정 로데오거리가 과거 겪었던 부흥과 몰락의 길을 갈 것이라는 우려가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가 뜨면서 나타난 현상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국현 상가투자컨설팅 대표는 “가로수길 대로변 1층의 임대료가 월 3000만~4000만 원 수준이다. 보증금은 2억~3억 원 수준이다.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려도 수요가 있다 보니 들어오려는 데는 많다”며 “임대료가 너무 높아져 임차인이 망하고 손바꿈이 나타나면 상권의 정점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 가로수길의 ‘손바꿈(스몰 숍→대기업 숍)’ 현상은 일부 나타나고 있다. 제일모직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에잇세컨즈(8seconds)’가 최근 가로수길 초입에 오픈했다. 대기업 브랜드는 유명 상권에 가두점을 내지 않으면 브랜드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출점 경쟁에 나선다면 임대료 상승이 불 보듯 뻔하고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커진다.

압구정의 쇠퇴와 청담동이 뜬 것도 비슷한 시기다. 가로수길로 중저가 상품이 이동했다면 청담동은 초고가 명품들로 채워졌다. 명품거리의 부상은 명품에 대한 소비가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 2000년대 중반 롯데백화점이 에비뉴엘 등 명품관을 만들었고 신세계도 명동점을 리뉴얼하면서 1~2층을 명품점으로 채우는 등 명품 붐이 일었다. 그러나 VVIP(초VIP)들이 백화점을 떠나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든 것이 현재의 청담동이다. 청담동의 이런 고급스러운 문화는 인근의 고급 레스토랑, 갤러리와 함께 독특한 청담동 문화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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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거리’는 ‘남진(南進)’ 진행 중

전통적인 역세권 상권인 ‘강남역거리’는 2008년 삼성그룹 사옥이 들어서면서 상권이 지역적으로 넓어지고 점심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회전율도 늘어나는 등 질적인 변화를 이뤘다. 이전까지 강남역거리라고 하면 강남역 북쪽 지역(강남역 사거리~교보생명 사거리)이 ‘대세’였고 연령층도 20~30대의 유동인구가 많았다.

그러나 삼성타운 입주 이후 강남역 남쪽 지역(강남역 사거리~우성아파트 사거리)의 상권이 살아났고 연령대도 40~50대까지 가세하면서 전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가 됐다. 경국현 대표는 “삼성타운이 들어서면서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 상권이 살아났다. 삼성타운이 오기 전까지 분양가가 3.3㎡당 8000만 원(1층 기준)으로 아무리 비싸도 1억 원이 넘지 않았는데 지금은 평균 1억5000만 원으로 올랐다”고 전했다. 임대료도 가로수길과 비슷한 월 3000만~4000만 원 수준이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