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태 숙명학원 이사장

한국의 대표적 명문 여대 중 하나인 숙명여대가 연일 시끄럽다. 발단은 현재 대학 총장으로 재직 중인 한영실 총장에 대해 이사회가 해임안을 의결하면서부터다. 지난 3월 22일 이용태 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 8명 중 6명은 긴급 이사회를 열고 한 총장 해임안을 가결했다. 이날 기자회견까지 연 이 이사장은 “한 총장이 이사회에 감사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등 그동안 이사회를 무시하며 독단적으로 학교를 운영해 왔다”고해임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그간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사연이 복잡해진다. 지난 3월 20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이 이사장의 승인을 취소하는 처분을 내렸다. 바꿔 말하면 이 이사장이 주무부처인 교과부에 의해 해임됐다는 뜻이다. 해임 사유는 이른바 ‘기부금 세탁’으로 불리는 재단 전입금 논란이다.

숙명학원은 1995년부터 2009년까지 대학 동문·독지가·일반인 등이 낸 기부금 685억 원을 재단의 전입금으로 위장해 왔다. 대학의 외부 기부금 계좌에 있던 돈을 재단의 계좌에 옮겼다가 이를 다시 대학에서 시행하는 20여 개 사업 통장으로 입금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대학 내 각종 사업 자금은 외부 지원금이 아니라 재단 자체의 지원으로 마련된 것으로 ‘세탁’되는 것이다.
18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바른사회.바른기업 CEO포럼 '11월 월례포럼'에서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041118
18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바른사회.바른기업 CEO포럼 '11월 월례포럼'에서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041118
전·현 총장 갈등으로 사태 촉발

굳이 논란을 자초할 편법을 동원한 데는 숙명학원의 태생적 한계가 자리한다. 숙명학원은 1906년 황실학교로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특정한 종교 단체나 기업 같은 사학재단 없이 공익법인 형태로 운영돼 왔다. 이렇다 보니 다른 사립대학들처럼 재단에서 수십 억~수백 억 원에 이르는 지원금을 받기가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다.

교과부에서 시행하는 대학 종합 평가 중 재단 기여도는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다. 재단이 대학에 지원해 주지 못하면 부실 대학으로 판명돼 퇴출 대상에 오르는 것이다. 숙명여대가 15년간 ‘기부금 세탁’을 해온 이유다.

재단이 학교 운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견제하는 일반 사립대에 비해 숙명여대는 이사장이 사실상 전권을 쥘 수 있는 구조다. 1998년부터 14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 이사장은 전임 이경숙(1994~2008) 총장이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사장은 삼보컴퓨터와 두루넷 창립자로 한국 정보기술(IT) 산업계의 살아있는 역사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사장 선임도 이 전 총장과의 돈독한 관계 덕분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한 총장은 이 전 총장 재임 때만 해도 보직 교수를 맡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한 총장 취임 후 관행시돼 왔던 기부금 문제를 손질하면서 양쪽의 갈등이 시작됐다. 한 총장과 학교본부 측은 이 전 총장이 이사회를 통해 여전히 학교 운영을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총장 해임안 의결에 참여한 6명의 이사진은 전임 총장 시절 임명된 이들이다. 한편 교과부는 3월 30일 이 이사장 및 전·현직 감사 등 총 6명에 대해 승인 취소 통보 절차와 관련한 소명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Close Up] IT 산증인…‘기부금 세탁’으로 해임 위기
[Close Up] IT 산증인…‘기부금 세탁’으로 해임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