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정치 개혁의 승부수를 던졌다. 원 총리는 지난 3월 14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국회) 폐막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 지도부가 금시기해 온 문화대혁명 및 공산당과 국가의 지도 체제 개혁을 직접 언급했다. 내년 3월 10년간의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그가 총리로서 가진 마지막 전인대 기자회견은 신중하다는 평을 들어온 그의 평소 발언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데올로기와 평등주의를 강조한 마오쩌둥(毛澤東) 시절의 사상으로 재무장하자는 극좌파에 직격탄을 날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화대혁명은 1966년부터 4인방(四人幇:장칭·훙원·장춘차오·야오원위안)이 체포된 1976년까지 10년 동안 진행됐으며 마오쩌둥은 이를 통해 정적을 제거함으로써 1인 지배 체제를 확립했다.
[중국] 원자바오 총리, 정치 개혁 승부수 ‘지도 체제 개혁’…극좌파에 직격탄
분배의 불공평과 탐관·부패 문제 발생

원 총리가 3시간에 걸친 기자회견에서 문혁을 거론한 것은 두 차례다. 첫 번째는 정치 개혁을 왜 자주 거론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책임감 때문”이라고 운을 뗀 뒤 답변하면서다. “4인방을 분쇄한 후 (문혁에 대한 공산당의 입장을 정리한 1981년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대한 결의’를 했지만 문혁의 오류와 봉건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경제 발전에 따라 분배의 불공평과 탐관·부패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경제 개혁만이 아니라 정치 개혁, 특히 당과 국가 지도 체제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정치 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경제 개혁이 끝까지 진행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얻은 성과도 잃고 문혁 같은 역사적 비극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 책임 있는 당원과 지도 간부들은 긴박감을 가져야 한다.”

원 총리는 충칭시 전 공안국장 왕리쥔(王立軍)의 미국 망명 사건 관련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또 한 차례 문혁에 대한 입장을 강조했다. 그는 우선 “충칭시 당위원회와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반성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번 사건을 엄격하게 처리하고 국민에게 알리겠다”며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원 총리는 보시라이를 비판한 직후 “이 대목에서 한마디 하겠다”며 “‘(문혁에 대한) 약간의 역사 문제에 대한 결의’ 이후 사상 해방과 실사구시를 당의 기본 노선으로 채택했고 개혁·개방에 중국의 명운을 거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 역사의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오쩌둥 시절 유행했던 ‘홍색가요(공산당 노래) 부르기’ 등 극좌파 행보를 보인 보 서기에 대해 사상적 비판까지 가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원 총리가 ‘공산당과 국가 지도 체제 개혁’까지 언급한 것은 권력투쟁을 공개적으로 노출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올 10월 차기 최고 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 9명)를 선출하는 18차 당대회를 앞두고 상무위원 인선과 선출 방식에 대한 이견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上海幇)·태자당(太子黨: 당정 고위 간부 자제) 연합 세력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중심의 공청단파는 차기 상무위원 인선을 놓고 권력투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립 성향의 원 총리는 후진타오 계열에 가깝다. 반면 차기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 충칭시 서기직에서 해임돼 상무위원 진입이 무산된 보시라이 등은 태자당 소속이다.

보시라이의 좌절로 시진핑이 이끌 새 중국은 정부 주도를 강조하는 충칭 모델보다 시장에 상대적으로 더 힘을 실어주는 광둥 모델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원 총리의 정치 개혁에 대한 고강도 발언은 관리들의 부패와 빈부 격차 확대 등으로 커지는 사회불안의 수위가 임계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이징=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