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 시대에 고개 드는 ‘그린 슈트(green shoots)’ 현상

앞 으로 세계경제는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이 바뀐다.”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4년째를 맞으면서 세계인들에게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을 비롯한 모든 예측 기관들이 이미 2010년부터 역설해 왔던 주문이다. 이때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활동을 주도해 왔던 글로벌 스탠더드와 전혀 다른 ‘뉴 노멀(new normal)’ 시대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특징짓는 현상인 뉴 노멀은 종전의 글로벌 스탠더드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금융 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와 국제금융 시장을 주도했던 미국과 서방 선진 7개국(G7)에서 발생했다. 이제 금융 위기 이전에 통용됐던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신뢰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이행 강제력은 땅에 떨어졌다.

뉴 노멀 시대에는 세계경제 최고 단위부터 바뀌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규범과 국제기구를 주도해 왔던 미국을 비롯한 G7에서 중국이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른 주요 20개국(G20)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추세에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각국의 이익이 보다 강조되는 과정에서 글로벌 추세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신(新)보호주의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국제기구의 회의론과 함께 신역할론도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11월에 열렸던 G20 서울 회담을 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쿼터 재조정이 이뤄졌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른 국제기구들도 IMF와 비슷한 운명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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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기구 간의 연계 움직임도 빠르게 이행될 것으로 확실시된다. 이미 WTO와 IMF 간의 연계 움직임이 시작됐다. 뉴 노멀 시대에는 경제학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 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이 그것이다. 금융 위기를 계기로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 주류 경제학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는 대신 심리학·생물학 등을 접목, 행동경제학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가정이 무너진다면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금융 위기와 같은 시장 실패 부문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 시장과 국가가 경제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혼합 경제나 아니면 중국처럼 국가가 주도하는 국가자본주의가 한동안 유행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 곳은 역시 산업 분야다.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시대를 맞아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차별화 혹은 고부가 제품을 통한 경쟁 우위 확보 요구가 증대된 반면 후발 기업들은 창의·혁신·개혁·융합·통합·글로벌 등 다각화 전략을 통해 경쟁력 격차를 줄여나갈 수밖에 없는 새로운 공급 여건이 정착되고 있다.

수요 면에서는 트렌드의 신속한 변화에 따라 고부가 제품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는 반면 이들 제품 소비에 드는 비용을 무료 콘텐츠 제공 등을 통해 줄여나가는 이율배반적인 소비 행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각 분야에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이런 움직임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많은 분야에 걸쳐 변화를 몰고 오는 ‘뉴 노멀’이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로 정착되지 못하는 경우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뉴 노멀에 대한 실망감과 금융 위기 이전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향수까지 겹치면서 ‘규범의 혼돈(chaos of norm)’ 시대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