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달인’ 성필규 PK투자자문 회장


강남 중심부가 한눈에 들어오는 부띠끄모나코 27층 벤트하우스. 성필규(41) PK투자자문 회장은 틈날 때마다 사무실 한쪽에서 카나리아를 돌보며 시간을 보낸다. 몇 년 전 암수 한 쌍을 선물 받아 기르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수십 마리로 불어났다.

카나리아는 공기가 조금만 탁해져도 살지 못하는 예민한 동물이다. 19세기 광부들이 새장에 넣어 ‘위험 경보기’로 갱 속으로 가지고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 변화와 위험을 가장 먼저 포착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비정한 금융 승부사들의 세계와 닮은꼴이다.

성 회장이 주식 투자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것은 1994년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서강대 경영학과에 2학년으로 복학한 무렵이다. 투자론 수업을 들으면서 시험 삼아 주식을 조금 샀고 이내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경이적인 수익률로 주목을 받았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중요한 고비마다 스스로 진화하며 길을 찾아냈다. 주식에서 파생상품으로 그리고 또다시 시스템 트레이딩으로 이어진 그의 투자 궤적에 그 모든 것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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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잣돈 150만 원으로 주식 투자

전주에서 태어난 성 회장은 초등학생 때는 학생회장을 맡던 모범생이었다. 부모님 모두 교편을 잡고 계셨다. 하지만 중학교 때 어머니가 빚보증을 잘못 서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부모님 월급까지 차압을 당했다.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며 그는 말썽꾸러기 문제아가 됐다.

서강대 경영학과에 입학해서도 교내에서 신문 배달을 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뛰며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그는 학창 시절부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평범한 직장 생활은 애초부터 안중에도 없었다. 때마침 주식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줬다.

아버지가 준 150만 원이 종잣돈이 됐다. 몇 번 돈을 벌면서 스스로 주식에 재능이 있다는 확신도 생겼다. 돌이켜보면 시장이 좋았던 덕분이지만 그때는 자기 실력이라고 믿었다.

1998년 졸업과 함께 망설임 없이 전업 투자자의 길로 뛰어들었다. 신촌 작은 원룸에 컴퓨터 한 대, 책상 하나, 침대 하나 들여놓고 하루 세끼를 배달해 먹으며 투자에 몰두했다. 주식시장이 열리는 장중에는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빈 그릇을 문밖에 내놓으면 식당에서 알아서 가져갔다. 1990년대 말부터 정보기술(IT) 붐을 타고 주식 사이트가 유행하자 성 회장은 ‘알바트로스’라는 필명으로 싱크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글은 많은 개인 투자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지금도 그를 본명보다 ‘알바트로스’라는 필명으로 아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수익이 늘어나면서 투자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단타 데이트레이딩이 기본이었다. 운이 좋을 때는 하루에 500만~600만 원을 벌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취업 생각은 더욱 멀어졌다. 2000년 IT 버블 붕괴로 시작된 폭락장은 큰 충격이었다. 그동안 번 돈은 시장이 준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았다.

2001년 결정적인 시련이 찾아왔다. 속칭 ‘작전주’에 손을 댄 것이다. 처음에는 어떤 종목에 작전 세력이 붙어 얼마까지 갈 것이라는 소문을 들어도 무시했지만 실제 맞아떨어지는 것을 몇 번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성 회장은 그때까지 번 2억 원과 지인들이 맡긴 8억 원 정도를 작전주 투자로 한방에 날려버렸다.

실수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2002년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또 한 번 작전주 매매에 나섰다. 두 번째 실패는 더욱 비참했다. 사채까지 끌어다 써 빚쟁이들을 피해 다녔다. 성 회장은 “죽을 만큼 힘들었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다 잊고 쉬라는 선배의 제안을 받고 무작정 포항으로 내렸다. 그날 그 선배 집에서는 부부 싸움이 벌어졌다. 그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다행히 창고 겸 사무실 한 귀퉁이를 빌려 스티로폼을 깔고 11월 추위를 견뎠다. 거기서 보름을 지냈다.

“치열하게 고민했어요. 연거푸 큰 실패를 경험한 뒤라 회의가 밀려왔지요. ‘정말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걸까’ 수없이 질문했죠. 그러다 답을 얻었어요. 누군가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거죠.”

또 주식 투자로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도 얻었다. 주식시장은 하락장에서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종목을 골라 장기 투자하면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매일 매일 수익을 내야 하는 전업 투자자에게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성 회장은 이 일을 계기로 주식에서 파생상품으로 돌아섰다. 선물과 옵션 투자는 주식과 달리 상승장이든 하락장이든 방향성만 맞히면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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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시장 앞에 미약한 존재

“그때 작전주를 통한 대박의 꿈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신기루 같은 미혹일 뿐이죠. 거래 자체를 통해 당당하게 승부를 볼 수 있는 선물과 옵션이 훨씬 ‘페어’한 게임이에요.”

성 회장은 파생상품에서도 재능을 보였다. 첫해인 2003년 1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2004년 들어서도 26주 연속 수익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다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2004년 5월10일. 성 회장은 지금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중국의 기습적인 금리 인상 발표가 나오자 순식간에 주가가 10% 이상 폭락했다. 그는 적정 수준의 주가 하락은 견딜 수 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면 손실이 무제한으로 늘어나는 포지션을 갖고 있었다. 그날 하루 정확하게 12억8400만 원을 날렸다.

“손절매를 해야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시장 앞에서 그냥 몸이 얼어붙었어요. 넋이 나간 거죠.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전등이 탁 꺼지듯 판단이 중지된 상황이죠. 모니터에 나오는 손실 금액은 급격하게 커지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 소리도 안 들렸어요. 사람이 시장 앞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깨달았죠. 평범한 시장에서는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이 절대 안 나오거든요.”

성 회장은 이번에도 포기보다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시장의 본성을 알았으니 그걸 극복할 수 있는 툴을 찾아야죠. 시스템 트레이딩이 바로 그 해답이었어요.”

인간은 탐욕과 공포라는 근원적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컴퓨터는 냉혹하다. 미리 설정된 투자 모델에 따라 조건만 일치하면 가차 없이 거래를 단행한다. 시스템 트레이딩으로 방향을 정한 성 회장은 당시 앵커차트 대표로 있던 장준호 현 PK투자자문 사장을 만난다. 그는 차트에 정통한 일급 프로그래머였다.

2004년 두 사람은 강남역 근처에 있던 SK증권 지점 사무실 한쪽을 얻어 세타파워를 설립했다. 금융시장에서 세타(Θ)는 시간 가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세타파워는 ‘시간의 힘’이라는 뜻이다. 시간을 믿고 서둘지 말자는 거창한 뜻을 회사 이름에 담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전지 회사냐’는 반응을 보였다. 성 회장이 투자 모델을 만들면 장 사장이 이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2년간의 작업 끝에 2006년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성 회장이 만든 트레이딩 시스템은 금융 위기가 세계를 덮친 2008년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 달 만에 100~ 200%의 수익을 내며 큰돈을 벌었다. 워낙 계좌 수익률이 높다 보니 거래 증권사를 통해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성 회장은 2010년 PK투자자문을 설립해 제도권에 진출했다. 그런데 그 사연이 재미있다. 부모님이 퇴직금을 당시 인기 있던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에 넣었는데 수익률이 마이너스 40%까지 떨어졌다.

“네가 투자를 그렇게 잘하면 너만 돈을 벌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벌게 해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시더군요. 대한민국 최고라는 인사이트 펀드의 수익률을 보면서 제도권에 대한 불신도 갖게 됐고요. 내가 실력으로 뭔가 보여주자, 그런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막상 제도권에 진출해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우리나라 투자자들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오래 고민해야 하고 일단 결정하면 상당 기간 믿고 기다려 줘야 하는데 한국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결정은 굉장히 쉽게 하고, 그런 만큼 오래 믿고 기다리지 못한다.

파생상품을 삐딱하게 보는 사회적 시선도 걸림돌이다. 파생 시장은 공인된 도박판과 같다는 인식이다. 성 회장은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타워팰리스에 살며 벤트리를 타고 다니는 투자 고수’라는 식의 선정적인 제목으로 기사가 나간 것이다. ‘개미들 돈 따서 외제차 끌고 다니니 좋으냐’는 등 온갖 비난 메일이 쏟아졌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선물과 옵션은 결코 도박이 아니다.

“파생상품은 철저하게 확률과 통계의 세계입니다. 그걸 도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을 잃는 거죠.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은 결코 도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파생상품 시장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첨단 금융 기법으로 무장한 기관투자가들이 즐비하다. 개인이 이들을 따라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옵션 투자로 수백 배 수익을 올렸다는 뉴스가 나오면 개인 투자자들이 우르르 옵션 시장으로 몰려든다.
[투자 고수를 만나다] “파생 투자, 도박으로 생각하면 돈 잃게 되죠”
투자자의 천성 없다면 포기하라

과연 뛰어난 투자가는 타고나는 걸까. 성 회장은 “투자로 톱 클래스에 오르려면 여우의 간교함과 사자의 배포, 당나귀의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이 셋을 모두 갖춘 트레이더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전업 투자자가 아니라 직업을 따로 갖고 틈틈이 재테크로 투자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자의 천성, 즉 마인드다.

“투자는 노력 곱하기 천성이에요. 노력 더하기 천성이 아닌 거죠. 아무리 노력해도 천성이 ‘0’이면 결과도 ‘0’이죠. 매일 경제 TV 켜 놓고 인터넷 동영상 보고 주식 강의 듣는데도 돈을 못 버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자신에게 투자자로서 천성이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카드든 화투든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 돈을 잃어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티가 안 나는 사람은 천성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투자로는 큰 재미를 보기 어렵다.

성 회장의 기본적인 투자 원칙은 수익은 길게 손실은 짧게 가져간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천이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수익이 나면 불안해 금방 차익 실현을 해 버린다. 수익이 쌓이다가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손실이 나면 계속 물타기를 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성 회장은 “투자로 돈을 잘 벌려면 잘 잃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화투에서도 3점을 주지 않으려다 더 크게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히려 3점짜리를 계속 주다가 ‘피박’, ‘광박’까지 합해 더 크게 한 번에 벌어들이는 게 훨씬 유리하다. 돈을 잘 잃을 줄 아는 사람은 다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빼놓지 않고 다 먹는다. 3점짜리 게임을 하는 사람은 결코 이들을 이길 수 없다.



전업 투자자로 살아온 삶에 후회는 없을까.

“주식을 알고 파생상품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나에게 투자는 그 무엇보다 재미있는 게임이에요. 젊은 날 모든 것을 거기에 바쳤고요. 어찌 보면 삶 전체였어요. 앞으로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 싶지만 투자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나는 투자가 너무 재미있어서 하는데, 상대방은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해요. 모니터 저편의 상대가 내 돈을 가져가기가 웬만해선 쉽지 않겠죠.”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