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 교수의 고전에서 배우는 CEO 리더십

미국의 특수부대 델타포스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사막에서의 훈련입니다. 며칠간 열사의 땅에서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생존 본능만이 남아있을 때 그들의 손에 쥐어주는 것은 바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타는 듯한 갈증 속에 이성의 힘도 마비된 가운데, 책을 펼쳐 마키아벨리가 들려주는 ‘리더에 대한 성찰’을 학습해 내는 사람만이 델타포스가 될 수 있지요. 과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엔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한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이 위대한 로마도 결국 시간이 지나자 멸망의 수순을 밟고 말지요. 이후 로마는 바티칸교황령·나폴리왕국·밀라노공국·베네치아공화국·피렌체공화국으로 분할되더니 프랑스·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신음하게 되죠. 이때 이러한 조국 이탈리아의 비굴한 운명을 개탄하던 애국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입니다. 그는 강력한 군주의 출현만을 열망하며 ‘군주론’을 집필하기에 이르죠.
르네상스인의 전형 마키아벨리, 군주는 똑똑한 부하의 쓴소리를 즐긴다
현실 정치 파헤친 최초의 사회과학자

‘군주론’을 펼치면 가장 먼저 그가 당시 정치가들의 수장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보내는 헌정사가 나옵니다. 그는 역사를 공부한 지식으로 위대한 군주들이 갖춰야 할 덕목들을 배웠고 높은 산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낮은 곳에서 바라보아야 하듯이, 군주에 대해 자신과 같은 평민이 말하는 것은 결코 주제넘은 일이 아니라고 써 놓았지요.

마키아벨리는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고전·라틴어·역사·철학을 열심히 공부한 천재로서 당대의 사상가라고 평가됩니다. 그는 자신의 인문학 교육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의 어두운 면을 철저하게 파헤친 최초의 사회과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의 이론은 인간 본성이 근본적으로 ‘악하다’, ‘이기적’이라는 전제하에서 펼쳐 나갔죠.

마키아벨리가 바라는 로마를 구원해 줄 강력한 군주는 신민과 소통하는 방식이 남다릅니다.

먼저 군주는 아첨꾼에 둘려싸여서는 안 됩니다. 결정적 순간에 아첨해야 한다는 것은 조직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우리 모두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주가 아첨꾼에 둘러싸이면 진실의 반쪽만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군주는 국가의 나쁜 소식을 제일 먼저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사고가 발생하면 그것을 은폐하고 축소하기에 급급하지요. 결국 대외적으로 리더가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위기가 수습되기는커녕 더욱 커지고 말죠. 사실 외양간을 고칠 최고의 적기는 소를 잃고 난 직후입니다. 더 많은 소를 잃기 전에 말입니다.

그런데 왜 군주는 아첨꾼에 둘러싸일까요. 간단합니다. 군주가 화를 버럭 내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다들 눈치만 살핍니다. “자네더러 누가 이런 거 하라고 그랬어!” 이 한마디를 던진 순간 부하의 창의성은 뿌리부터 말라버립니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낸다’고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해 당황했을 때, 우선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그런 다음 자신을 화나게 만든 그 사람에게 화를 쏟아 붓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자병법’엔 화를 잘 내는 장수 밑에 있는 병사들은 게으르다고 나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 회의는 어떤 회의일까요. 이미 결론이 나 있는 회의입니다. 리더가 회의 벽두에 자신의 방침을 밝히면서 카리스마를 뽐내는 순간 그 회의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습니다. 리더는 가장 나중에, 그것도 꼭 필요할 때 발언해야 합니다. 리더의 말은 곧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릇이 큰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리더, 즉 군주의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자신보다 똑똑한 부하를 몇 명 데리고 있는지를 보면 안다고 말이죠. 똑똑한 부하들의 쓴소리를 즐길 경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고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어 길거리에 서있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쓴소리가 어떻습니까. 이걸 즐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똑똑한 부하들이 회의 석상에서 쏟아내는 얘기들을 참고 듣고 있는 것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되기 전에는 불가능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또 다른 솔루션을 말하고 있습니다. 쓴소리를 듣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무나 자신들이 편한 시간에 할 말 안할 말 다 하고 가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판단력이 뛰어나고 충성심이 돋보이는 심복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심복들을 키워서 이들과 24시간 핫라인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심복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사랑받기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라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사랑의 대상이 되기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라고 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웬 공포냐고요. 이 말의 요지는 부하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포퓰리즘에 대한 경고입니다. 사랑 받으면서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더욱 좋은 일이지만 실제로는 어렵고 하나를 선택하려면 공포의 대상이 되라는 것입니다.

마키아벨리 식으로 증명해 드릴까요.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접근하면 그 사람도 여러분에게 반드시 사랑으로 보답하던가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짝사랑이란 게 있겠습니까. 물론 사랑으로 보답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할 것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상대방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을 바치고 나면 이제 당신은 그 사람의 자비에 맡겨진 사랑의 포로가 되는 겁니다.

이번에는 상대방에게 엄청난 처벌을 가해 보세요. 얼굴을 빤하게 쳐다보면서 눈동자를 감히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따끔하게 혼을 내보세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부하는 이제 여러분을 공포의 대상으로 대할 것이란 사실입니다. 이제 그 부하는 당신에게 꼼짝 못하게 될 것입니다. 혼내는 것과 화내는 것의 차이를 잘 구별하기만 할 수 있다면 말이죠.

자, 마키아벨리의 이 인간관계 맺기가 다소 경직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마키아벨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르네상스인의 전형으로 분류되는 인물입니다. 인간 본성에 이제 다시 눈을 뜨게 된 시기에 마키아벨리가 이런 소통에 대한 통찰을 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khc602@gmail.com
일러스트 신혜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