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삼양식품은 2세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창업주인 전중윤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추대되고 전 회장의 장남인 전인장(49) 부회장이 회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전인장 회장의 부인이 삼양식품 사장을 맡으면서 국내에서는 드물게 부부 경영 체제를 이뤘다. 공시를 통한 지분 내역을 살펴보면 전중윤 명예회장의 2남 5녀의 자식들과 며느리·사위 등이 최대 지주로 골고루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전 회장과 ‘친인척’으로 표기된 전 회장 일가 12명이 경영과 오너십 전면에 나서고 있다. 삼양식품의 지분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삼양식품이 화의에 들어간 지 7년 만인 2005년 1월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전 회장 일가 18명이 최대 주주로 지분을 분할했다. 라면 업계 선두 주자로 잘나가던 삼양식품은 1989년 ‘우지’ 사건 후유증으로 휘청거렸고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결국 화의에 들어갔었다. 7년 후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전중윤 회장의 며느리인 김정수 부사장(현 사장)이 지분 31.55%를 확보하며 최대 지분 보유자로 떠올랐다. 며느리가 아들인 전인장 당시 부회장을 제치고 최대 주주가 된 것이다. 이유는 대외적인 명분 때문이었다. 경영권 회복 약 8개월 전인 2004년 5월까지 사장을 맡았던 전인장 부회장이 경영 실적 악화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상황이어서 전 부회장이 최대 지분을 갖기에는 여러모로 모양새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경영권을 잃었던 경험이 있어서일까, 삼양식품그룹은 경영권 회복 이후 지난 7년 동안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를 공고하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시도했다. 현재 삼양축산·프루웰 등 6개 계열사를 보유한 삼양식품의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곳은 삼양농수산이다.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33.26%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전 회장 일가가 직접 보유한 삼양식품의 지분은 13명 모두 합쳐 13.37%(2011년 12월 기준)밖에 되지 않는다. 2005년 삼양식품의 31.55%의 지분을 가졌던 김정수 사장도 현재 단지 3.98%(30만50주)만 보유하고 있다. 삼양농수산은 전 회장 부부의 강력한 오너십의 핵심 축이다. 삼양농수산의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은 957억 원으로 주력사 삼양식품(2118억 원)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계열 출자 구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
삼양농수산의 지분을 보면 오너 일가의 삼양식품 직접 지분을 삼양농수산 명의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삼양농수산의 지분 중 42.2%를 김정수 사장이, 21.0%를 전인장 회장이 보유하고 있다. 부부가 합쳐 총 63.2%를 갖고 있는 것. 삼양농수산의 나머지 26.8%는 비글스가 보유하고 있다. 이런 식의 지배구조는 다시 한 번 비글스라는 회사를 통해 발현된다.
이번 논란의 시발점이 된 것은 비글스란 회사다. 삼양식품그룹의 지배구조에서 정점에 있는 비글스는 전인장·김정수 부부의 아들이자 오너 일가 3세에 해당하는 병우 군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개인회사이기 때문이다. 즉, 정리하면 삼양식품-삼양농수산-비글스로 정리되는 지배구조에서 전인장·김정수 2세 경영인에 이어 나이 어린 3세까지 명목상 경영권을 집중해 놓았다는 것이다.
비글스를 둘러싸고 여러 재미있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비글스는 2007년 1월에 과실 및 채소 도매업을 업종으로 설립된 회사다. 2007년이면 최대 주주인 병우 군이 열세 살일 때다. 비글스는 50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돼 현재 자산 규모는 30억 원에 불과하다. 비글스가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계기는 지난해 6~7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되기 전후다. 이때 삼양식품의 대관령 목장 때문에 평창 수혜주로 꼽히면서 주가는 1만7000원대에서 3만 원까지 치솟았다. 비글스는 7월 4일부터 8일까지 집중적으로 삼양식품의 지분 14만3290주를 내다 팔아 한 달 만에 100%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약 42억 원의 시세 차익을 누렸다. 이후 주가는 다시 기존 수준으로 떨어지자 비글스는 다시 6만 주를 사들였다. 의혹투성이 유령 회사 ‘비글스’
지난해 말 비글스의 ‘꼼수’는 다시 한 번 발휘됐다. ‘나가사끼 짬뽕’이 히트하면서 삼양식품의 주가가 다시 올랐다. 지난해 11월 29일~12월 6일 삼양식품의 주가는 2만6950원에서 4만2550원까지 올랐다. 이때 비글스는 12만4690주를 매도해 또 약 40억 원의 시세 차익을 거뒀다. 두 번의 매도로 비글스는 80억 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삼양식품 측은 보유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정상적인 기업 행위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여러 의혹이 제기됐었다. 삼양식품이 ‘나가사끼 짬뽕, 이마트 판매 1위’라는 허위 보도 자료가 나온 시점과 비글스가 주식을 집중 매도한 시기가 절묘하게 일치한다는 점이 논란을 키웠다.
이와 함께 최근 비글스는 직원과 사무실이 없는 유령 회사라는 점이 밝혀졌다. 주소지로 돼 있는 ‘서울시 양천구 목1동 917 목동파라곤 105동 지하 601호’는 현재 찜질방이 들어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주소는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에 신고된 비글스의 주소였다. 이 찜질방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는 휴네트개발인데 이 회사의 사장은 비글스의 대표로 명기된 심의전 씨와 동일인으로 드러났다.
또한 비글스의 종업원은 1명으로 세무 당국에 신고돼 있는데 심 대표도 포함되는 점을 감안하면 직원이 아무도 없다는 얘기다. 또한 비글스의 창립 자금 5000만 원을 열세 살인 병우 군이 어떻게 마련했는지, 2010년 기준 6억6400만 원의 매출은 어떻게 거뒀는지 의혹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삼양식품은 국내 라면의 역사와 함께하며 1960년대 보릿고개를 해소하는 데 일조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억울했던 우지 파동과 화의 기간을 이겨낸 삼양식품이 최근 다시 전성기를 맞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3대 지배구조와 주가 ‘꼼수’ 때문에 존경보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비쳐지고 있다. 1998년 삼양식품이 부도 처리되기 직전 전인장 사장 등 대주주 8명은 보유 주식을 대거 처분하는 등의 사건 등도 현재의 일련의 사건과 함께 다시 회자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삼양식품이 경영권 보유 지분과 관련해 부린 꼼수들이 존경받는 장수 기업으로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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