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누난 줄렉스 대표

가정에서 전기료를 아끼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은 전자제품의 플러그를 뽑는 것이다. TV는 사용자가 켜는 순간 화면을 빨리 보여주기 위해 대기전력이 소모된다. 가정에서야 이런 절약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겠지만 이것을 1만 명 규모의 기업으로 확대하면 엄청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아이디어를 사업화한 곳이 미국의 줄렉스(Joulex)라는 회사다. 줄렉스의 창업자 토머스 누난(Thomas E. Noonan)은 미국에서 유명한 정보 보안 업체인 ISS(Internet Security System)의 창업자로, ISS는 2008년 IBM에 인수됐다. 엄격한 조직 문화를 가진 IBM과 맞지 않았던 그는 회사를 뛰쳐나왔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벤처창업자였던 누난은 다시 개인 사무실을 열고 돈벌이가 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신문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모색했다. 회사를 매각한 엄청난 자금이 있었기 때문에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벤처투자자로 변신할 법도 하지만 그는 “나는 개발자다. 게이머(gamer) 그 자체일 뿐 사이드 체어로 물러나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ISS에서 함께 일했던 개발자도 슬슬 몰려들기 시작했다.
[포커스] ‘바이러스’ 막듯이 ‘전기료’ 잡는다
고객사들, 전기료 30~40% 절감해

사무실을 놀이터처럼 삼고 개발자들과 웃고 떠드는 사이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ISS 시절 대형 빌딩의 보안 아키텍처를 설계하던 중 불필요한 전기장치를 IP(Internet Protocol) 접속으로 컨트롤하려고 했던 작은 시도가 실마리였다. 모든 네트워크는 IP로 연결되고 이 IP 접속을 모니터링·컨트롤링하는 것이 정보 보안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같은 원리로 IP 접속을 제어해 에너지 절감 용도로 쓸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보 보안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면 별도의 하드웨어 비용도 들지 않는다.

예를 들면 퇴근 후에는 IP 접속으로 연결된 인터넷 전화기나 와이파이와 같은 인터넷 무선 공유기 등이 필요 없다. 개인용 컴퓨터, 서버 스토리지, 라우터, 네트워크 프린터·복사기 등 기업 내의 수많은 장비들이 야간 및 휴일에도 돌아가고 있다. 조명과 냉난방 기기까지도 IP로 연결돼 있다면 제어가 가능하다.

IP를 제어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별도 장비로 제어하는 에너지 절감 업체와 원리가 다르다. 2008년부터 개발이 시작돼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여서 줄렉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현재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다. 줄렉스의 특허 중에는 야간·주말에라도 특정인의 스마트폰을 위성항법장치(GPS)로 감지해 사내로 들어오면 자동으로 그 직원이 사용하는 IP 기기를 작동시키는 것도 포함된다. 에너지 절감이라는 이유로 업무 능률을 저하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누난 대표는 “180여 개의 고객사에서 평균 30~40%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대표적으로 꼽는 사례인 도이치텔레콤은 기존에 12억 달러까지 쓰던 에너지 비용을 30~40% 선까지 절감하고 있다. 전기료는 누진세로 적용되기 때문에 에너지를 절감할수록 비용 절감 효과는 몇 배나 커진다. 줄렉스의 고객사는 도이치텔레콤 외에도 코카콜라· BMW·다이뮬러·모건스탠리 등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이 많다.

누난 대표는 지난 2월 21일 1박 2일 일정으로 안랩(옛 안철수연구소)을 방한했다. 김홍선 안랩 대표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그는 외부 일정 없이 안랩에서 회의를 갖고 저녁에는 2시간가량 안랩 직원들에게 특강하기도 했다. 안랩의 향후 신사업이 어떤 것이 될지 예상이 가는 부분이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