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금액의 함정

서울 송파구에 사는 P 씨는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중소기업에 필요한 공장을 경매로 취득하기로 마음먹었다. 물건을 검색하던 중 면적이나 위치, 건물 구조 등이 적합한 경기도 화성시의 공장을 발견했다. 현장을 찾아가 보니 사진보다 더 깔끔하고 접근성도 좋아 더 알아볼 것도 없이 입찰을 결심했다.

해당 지역의 공장 경매 통계를 보니 평균 2회 유찰돼 3회 차에 낙찰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P 씨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놓칠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2회 차 매각에 단독 응찰, 감정평가 금액 대비 83%의 가격에 낙찰받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독 응찰될 만큼 인기가 없는 공장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유는 감정평가 금액에 있었다. 총 감정평가 금액은 14억7000만 원. 하지만 그중 3억 원 정도가 토지나 건물의 평가 금액이 아니라 공장 내부의 기계 값이었던 것이다. P 씨의 기업에서는 전혀 활용할 수 없는 그 기계들은 이미 가동이 중단된 지 오래돼 중고로 팔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기계를 고물상에 무상으로 넘기며 예상외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감정평가서를 꼼꼼히 살피고 시세 파악에 신중했더라면 피할 수 있는 손해였다.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공장부지.
김정욱기자 haby@2007.9.7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공장부지. 김정욱기자 haby@2007.9.7
감정평가는 참고 자료일 뿐

경매 개시 결정이 나면 법원은 가장 먼저 감정평가 법인에 감정가를 의뢰한다. 물건의 가치를 알아야 매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평가된 감정평가 금액은 입찰자에게 해당 물건의 가치를 가늠하게 함과 동시에 최초 매각 가격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즉 최초 매각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감정평가 금액이 최저 매각 가격이 되는 것이다. 입찰자는 적어도 최저 매각 가격 이상의 입찰 금액을 기재한 입찰표를 제출해야 하고 이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입찰표는 무효 처리된다.

감정평가는 말 그대로 물건의 가치를 평가하는 절차다. 아파트와 같이 비교할 수 있는 유사 물건이 많을 때는 시세를 파악하기가 쉽지만 토지나 상가·공장 같이 흔히 거래되는 물건이 아니라면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입찰가 산정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감정평가 금액을 기준으로 삼는 이유다.

그런데 감정평가 금액이 시세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우선 감정평가 자체의 오류 때문이다. 다음으로 감정평가 시점이 문제가 된다. 일반적인 경매라면 적어도 1~2회 유찰돼 2차 또는 3차 매각에서 낙찰되는데, 감정평가는 이 낙찰 시점을 기준으로 적어도 6개월 이상 전에 이뤄진다. 감정평가 후에 이해관계인에 대한 송달, 권리 신고 및 배당 요구, 법정 공고 기간 등 시간을 필요로 하는 절차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6개월 후에 시세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감정평가 금액이 시세보다 낮게 책정됐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의외의 수익을 얻는 행운을 잡거나 적어도 패찰에 그치는 정도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감정평가 금액이 현저히 높다면 낙찰과 동시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감정평가 금액이 품고 있는 함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매 물건의 일부가 분명히 매각 대상 물건이어서 감정평가 대상에 포함됐지만 낙찰자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라면 결국 감정평가 금액만 올려놓는 셈이 된다.

이처럼 감정평가 금액은 시세와 다른 것이 많고 원인도 다양하다. 이에 따라 감정평가 금액을 시세로 맹신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모든 경매 물건은 그 시세를 스스로 정확히 판단해 입찰가를 산정해야 한다. 감정평가 금액에 참고 자료 이상의 의미를 둬서는 안 된다.


김재범 지지옥션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