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친숙한 평균 개념으로 보면 적당한 균형인지 모르지만,
사람 머리는 냉장고에 넣고 발은 난로에 올려도 평균 온도는 적절할 수 있는 법이다.


유럽 위기의 진통이 조금이나마 완화되는가 했더니 이제는 유가가 다시 들썩이면서 새로운 불확실성의 원천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란의 핵 개발을 둘러싸고 서방 선진국의 제재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원유 공급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리스의 신용 등급 추가 강등과 같이 유럽 위기 향방에 대해 여전히 노파심이 큰 데다 중국의 경착륙 위험과 미국의 재정 교착상태 등 세계경제를 위협할 변수들이 줄을 잇는 상황에서 말이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런 근심걱정을 덜 수 있을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환경 변화를 ‘뉴 노멀’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한때 유행이었다. 세계 최대 채권 투자사인 핌코의 최고경영자(CEO) 엘 에리언이 주창한 개념이다. 기존의 부채에 기반한 인위적인 신용 창출 메커니즘, 즉 ‘올드 노멀’이 붕괴되면서 세계경제가 대대적인 지각 개편에 직면해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핌코의 창립자로, 에리언과 공동 CEO를 맡고 있는 빌 그로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뉴 노멀 정도로는 지금 세계경제가 직면한 근본적인 불확실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다. 그가 새로 꺼내 든 카드는 ‘패러노멀(Paranormal)’이었다. 우리말로 ‘과학적으로 알 수 없는’ 정도의 뜻을 지닌 표현인데, 기존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각종 불확실성들, 이른바 ‘테일 리스크’가 넘쳐나는 지금의 세계경제 정세를 꿰뚫고 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경고한 ‘블랙 스완’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둘 다 현대 경제학이 통계적으로 측정 가능한 ‘리스크’로 흡수하려고 했던 불확실성의 진정한 성격을 되살린다.

이와 관련해 미국 부시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로널드 럼스펠드의 풍자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세상에 ‘알려진, 알려진 것들(known knowns)’과 ‘알려진, 알려지지 않은 것들(known unknowns)’, ‘알려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들(unknown unknowns)’이 있다고 했다.
[경제 산책] 불확실성 넘쳐나는 패러노멀의 세상
첫 번째는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마지막은 모른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알려진, 알려지지 않은 것들’과 ‘알려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각각 리스크와 (진정한) 불확실성에 대응한다.

오늘 날 통계적인 위험관리 시스템은 실증 자료에 기반해 ‘알려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알려진, 알려지지 않은 것들’의 영역으로 이끌려고 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은, 알려진 것들’의 위험도 제기된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모르는 일들이 뒤통수를 때리며 출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평균 개념으로 보면 적당한 균형인지 모르지만, 사람 머리는 냉장고에 넣고 발은 난로에 올려도 평균 온도는 적절할 수 있는 법이다. 게다가 최근의 유가 충격은 이처럼 암울한 균형의 위험, 즉 스태그플레이션(성장 정체와 인플레이션의 중첩)의 가능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패러노멀의 세상에 북한 리스크도 넣어야 할까.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