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5조 투자…모바일 제품 키운다

지난 2월 15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하이닉스 이천공장과 청주공장을 잇달아 방문했다. 생산 설비에서부터 연구소와 협력 업체까지 둘러보는 강행군이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작업복을 챙겨 입고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직접 배식을 받아 점심 식사를 하고 연구소에 들러 개발 상황을 점검했다. 또 차세대 사업군으로 주목하고 있는 낸드플래시 생산 라인도 꼼꼼히 살펴봤다.
SK 품에 안긴 하이닉스 ‘날개’ 다나
최 회장은 이날 하이닉스 이사회 의장인 하성민 SK텔레콤 사장과 함께 임직원에게 “하이닉스가 행복해질 때까지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뛰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하이닉스는 SK그룹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하이닉스가 행복해지는 만큼 국가 경제도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이닉스는 지난 10년 동안 주인 없이 힘겨운 생존 싸움을 벌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닉스는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의 메모리 반도체 회사로서의 위상을 지켜 왔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SK그룹은 지난 2월 14일 모두 3조3747억 원을 들여 하이닉스 지분 21.1%를 인수했다. 하이닉스반도체가 SK그룹의 품으로 넘어감에 따라 새로운 성장 동력이 생겨난 것이다. 이에 따라 무디스는 2월 16일 하이닉스의 기업 신용 등급을 ‘B1’에서 ‘Ba3’로 상향 조정했으며 이에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역시 2월 14일 기업 신용 등급 ‘B+’에서 ‘BB-(등급 전망 안정적)’로 상향했다.

SK그룹 측의 의지,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지는 단호하다. SK그룹은 그동안 축적해 온 경영 역량과 개인적인 글로벌 네트워크 등을 총동원할 태세다. 최 회장 역시 현장을 잇달아 방문하는 등 경영의 최전선에서 발로 직접 뛰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을 수행하는 하이닉스의 비상을 위해 최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반도체 분야에 관한 식견을 키워 왔고 지난해 말에도 하이닉스를 전격 방문해 무한 애정을 과시했다.

실제로 SK는 굵직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해 온 기업이다. 6·25전쟁 이후 섬유회사인 선경직물로 출발해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 국내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과 2000년 신세기통신까지 가져오면서 국내 최대 통신사로 다시 한 번 우뚝 섰다. 이 때문에 재계는 SK그룹이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이닉스 직원들이 이천 공장에서 300mm 웨이퍼 등 생산제품을 점검하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20100729..
하이닉스 직원들이 이천 공장에서 300mm 웨이퍼 등 생산제품을 점검하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20100729..
SK, 굵직한 M&A로 성장

문제는 반도체 산업이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반도체 산업은 전형적인 경기 산업이다. 사이클이 고조될 때는 엄청난 이익이 발생하지만 하락 시의 손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투자를 하며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려야 하는데 글로벌 반도체 회사의 투자는 적어도 조 단위의 돈이 들어간다.

실제로 하이닉스는 채권단 아래에서 제대로 된 투자 없이 설비 업그레이드를 통해 10년을 버텨 왔다. 이 때문에 이제는 하이닉스의 설비가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많다.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적어도 올해 4조 원 정도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하이닉스에 다행스러운 사실이 있다. 하이닉스의 인수 대금 3조3747억 원 중 신주 인수 대금 2조3425억 원은 채권단이 아닌 하이닉스에 들어가게 돼 설비 투자금으로 활용된다. 즉 반도체 시황이 개선되면 내부 유보금도 늘어나는 만큼 나머지 2조 원 정도의 투자 재원 조달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미 하이닉스는 올해 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20% 늘어난 4조2000억 원으로 책정했다. 상황에 따라 최대 5조 원 이상으로 늘릴 수도 있다는 게 SK그룹의 방침이다.

업계의 환경이 하이닉스의 성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2분기 중 반도체 경기가 최저점을 찍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김장열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2011년 말부터 확대되고 있는 마이크론·엘피다·난야 등 해외 업체 간의 M&A를 포함한 구조조정 모색 소식은 올해 이들 업체의 투자 축소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한국 업체들의 경쟁력 강화라는 호재로 연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세계 3위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엘피다는 1조7446억 원의 대규모 상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부도 위기까지 몰린 실정이다. 물론 일본 정부 및 채권단이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1, 2위인 삼성과 하이닉스가 D램 반도체 미세 공정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엘피다는 미세 공정 전환이 안 돼 양산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하이닉스의 현 상황은 절대 나쁘지 않다.

임돌이 솔로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하이닉스의 매출은 올해 11조3460억 원에서 내년에는 14조38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일회성 요인을 제외한 순수 영업 부문의 순익도 올 2분기(4~6월)에는 193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흑자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4분기 삼성전자를 제외한 모든 반도체 회사가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며 “하이닉스가 기록한 영업 손실률 마이너스 7%는 엘피다(-73%)·난야(-127%)·이노테라(-65%)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소폭의 적자만 기록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SK 품에 안긴 하이닉스 ‘날개’ 다나
‘1등’ 삼성전자의 벽 넘는 게 관건

전반적인 상황이 하이닉스에 유리하게 가고 있지만 큰 걸림돌이 남아 있다. 바로 ‘삼성전자’라는 높은 벽이다. 하이닉스의 D램 분야 시장점유율이 21.6% 수준인 반면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45%에 달한다. 또한 삼성의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도 39.1%로 12.2%를 기록한 하이닉스의 3배가 넘는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사업에 15조 원의 투자를 계획하는 등 투자 규모 면에서도 하이닉스의 3배가 넘는다. 애널리스트들은 하이닉스의 기술 수준이 삼성전자에 비해 6개월~1년 정도 뒤처지는 것으로 진단한다.

D램 중심의 사업 구조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하이닉스는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중 D램과 낸드플래시 비중이 약 7 대 3으로 짜여 있다. 이에 따라 하이닉스는 D램 시장이 악화되면 실적 손실을 만회할 방법이 없었다. 앞으로 메모리 산업의 성장은 모바일 기기에 많이 쓰여 잠재 성장성이 높은 낸드플래시가 이끌 게 분명해 보인다. 신규 투자의 많은 부분을 낸드플래시 부문의 성장에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업계 전문가들은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하이닉스의 전체 매출 가운데 비메모리 비중은 고작 3% 선에 불과하다. SK텔레콤과 시너지 효과도 감안해 모바일 기기와 관련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모바일 기기의 중앙처리장치에 해당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나 카메라 필름 역할을 하는 CMOS 이미지 센서 등 통신기기에 쓰이는 비메모리 반도체도 매우 다양하다”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보다 공격적으로 개척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