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 출자를 규제한다고요?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공정위 내부에선 논의한 적이 없습니다. 규제한 적도 없고요.”

새누리당이 대기업들의 순환 출자를 규제하겠다는 방침이 알려진 2월 7일, 이에 대한 정부 방침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순환 출자’는 사실 상호 출자 종류 중의 하나다. 상호 출자에는 직접 상호 출자와 간접 상호 출자가 있다. 직접 상호 출자는 두 회사가 상대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을 뜻한다. 간접 상호 출자는 두 회사 간의 직접적인 주식 보유, 즉 출자는 없지만 3개 이상의 회사가 간접적으로 엮여 사실상 상호 출자 효과를 내는 것을 뜻한다. ‘A→B→ C→A’의 형태로 출자하는 방식인 순환 출자는 간접 상호 출자에 들어간다. 간접 상호 출자에는 순환 출자 외에도 지주적 출자, 계열적 출자, 복합식 출자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공정위는 현재 공정거래법으로 직접 상호 출자만 규제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명박 정부 들어 순환 출자 규제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아 왔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관철시키지 못한 순환 출자 규제안을 친기업 정권인 MB 정부 들어 굳이 들고나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공정위가 순환 출자 규제안을 실제로 검토한 적은 있었다. 2006년 11월 6일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직접 만나 도입 필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권 위원장이 이 자리에서 내놓은 순환 출자 규제안은 지금의 새누리당 안과 닮아 있다. 신규 순환 출자를 금지하되 기존 출자분에 대해선 의결권 제한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해소하는 방안과 기업의 자발적 해소를 유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자산 2조 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들이 주식 맞교환 등을 통해 환상형 순환 출자를 해소하면 주식 양도 차익에 대한 법인세를 3년 거치, 3년 분할 납부하도록 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듬해인 2007년 5월 이 방안을 세제 개편안에 포함해 달라고 재경부(지금의 기획재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권 위원장의 의지는 관철되지 못했다. 재경부가 공정위 요청안을 세제 개편안에 반영하지 않았던 것.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재벌 개혁을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할 수 없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순환 출자 문제에 대해선 확신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총제는 MB 정부 들어 2009년에 폐지됐다.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소비자원에서 열린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명박대통령이 김동수 공정위 위원장의 보고를 태블릿PC를 보면서 듣고 있다../20111215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소비자원에서 열린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명박대통령이 김동수 공정위 위원장의 보고를 태블릿PC를 보면서 듣고 있다../20111215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참여정부 때는 순환 출자 규제 검토

대기업들의 순환 출자 구조가 불가피한 사업 구조조정이나 정부의 산업 정책에 따라 생성된 측면이 강하다는 점도 공정위로선 부담이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순환 출자 구조도 1998년 외환위기 와중에 부실기업 매각을 서두르던 정부 정책에 따라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형성됐다. 이후 현대모비스 주요 주주이던 현대중공업이 옛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의도하지 않게 현대모비스가 현대차를 지배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현재 공정위는 순환 출자를 무작정 규제하기보다 대기업들의 지배 구조 실상을 국민들에게 공개함으로써 기업들의 자율적인 지배 구조 개편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정당이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공정위를 비롯한 경제 부처 전반의 대기업 정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