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랍니다’
이번 주 화제의 리포트는 동양증권 이석진 애널리스트가 펴낸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랍니다’를 선정했다. 국제 유가는 실물경제는 물론 금융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이란 봉쇄 정책이 결국 미국의 주식시장 상승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일종의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핵무기 개발 의혹과 핵사찰 거부로 촉발된 이란에 대한 경제·무역 제재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특히 미국의 대처는 매우 일사불란하게 펼쳐지고 있다. ‘불량 국가(Rogue country)의 핵무기 보유를 용납할 수 없다’는 교과서적인 외교 전략과 별도로 미국이 강경책을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원유 시장에서 이란의 위치부터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란의 1일 원유 수출량은 약 240만 배럴(2009년 기준)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에 이어 세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금액으로 치면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 기준으로 하루 2억4000만 달러어치에 달한다.
만약 이란의 원유 수출이 막힌다면 수요처의 이동은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가 될 것이다(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연합도 일부 가능). 지난 리비아 사태에 따라 리비아 원유 수출 감소분 역시 대부분 사우디의 공급으로 해결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이란 제재 시 사우디 등 추가 생산 여력이 있는 중동 국가가 추가로 벌어들이는 금액이 증가할 것이다.
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은 바로 사우디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수출국의 자금 행방이다. 무역 흑자를 거둔 OPEC 국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자산은 단연 미국의 국채다. 따라서 이란 제재에 따른 OPEC 수출국들의 수입 증가는 미국 국채 수요의 증가로 이어지며, 이는 미국 국채의 순조로운 발행과 입찰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 국채 국가별 보유액을 살펴보면 중국·일본·영국에 이어 석유 수출국(Oil Exporters) 그룹(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해 총 15개국)이 미국 국채의 주요 채권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11년 10월 말 현재 이 그룹은 총 2262억 달러 규모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해외 투자자의 미국 국채 보유량 증가를 희망할까. 우선 미국이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항상 적자 상태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쌍둥이 적자 상태를 상쇄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자본수지 흑자가 필요한데, 바로 이런 점에서 외국인의 활발한 자금 유입이 미국 경제에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는 21세기 들어 미국의 일관된 자금 흐름 패턴이었다.
그러나 미국 국채 최대 채권단인 중국이 국채 보유액을 줄이면서 미국으로서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을 것이다. 중국은 2010년 하반기를 고점으로 매월 조금씩 미국 국채를 처분하면서 보유액을 줄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경제의 원활한 흐름을 유지하는 길은 대체 투자자를 확보하는 것이다. 결국 이란에 대한 제재를 통해 혜택을 보는 것은 미국, 그중에서도 금융의 핵심인 주식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으로의 해외 자본 유입은 그 자체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유입된 자본은 금융 안정에 일조하게 된다. 이와 함께 일부 외국자본은 채권시장뿐만 아니라 주식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도 높다. 이란 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도 미국 증시는 강세를 이어가며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주요 증시 중 우월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정리=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