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강국 코리아 릴레이 인터뷰4- 김정희 이파피루스 대표

이름만으로는 전자책 관련 회사처럼 보이는 ‘이파피루스(epapyrus)’는 전자서명 솔루션을 판매하는 회사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분야지만 최근 9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전자서명이 실시되고 있다.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하려면 과거에는 신청서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필요한 내용을 일일이 기입해 창구에 제출해야 했지만, 전자서명이 도입되면 자리에 앉아 주민등록증만 내면 민원인이 볼 수 있는 모니터에 기본 인적 사항이 뜨고 필요한 내용만 전자펜으로 터치하거나 기입하고 서명하면 된다.

전자서명은 비단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수십 장의 대출 서류가 필요한 은행 등 금융회사나 대기업에서도 쓰이고 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졸업한 김정희(35) 대표는 스물여섯 살에 이파피루스를 창업한 젊은 최고경영자(CEO)다.
“저작권은 기술 대신 문화로 접근해야”
전자서명을 하면 좋은 점이 무엇입니까.

종이를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자동차만큼 큽니다. 나무를 잘라 종이를 만드는 생산 비용이 10원이라면 부수적 비용은 1000원이 듭니다. 종이 생산지에서 사용자에게까지 운송(운송비)해야 하고요, 또 서류를 보관하는 공간을 사용하기 위한 비용(건설비 및 임차료)이 들고 서류를 분류하고 찾는 데 시간과 인력(인건비)이 필요합니다. 종이를 폐기하는 데에도 비용이 듭니다. 폐기하지 않고 그냥 버려지면 개인 정보 유출 등의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요. 국내에서는 분류·보관·검색·폐기에 드는 비용이 연간 28조 원(출처: 이영곤 한국산업기술대 교수)입니다.

전자서명 솔루션은 현재 어디어디서 쓰이고 있습니까.

2011년 말 기준으로 서초구청·노원구청을 비롯한 9개의 지자체에서 활용되고 있고 국세청 e민원실이나 환경부 등 민원인이 방문하는 곳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민간에서는 안 쓰입니까.

은행권의 예를 들면, 대출 서류가 100장이 넘는 것도 있습니다. 내용도 반복적인 게 많고요. 그러나 법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유로 일일이 서류를 다 작성해야 합니다. 은행은 서류의 보관과 이동량이 많아 서류 1장에 드는 부대비용이 2000원에 달합니다. 전자서명은 현재 NH농협 양재점·서초점에서 시범적으로 쓰이고 있고 타 은행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자문서의 국내 점유율은 어느 정도입니까.

우리 회사의 추정치입니다만 60%로 시장 1위입니다. 외산 업체로 어도비(Adobe)가 20~30%, 나머지는 군소업체들입니다.

국내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인가 보네요.

(진입 장벽이) 없지는 않습니다. 법적 효력이 있어야 하고 모바일·인터넷에서도 사용이 가능해야 하고요. 국제표준화기구(ISO) 및 정부표준규격과 맞아야 하고 장기 보존이 가능해야 합니다. 기술뿐만 아니라 마케팅도 쉽지 않습니다. 핵심 기술을 가진 곳은 세계에서 어도비·글로벌그래픽스·아티펙스 등 5곳밖에 없는데, 우리 회사가 2005년 세계에서 3번째로 개발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까.

졸업 후 프린터에 들어가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아티펙스라는 회사에 다녔는데요, 아티펙스의 소프트웨어는 HP·캐논·교세라·IBM 등 100개가 넘는 프린터 업체에서 쓰고 있습니다. 아티펙스가 추구하는 것은 종이 소비를 빨리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빨리 프린팅 할 수 있느냐가 기술이거든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종이 소비를 빨리 하는 기술에서 종이를 없앨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본 겁니다.

주민센터 민원이 전자문서로 교체되면 정보기술(IT)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요.

주민센터에 들어가면 대기실 가운데 각종 신청서 양식이 든 빈 탁자가 서 있죠. 서 있는 상태에서 돋보기를 꺼내야죠, 불편한 팔로 글씨를 써야죠. 이젠 그게 필요 없습니다. 바로 자리에 앉으면 민원인 쪽으로 모니터가 놓여 있고 신청서를 따로 쓰지 않고 창구 앞에서 직원과 대면하며 민원을 처리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적입니다.

옛날 서류는 그대로 보관해야 하지 않습니까.

당장 모든 서류를 전자문서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는 문서는 보관이 필요 없고 옛 서류들은 보관 연한이 지나면 차례로 사라져 결국 문서보관실이 필요 없어질 겁니다.

종이는 물리적으로 남아 있지만 전자서명은 데이터가 지워지거나 사라질 우려가 있지 않습니까.

그건 기술적 문제라기보다 인식의 문제입니다. 그런 걱정은 ‘주민등록 전산망이 날아가면 어떡하나’, ‘은행 전산망이 사라지면 어떡하나’라는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문서라면 주민등록 전산망이나 은행 전산망과 같은 레벨로 보관하면 됩니다.

일반 기업에서도 활용이 가능합니까.

많이 씁니다. 포스코·동국제강·현대제철 같은 제철소들은 선박을 만드는 데 쓰이는 후판에 보증서가 붙는데 굉장히 양이 많습니다. 배 한 척에 따라오는 서류가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선급사(감독사)는 철판이 배를 만드는 데 적합한지 검사하고 서명하는데, 보통 1000페이지 이상 사인해야 합니다. 제철소에서 문서 작업하는 것을 기다리다 보면 철판은 조선소에 도착했는데 문서가 배달이 안 돼 배를 만들지 못하기도 합니다. 전자서명으로 바뀐 뒤부터 선급사가 서명하는 즉시 배가 만들어집니다. 다만 지금은 온라인으로 배달된 서류를 다시 프린터로 출력해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태블릿 PC를 이용해 현장에서도 종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 다음 단계가 될 겁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사로서 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제품 중 하나인 ‘PDF 프로’는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겁니다. 수정 가능한 워드 파일(hwp, doc 등)이 아니라 PDF 파일로 변환하면 편집이 불가능하지요. 국내 저작권 문제는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 저작권은 기술로 접근해선 안 되고 문화로 접근해야 합니다.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한 기술적·법적 제도도 중요하지만 콘텐츠·지식재산권도 엄연한 재산이고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는 점을 어릴 때부터 교육해 의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파피루스의 ‘PDF 프로’ 개인용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개인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는 그것을 이용해 사용자가 만드는 부가가치에 비례해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은 큰 가치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이익을 얻는 기업들과 주로 비즈니스를 하고 개인은 그냥 쓰도록 했습니다. 개인들은 피드백을 많이 주기도 해 상용 제품을 더 완벽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저작권은 기술 대신 문화로 접근해야”
약력 : 1977년생. 경북과학고 졸업. 2002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졸업. 2001~2003년 아티펙스. 2003년 이파피루스 창업, 대표이사(현).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