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금융권 대책 ‘이렇게’

국내 가계 부채는 금융 위기 이후 축소 현상이 진행되는 여타 국가와 달리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행 가계 신용 기준으로 2002년 이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5.9%를 훨씬 웃도는 연평균 약 8% 증가로 지난해 3분기 현재 892조5000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2010년 국내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55.5% 수준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인 2007년 영국(183.6%)과 미국(137.8%)의 중간 수준이다.

한편 가계 부채의 양적 증가뿐만 아니라 그 질도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첫째, 비은행권 대출, 생계형 대출, 신용 대출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가계 부채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가계 대출은 극도의 금융 위기 혼란에서 벗어난 2009년 하반기 이후 은행권보다 새마을금고·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 예금 취급 기관 등을 통한 대출이 급증하고 있는 한편 주택 담보대출의 목적도 주택 구입보다 생활형 자금 성격의 대출이 증가하고 고금리의 신용 대출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둘째, 원리금 상환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 가계 대출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주택 담보대출은 변동금리형 단기 대출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이자 상승 부담이 커지고 있다. 경기 둔화와 금융시장 불안 등에도 가파른 물가 오름세로 기준금리 상승 가능성이 크다. 특히 상대적으로 신용이 취약한 대출에 대한 금리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금융 당국이 가계 대출 증가율을 일정 한도 내로 맞추라는 창구지도 등 가계 대출 증가를 억제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원금 상환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셋째, 금융자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갑자기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 대부분의 가계 부채 증가가 부동산 등 실물 자산에 기반을 두고 있어 자칫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거나 실물 자산이 유동화되지 못하면 가계 부채 해결이 어렵다. 최근 수도권 중심의 주택 시장 침체 현상이 예사롭지 않다. 저성장 속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 하락세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넷째, 특히 저소득층 가계의 재무 상태가 크게 악화된 가운데 이들의 가계 부채 부담이 유난히 크다. 통계청 가계금융자산 조사를 보면 금융 위기 이후 소득 1~2분위 저소득 계층은 부채 감소 폭보다 자산 감소 폭이 커서 가계 순자산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소득분위별 1분위는 자산이 없는데다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300% 이상으로 오래전부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1000조원 가계 부채 시대] 무턱대고 조이다 보면 ‘옆구리’ 터진다
비은행권 대출 증가로 부채 건전성도 악화

가계 부채 문제는 경제가 건강할 때는 괜찮아 보이지만 높아진 가계 부채에 대한 감내 능력을 잃어버리면 가계의 위기로 나타날 수 있다. 경제성장률 저하에다 물가상승 등으로 가계의 체감 경기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 상승의 가계 몫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체감 경기 약화 및 수도권 주택 시장 침체 장기화 등에 따른 가계 순자산 가치 하락과 금융권의 상환 압력 등으로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가계 순자산 가치가 빠르게 축소되고, 특히 부채비율이 매우 높은 가계는 순자산이 마이너스가 된다면 개인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부(負)의 자산 효과(wealth effect)가 나타나면서 소비가 더욱 위축되고 다시 기업들의 수익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최근 저소득·저신용자의 2금융권으로의 대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비은행 금융회사의 가계 대출은 상대적으로 신용력이 낮은 가구에 집중된다는 측면에서 최근 이들 기관들에의 가계 대출 쏠림 현상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는 높은 변동금리 상품 비중과 낮은 원금 상환 비율 등에서 미국 금융 위기 당시 가계 부채 부실화 사례와 유사하다. 따라서 만일의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커져버린 가계 부채에 대한 감내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차입 비중이 높은 가계와 2금융권이 동시에 위기가 촉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90년대 초반 북구 3국은 가계 부채 증가로 가계와 금융회사가 모두 어려움에 빠져 3년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계 부채의 위험성을 생각하면서 지난해 6월 말 ‘가계 부채 종합 대책’을 발표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주로 가계 부채의 속도 조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속도 조절도 중요하지만 이미 커져버린 가계 부채가 갑자기 터져 가계 부채발(發) 위기 상황이 도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책 마련이 더욱 절실하다.
<YONHAP PHOTO-1239> '피해전액 보상하라'
    (서울=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앞에서 제일ㆍ토마토 등 저축은행 예금 피해자들이 금융당국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2011.10.14
    jihopark@yna.co.kr/2011-10-14 14:20:11/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피해전액 보상하라' (서울=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앞에서 제일ㆍ토마토 등 저축은행 예금 피해자들이 금융당국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2011.10.14 jihopark@yna.co.kr/2011-10-14 14:20:11/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1000조원 가계 부채 시대] 무턱대고 조이다 보면 ‘옆구리’ 터진다
무리한 부채 억제는 역효과

먼저 정책 당국은 수도권의 주택 시장이 장기 침체 국면에 빠지지 않도록 주택 수요 진작 및 거래 활성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급격한 출구전략을 자제하는 가운데 주택 시장의 연착륙 유도가 절실하다. 또한 미분양 아파트 해소를 위해 시장 기능의 강화가 필요하다. 즉, 법적·제도적 장치를 개선함으로써 시장에서 충분히 조정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고령자 및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생계형 소유자에 대한 세제 지원을 통해 중소형 주택의 거래와 공급을 활성화해야 한다.

가계 부채 대책을 금리 인상, 총량 규제 등 정책 당국 및 금융회사 쪽에서 거시·규제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가계 쪽에서 높아진 부채를 지탱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인위적 가계 대출 억제에 따른 건전 금융 소비자의 ‘제2금융권으로의 몰이’를 자제하고 가급적 이들을 은행이 흡수하게끔 유도해 금융의 선순환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제2금융권 경영 상황 악화에 대비해 이들 기관에 무리한 규모의 수신 집중을 방지하는 정책과 동시에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해 소비자 보호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가계 부채 상환 능력이 취약한 저소득층의 안정적인 고용의 증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역모기지 제도 활성화를 통한 실물 자산의 금융자산화, 전세 제도 개선을 통한 전세 자금의 금융 저축화 등으로 실물자산에 묶여 있는 자금을 유동화하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한편 금융회사도 무리하게 가계 부채를 회수하면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의해 결국 금융회사 전체 부실로 이어질 수 있어 금융권 전체 차원에서의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고 가계도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또한 국내 가계의 원리금 부담 축소를 위해 주택 담보대출을 미국 상업은행의 프라임 모기지론 형식으로 20~30년 장기화 유도하는 한편 금리 변동 위험에 대한 부담을 금융회사나 차입자에게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예컨대 덴마크식 커버드 본드를 이용한 모기지 시스템)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정부는 새해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신중한 새해 경제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의 잠재적 경제 뇌관을 다스리는 측면은 다소 미흡한 듯하다. 정부가 신중히 마련한 새해 경제정책을 차근차근 실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잠재된 가계 부채 문제가 자칫 폭발하지 않도록 뇌관을 잘 다스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1000조원 가계 부채 시대] 무턱대고 조이다 보면 ‘옆구리’ 터진다
커버드 본드(Covered Bond)
은행이 신용으로 발행한 채권이지만 담보 자산에서 우선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으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 사태 이후 낮은 발행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떠올랐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