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웅 한국델켐 대표


한국델켐은 ‘캐드캠’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다. 1980년대 중반까지 기계 부품을 만들려면 2차원 도면을 바탕으로 기술자가 일일이 쇠를 깎아 만들었지만 컴퓨터 수치제어(CNC: 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밀링(선반)이 나온 이후부터는 컴퓨터를 이용해 3차원으로 설계 도면을 그리면 프로그램에 따라 기계가 쇠를 깎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쇳가루 날리던 기존 공장이 빨래터 같았다면 지금의 공장은 빨래방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재료를 넣은 뒤 스위치를 누르고 시간이 지난 뒤 완성된 결과물을 꺼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캐드캠은 이를 가능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CAD(Computer Aided Design)와 CAM (Computer Aided Manufacturing)을 통칭하는 말이다.

한국델켐은 국내에서 60% 이상의 점유율(CNC 분야, 한국델켐 추정치)을 차지하는 회사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기계 업계에서는 네이버만큼이나 유명하다.
“소프트웨어 투자 없인 제조 강국 힘들어”
어떻게 이 업종에 뛰어들게 됐습니까.

1978년부터 경기기계공고에서 교사 생활을 했어요. 1980년대 들어 CNC 기계가 나오면서 교육부(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공고마다 교육과정을 만들었는데, 당시로서는 첨단 장비이기 때문에 학교마다 일일이 구비할 수 없었죠. 그래서 제가 있던 학교에 기계를 들여 놓고 공동 실습소를 만들었습니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영문으로 된 책과 자료를 보면서 독학했는데, 그러다 보니 제가 교사 연수도 하고 심지어 서울산업대(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도 강의하면서 캐드캠 전문가로 통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1985년에 캐드캠 1세대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화담기술로 옮겼습니다. 한국델켐은 1990년에 설립했습니다.

영국의 델켐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합작회사로 제가 한국델켐의 지분 70%, 영국델켐이 30%를 가지고 있습니다. 델켐이 일종의 엔진(프로그램의 뼈대)을 제공하고 우리가 이를 각 기계에 맞도록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손으로 직접 깎는 것과 CNC를 쓰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과거에는 설계자가 2D(2차원) 도면을 그리면 기술자가 이를 해석하고 이에 따라 마스터 모델을 목재로 만들고(mock-up) 이를 석고로 뜬 다음 다시 카피밀링(열쇠를 복사하는 방식과 비슷함)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해석이 100% 반영되지 않고 추측으로 하는 경우도 많고 또 석고의 수축 등으로 오차가 생기고 카피밀링에서도 오차가 생기기 때문에 기계의 정밀도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국산 플라모델(조립모형)이 좀 조악했는데, 요즘 아카데미과학의 제품은 일본산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더라고요.

아카데미과학도 우리 고객사입니다. 일본에서 제품을 가져오면 이를 측정부터 하는데, 여기에서부터 오차가 생깁니다. 1990년대에 우리가 레이저를 이용한 3D 스캐닝을 알려줬더니 오차도 거의 없어지고 1년 걸리던 작업이 3개월에 끝났습니다. 아카데미과학 회장이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당시 신(新)공정으로 만든 첫 제품을 감사의 표시로 줬습니다. (F-18 전투기 모형을 보여주며) 이게 그겁니다.

그 외에 일반인이 알 만한 고객사는 어디입니까.

많죠. 현대자동차의 프레스금형부를 비롯해 40여 개의 협력업체가 모두 우리 제품을 씁니다.

그러고 보니 자동차의 품질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CNC 때문이군요.

과거에는 엔진·변속기·구동축·브레이크 등 모든 부문에서 오차가 있었지만 지금은 설계가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속도나 연비에서 손으로 부품을 깎는 것과는 차이가 크지요. 또 옛날에는 자동차가 거의 네모난 모양이었는데, 요즘에는 유선형을 비롯해 다양한 모양이 나오지 않습니까.
“소프트웨어 투자 없인 제조 강국 힘들어”
한국에 CNC가 보편화된 시기는 언제입니까.

1985년에 시작돼 1990년대에 거의 보편화됐습니다.

글로벌 시장 진출 현황은 어떻습니까.

사실 정보기술(IT)에서는 한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 수준이 높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잘 알아주지 않아요. 인지도가 낮다기보다 아예 없다고 봐야 합니다. 해외에서는 품질보다 브랜드가 통합니다. 비싸고 불편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 것이라면 ‘좋다’는 식입니다. 게다가 유럽·미국에서는 ‘제조업이 아시아로 다 넘어간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아시아 업체를 외면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해외시장은 주로 어떤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습니까.

다쏘·지멘스·PTC 등입니다.

소프트웨어 업체로서 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소프트웨어는 중고(中古)가 없습니다. 1년에도 몇 번씩 업데이트가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 번 구매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서비스(maintenance) 받는 비용이 아깝기 때문이죠. 유럽에서는 메인터넌스 비중이 구매 비중과 같거나 오히려 더 많습니다. 국내에서는 소프트웨어를 ‘기술’이라기보다 ‘장비’로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한 번 사면 그만이라는 식이지요. 그렇지만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는 생산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캐드캠의 사용 목적이 뭔가요. 손으로 하지 못하던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기존 기술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정확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합니다. 이것이 생산성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사용자로서는 필요하니까 사긴 했지만 생산성을 높이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소프트웨어로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겁니까.

사용자는 가동률에만 신경 씁니다. 어쨌거나 기계가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면 실제로 쇠를 깎는 시간보다 기계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3시간이면 될 것을 10시간이나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생산성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인건비가 높은 유럽·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생산성 외에는 방법이 없거든요. 그래서 제조업이라도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겁니다. 한국에서 비용을 절감한다고 소프트웨어 비용을 아끼는 것과는 완전 반대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어떻게든 먹고야 살겠지만 성장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이 한국을 쫓아오고 있는 상황이라 변화가 없으면 제조업 강국을 계속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소프트웨어 투자 없인 제조 강국 힘들어”
약력: 1954년생. 고려대 기계공학과 졸업. 한양대 기계공학 석사. 78년 경기기계공고 교사. 85년 화담기술 이사. 90년 한국델켐 대표이사(현). 2001년 한국산업기술대 기계공학과 겸임교수(현).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