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자산가들의 전략 엿보기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맡기는 거액 자산가들은 2012년 재테크 전략을 어떻게 짜고 있을까. 국내 PB(Private Ba nking 또는 Private Banker) 업계의 메카인 강남 지역 PB센터의 책임자들로부터 부자들의 동향을 간접적으로 추적해 봤다.

부자들의 관심사 또한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9개 PB센터에 ‘최근 거액 자산가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대부분 ‘유럽 위기가 언제쯤 끝날 것인가’, ‘경기 바닥이 언제인가’, ‘공격적 투자 시작 시점은 언제인가’라고 답했다. 금융시장의 동향 외에도 ‘새해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의도 이따금 있었다.

그렇다면 거액 자산가들의 최근 동향은 어떨까. 다수의 센터장들은 “고객들은 이탈리아 등 유럽 국채 만기가 2012년 상반기에 몰려 있어 이때를 글로벌 금융 위기의 고비로 보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금융시장의 경색이 좀 풀리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박운목 NH강남PB센터장은 “2012년 1분기 또는 2분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고 그 이후에도 횡보 등을 예상하는 것이 주류”라고 얘기했다. 거액 자산가들 대부분은 이미 금융자산의 비중을 예금 및 채권 등의 안전 자산으로 옮겨 놓은 상태로 공격적인 자산가들은 주식 또는 주식형 상품의 재투자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상태다.

부자들이 안정적 자산으로 많은 비중을 이전해 놓았다고 해서 아예 재테크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영규 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장은 “박스권 내의 변동성을 활용해 지수 하락 시 분할 매수 전략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스마트 레버리지’를 사모 펀드로 만들었는데, 1호는 30%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상품은 타 PB센터에는 없는 것으로 국민은행 일반 지점에도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은행 강남PB센터 WIN CLASS은 럭서리한 분위기로 고객들에게 서비스하고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20100211
기업은행 강남PB센터 WIN CLASS은 럭서리한 분위기로 고객들에게 서비스하고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20100211
중위험·중수익 ELS 꾸준히 찾아

‘거액 자산가들이 최근 가장 많이 찾은 상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PB센터장들이 주가연계증권(ELS) 또는 파생결합증권(DLS)을 언급했다. 이미 주가가 많이 하락한 상황이어서 주가가 더 급락하지만 않는다면 ELS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녹인(Knock In) 조건이 ‘주가가 현 수준에서 50% 아래로 내려갈 때 손실’을 보는 상품이라면 손실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코스피 19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950 아래로 하락해야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진영섭 신한PB강남 센터장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ELS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고객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리스크가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현금처럼 100% 안전한 자산이 아니므로 대개 ELS는 전체 자산의 10~20% 수준에서 투자가 이뤄진다. 유직열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센터장은 “코스피 지수가 일정 수준(현 주가의 50% 수준 이상)을 유지하면 매월 1%, 연간 12%의 수익을 얻는 월 이자지급식 ELS의 판매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에선 브라질 채권과 호주 주정부 채권 등 해외 채권의 인기도 여전했다. 변주열 미래에셋증권 WM강남파이낸스센터장은 “브라질 채권은 국내 채권보다 표시 금리가 10%로 높아 기대 수익률이 매력적이며 향후 월드컵과 올림픽 개최로 고성장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조재홍 한국투자증권 V프리빌리지 센터장은 “신한은행·우리은행·하이닉스 등이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KP물)에 대한 수요가 많다. 채권 이자가 정기예금보다 연 2% 포인트 이상 높은 데다(신한은행 후순위 채권은 연 6.82%), 채권 가격이 급락한 상황이라 향후 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 차익도 기대된다”고 얘기했다.

한편 PB센터장들은 ‘한경비즈니스 독자들은 2012년 어떤 마음가짐으로 재테크에 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엇갈린 조언을 했다. 먼저 역발상 투자를 조언한 김영규 센터장은 “시장 하락기에 일정비율로 과감하게 투자할 때 높은 투자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얘기했고 조재홍 센터장은 “경기 침체라는 현재의 현상에 충실해 투자를 외면하는 다수보다는 이제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투자하는 소수가 항상 투자의 승리자였다”고 말했다.



과감 vs 신중…전략은 PB마다 엇갈려

반면 신중한 접근을 요청한 김현규 하나은행 강남PB센터 팀장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금융시장 환경이고 역사적 경험과 통계가 잘 맞지 않는 상황이 계속 발생할 것이므로 낮은 수익률에 조급해하지 말고 시장의 변화 상황을 확인하고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영섭 신한PB강남 센터장은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는 것처럼 예리하게 상황을 판단하되 소처럼 우직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직열 지점장은 “글로벌 변동성이 그 어느 해보다 커지는 해인 만큼 단기 고수익 추구보다 길게 보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률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센터장은 “글로벌 경기 모멘텀이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수익률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막연한 긍정론에 대해 좀 더 주의 깊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얘기했다.

기본을 강조한 센터장도 있었다. 박운목 센터장은 “재테크는 고수익이 목적이 아니다. 자신의 재무 목표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상품군을 선택해 실행하는 것이다. 시장의 흐름을 좇되 일희일비하지 말고 자신만의 포트폴리오의 큰 틀을 깨지 않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2 재테크 대전망] 주가연계증권·해외채권 ‘눈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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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