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대한민국 트렌드 읽기


경제학에서 가장 유명한 상은 노벨경제학상이다. 그다음으로 유명한 상은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John Bates Clark Medal)이다. 이 상은 노벨경제학상과 달리 나이 40세가 안 된 소장 경제학자에게만 수여하는데 2009년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버클리)의 에마뉴엘 사에즈(Emmanuel Saez) 교수가 수상했다.

그는 2000년대 후반에 몰아닥친 미국의 금융 위기와 극심한 불황이 미국의 심각한 소득 불평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소득 상위 1% 계층이 미국인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6년 20%였는데 이 수준은 1920년대 대공황이 발생하기 직전의 21%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전대미문의 호경기를 구가했던 1950년대에는 이 비율이 9%에 불과했다.

한 나라의 소득 불평등 정도가 왜 극심한 불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을까. 물론 부자들의 소비 규모는 크지만 소득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인 부자들의 소비 성향은 중산층이나 하류층에 비해 낮다. 따라서 소득이 부자에게 몰리면 몰릴수록 그 나라 전체의 소비 규모는 줄어든다. 반면 중산층과 하층민의 부채는 늘어나 가계의 재무구조가 취약해지고 정부는 이들에 대한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하므로 정부 재정은 적자를 면치 못해 정부 부채가 늘어나게 된다. 늘어나는 가계 부채와 정부 부채는 결국 지출 수준을 낮춰 불황이 가속화된다.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 정도가 최근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2011년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사회 조사’에서 소득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항목이 빠진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불황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때에는 각국 정부는 다른 방법을 통해 불황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불황 기간이 길어지면 과격하지만 새로운 해법으로 전쟁을 통해 불황을 타개하고 싶은 욕구가 발동한다. 1930년대의 유례없는 장기 불황 후에 발발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국에서 전쟁이 발생하지만 않는다면 전쟁은 물품 수요와 인력 수요를 크게 늘리므로 실업률도 떨어지게 돼 아슬아슬한 경제에 숨통을 틔워 주는 즉효약이다.
[2012 핫 트렌드] 혁신적인 제품, 서비스 인기 '지속'
경기 불황에 웃는 사람들

우리는 물론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일본·유럽 국가의 불황이 더 지속되면 전쟁 발생 확률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발생 확률은 낮더라도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파장을 가져오는 것을 블랙 스완 효과(black swan effect)라고 한다. 우리는 백조가 모두 하얗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만 까만 백조가 실제로 발견되자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기 때문이다. 전쟁 발생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고 일단 발생하면 인적·물적 손상 정도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더구나 최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비롯해 정치·군사적 불확실성이 커졌고 2012년 들어 우리나라의 총선과 대선, 미국의 대선 등 정치적 변수가 있다. 또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2012년 12월 지구 종말설도 있고 2012년 4월에는 타이타닉호 침몰 100주년도 겹쳐 대재난에 대한 국민들의 위기감은 더욱 증폭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면 기업의 투자나 소비자의 소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막 지역인 데스밸리에 만들어진 벙커 주택이 성공적으로 분양됐고 내부에 안전한 패닉 룸(panic room)을 별도로 만드는 집이 늘고 있는데 이처럼 환경 악화나 전쟁 위험성은 일부 건설업이나 특정 업종에 호재로 작용한다.

경기가 불황에 접어들면 웃음을 짓는 업종도 있다. 2011년에 파격적인 가격에 제품을 판매, ‘통큰’ 신드롬이 일어났다. 또 소비자의 얇은 지갑을 의식하고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착한 제품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최신 스타일의 디자인이지만 가격은 저렴한 칩 시크(Cheap Chic) 의류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른바 패스트 패션은 외국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결코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2011년 하반기 들어 하얀 국물 신드롬이 일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라면이라면 빨갛고 매워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꼬꼬면’, ‘나가사끼 짬뽕’, ‘기스면’의 선풍적인 인기로 그런 선입견이 일거에 무너졌다. 과거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황일 때 혁신적인 제품들이 많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물에 넣기만 하면 아주 쉽게 뜨거운 커피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인스턴트커피가 네슬레에서 개발된 때 역시 불황이 극심했던 1930년대였다. 2009년, 2010년에 창업 수요와 맞물려 원두 커피 전문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품질 좋은 원두 커피가 봉지 형태로 나왔는데 불황 시기에는 이런 신제품이 더욱 인기를 끌 것으로 본다.



행복 산업이 매우 중요해질 것

우리는 산업을 분류하는 통상적인 방법이 있다. 전자·제약·에너지·유통·미디어·금융·자동차·건설·통신·엔터테인먼트·외식업이 그런 예다. 하지만 급변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꼭 이렇게 구태의연하게 산업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다.

요즘 행복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앞으로 행복 산업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시의 파세오 패서디나(Paseo Pasadena)라는 쇼핑센터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통로에서 마사지 서비스를 버젓이 해주는 곳이 있다. 쇼핑을 하다가 피곤하면 약간의 돈만 내고 즉석에서 마사지를 받는 것이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안마를 해주고 받는 광경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물론이다.
[2012 핫 트렌드] 혁신적인 제품, 서비스 인기 '지속'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방재산업, 그리고 상품, 기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는 평가 산업을 비롯한 신뢰 산업도 있을 수 있다.

최근 들어 기업이 고객 쪽에서 가식 없이 진솔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진정성 마케팅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는 2012년 들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

리나라는 물적 자본, 인적 자본, 자연 자본, 지식 자본, 문화 자본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신뢰(trust)로 대표되는 사회적 자본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류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그동안 한류는 드라마와 케이팝을 중심으로 대중 엔터테인먼트 중심이었지만 이제 음식·한글·전통문화·뽀로로 같은 캐릭터, 템플스테이 같은 마음 치유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의 순수예술인 미술과 공예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10년에 10회째 열린 아트페어에 참여하는 외국 갤러리들과 아트페어 관람객이 계속 늘고 있어 아트의 대중화가 크게 진전되고 있다. 이와 함께 수준 높은 미학과 문화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2012 핫 트렌드] 혁신적인 제품, 서비스 인기 '지속'
후진국·중진국·선진국을 구분 짓는 기준으로 이런 것이 있다. 짝퉁도 못 만들면 후진국이고 짝퉁을 잘 만들면 중진국, 그리고 명품을 만들면 선진국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짝퉁을 잘 만드는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높은 부가가치와 브랜드 가치가 높은 명품을 만들 차례다.

현재 외국 럭셔리 상품이 백화점을 뒤덮고 있는데 2012년부터는 우리나라의 럭셔리 상품이 이를 대신하기를 기대한다. 럭셔리는 제품에만 국한되는 시기는 점차 지나고 있다. 호텔·여행·카페·레스토랑·통신·금융 등 많은 서비스 분야가 럭셔리의 대상이다. 코리안 럭셔리가 또 하나의 한류를 이어나 갈 것이다. 이미 진행된 한류 1.0, 한류 2.0이 한류 3.0, 4.0, 5.0으로 확대재생산되기를 바란다.

2012년은 정치·경제·군사·환경 등 여러 악재가 유난히 많이 겹쳐 있지만 이런 와중에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들이 더욱 많이 나올 것이다. 2012년 말이 되어 연초의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모두 기우에 불과했고 오히려 좋은 자극제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기를 바란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이사, 이마스(emars.co.kr) 대표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