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만 개 우후죽순… 불황·고독 탓
2011년 일본은 절대 위기를 경험했다. 재해 공포가 진원지다. 일본 사회는 해법을 원했지만 아쉽게도 마땅한 대안 마련은 요원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안식처다. 종교의 존재 이유이자 근거 기반이다. 요즘 일본에선 신흥 종교가 핫이슈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신흥 종교 관련 뉴스가 보도된다. 신흥 종교의 발흥세가 그만큼 파워풀해졌다. 실제 신흥 종교는 주택가 곳곳에 뿌리내렸다.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신흥 종교가 기승을 부린다. 서점가는 종교 단체가 점령했다. 천문학적인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책을 포교 수단으로 삼는 곳이 늘었다.일본은 신흥 종교의 천국이다. 다만 공식 통계는 빈약하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법인 숫자는 430개다. 주간다이아몬드의 직접 조사 결과는 522개까지 늘어난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실제론 19만 개가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자 규모 1위는 ‘신도(神道)’다. 일종의 전통 종교로 8만 개 단체와 7000만 명이 등재됐다. 2위는 신흥 종교의 선두주자인 ‘행복의 과학’으로 1100만 명이다. 3위는 창가학회다. 830만 명의 신자가 있다. 종합하면 일본인 중 신앙인은 30% 전후로 보는 게 타당하다. 약 4000만 명이다. 이 중 절반이 신흥 종교 신자다. 나머지는 신도와 불교 신자다. 기독교는 극소수다. 주택가 파고들어 곳곳에 뿌리내려
신흥 종교의 발흥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특유의 종교 기반이다. 일본은 다신(多神)교 국가다. 그만큼 종교가 많다. 불교·천주교·기독교뿐만 아니라 생활 주변의 신사(神社)마저 신앙 대상이다. 신사는 국가 종교는 아니지만 여전히 가장 강력한 고유·토착신앙이다. 군국주의(과거사) 사죄 문제로 한국에선 민감하지만 보통 사람의 신사 참배는 일상생활 중 하나다. 열도 곳곳에 8만 개나 포진했다. 즉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포용성·개방성이 꽤 높다. 종교는 라이프사이클에도 활용된다. 출생(신사) 후 결혼(교회)과 사망(절)에 이르기까지 생애 이벤트는 다양한 종교 색채를 띤다.
또 다른 성황 이유는 시대 변화와 직결된다. 피곤한 현실이 포인트다. 우후죽순의 신흥 종교는 사회 구성원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 불안을 배경으로 한 불만 의식 고조다. 격차 사회의 소외 계층을 중심으로 한 생존 악화가 근본 배경이다. 살기 힘들어진 탓이다. 신흥 종교라면 경쟁적인 생존 기법과 학습 압박에서 자유롭다.
스스로 고민·판단하지 않아도 해답을 편안하게(?) 제공해 준다. 중산층 이상도 신흥 종교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물질 풍요=행복 증대’의 등식 붕괴 때문이다. 심리적 위안 치유 욕구다. 고독으로부터의 탈출 욕구도 있다. 공사 구분이 힘든 종교 단체면 인맥 사회에서의 휴식처가 될 수 있다. 스트레스 완화 동기도 있다. 이때 허무함의 탈출 통로가 신흥 종교다. 사회적 저항의식도 당연히 있다. 기성 종교의 한계도 신흥 종교 발현에 한몫했다. 워낙 기성 종교의 입지가 작았고 정통 교리를 확산하는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신흥 종교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덩치와 입김이 상당한 수준에 달했다. ‘신흥’ 꼬리를 달고 출발했지만 속성 성장으로 ‘기성’을 제친 경우가 많다. 특히 정치 참가에 적극적이다. ‘교리 전파→영향 확산→신도 확보→재정 확충’ 등의 연결 고리 완성이다. 정치 지원은 일상적이다.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선 종교 단체가 정치가(후보자)를 대놓고 지원해 화제를 모았다. 신흥 종교가 정권 교체에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의미다.
몇몇은 자체적으로 신당 창당에 나섰다. 공명당을 탄생시킨 창가학회가 대표적이다. 행복의 과학은 2009년 중의원 선거 때 전체(300개) 지역구에 후보자를 내겠다고 할 만큼 파워를 자랑했다. 신흥 종교에서 기성 종교로 업그레이드된 일부 종교는 학계에까지 진출했다. 창가학회·천리교·PL교·금광(金光)교 등이 현재 고교·대학을 운영 중이다.
정치 파워는 금권에서 비롯된다. 신흥 종교의 돈줄은 의외로 탄탄하다. 다각적인 사업 모델로 돈줄을 확보하는 게 보통이다. 독자적인 자금줄(시스템)을 갖춘 곳이 일반적이다. 개중엔 수십 조(엔)의 재산 단위를 지닌 종교도 있다. 주요 언론이 종교의 돈줄에 관심이 많지만 실제 알려진 건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정설이다. 자리를 잡은 종교라면 은행·증권·보험·건설 등과도 밀접하다.
기초적인 수익 기반은 대개 신도 대상의 성물·교재 등의 판매 수익금이다. 입회비·연회비를 받는 곳도 많다. 일부 사이비 종교는 출가 명목으로 재산 기부를 강제하거나 신도의 노동력을 금전 보상 없이 취해 거대 수익을 얻기도 한다. 출판으로 유명한 행복의 과학은 재무 상황이 ‘종교계의 도요타’로 비유된다. 일본 최대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창가학회도 위협적인 자금력을 지녔다. 부동산 재벌이다. 행복의 과학은 ‘종교계의 도요타’
뿌리가 비슷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신흥 종교의 원류는 모두가 아는 기성 종교다. 신도·불교 등 전통 종교에 뿌리를 둔 게 절대 다수다. 많은 건 신도 계열이다. 신앙 대상이 워낙 다양해 가지치기에 용이하다는 풀이다. 탄생·성장기도 비슷하다. 신흥 종교의 대폭 성장은 고도성장기 이후다. 집단 취업으로 도쿄에 입성했지만 이중구조의 하층에 놓이면서 상실감·패배감에 휩싸인 이들이 대거 신흥 종교에 몰려들었다.
신흥 종교의 공통분모는 종말론이다. 공포 대상을 자의로 선정·해석한 후 이를 교리에 넣어 불안감을 자극한다. 내용은 터무니없다. 황당무계한 스토리와 교리가 많다. 가령 ‘파나웨이브연구소’란 신흥 종교는 비상식 그 자체다. 좌익 과격파가 스칼라(전자파)로 일본을 공격한다면서 미국 이주를 권고한다. 교주는 평소 전자파를 막기 위해 차에 백색 천을 두르고 산으로만 이동한다고 한다.
주적인 소련 붕괴 후 혐의 화살은 국내 좌익에게 돌려졌다. 일반 인식은 부정적이다. 잊을만 하면 사건 사고를 일으켜 열도를 뒤집어 놓아서다. 사회면의 단골 기사거리로 전락한 이유다. 압권은 지하철에서 독가스(사린) 살포로 12명을 죽게 한 사건이다. 이는 ‘일본 역사상 가장 흉악한 사회 범죄’로 규정됐다. 물론 여전히 활동 중이다.
신흥 종교에 눈길을 돌리는 그룹은 2030세대가 많다. 사회 진출과 함께 무한경쟁·적자생존·승자독식의 게임 무대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약자로 감수성이 예민한 여성의 종교 진입이 활발하다. 그만큼 삶이 피곤하고 괴롭다. 장래성이 좋은 엘리트는 물론 고학력자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물질문명(자본주의)에 대한 반동이다. 최근엔 4050세대의 관심도 증가세다. 일상적 구조조정과 고질적 격차 심화로 삶의 활력을 잃어버린 중년 그룹의 자연 일탈이다. 재도전 기회조차 줄어 ‘탈락=패배’의 멍에가 무거워진 결과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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