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2주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경영 성적표


오는 12월 1일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총괄 대표이사에 취임한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2년 전 정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설 때만 해도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데다 경영 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신세계는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는 대기업이다. 더구나 대형 마트 시장에서 국내 1위 기업이다. 최고경영자(CEO)가 바뀐다고 해서 기업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 구조다. 정 부회장 체제 2년을 단칼에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이 지향하는 비전이나 경영 스타일을 통해 신세계의 미래를 읽을 수 있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는 순발력이나 자세를 통해서는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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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디자이너’로서의 행보 ‘순항’

정 부회장에게 총괄 대표이사 취임 첫해인 2010년이 몸을 풀고 분위기를 익히는 시기였다면 취임 2년 차인 2011년은 그룹의 비전을 설정하고 본격적인 경영 행보에 나서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올 초 “미래 10년의 큰 그림을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비전 디자이너’ 역할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 출발선이나 다름없다. 비전 디자이너로서의 첫 행보는 지난 5월 (주)신세계의 이마트 부문과 백화점 부문을 (주)이마트와 (주)신세계로 각각 나눠 기업을 분할하고 기업 비전을 다시 설정한 것이다.

이마트에서는 ‘이마트 WAY’라는 경영 핵심 가치를 설정하고 ‘글로벌 종합 유통 기업’이라는 비전을 명확히 했다. ‘이마트 WAY’는 고객 마인드, 브랜드 차별화, 디자인 싱킹 등을 이마트의 철학이자 정신으로 삼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은 ‘고객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하는 브랜드 기업’이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향후 경영 키워드로는 고객·패션·자부심을 핵심 가치로 제시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기업 분할에 대해 탐탁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약화되면서 경쟁력이 떨어질 것으로 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할 후 백화점과 대형 마트라는 각각의 업태 특성을 제대로 살릴 수 있게 된데다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사업 전개 등이 가능해졌다는 시장의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올 들어 정 부회장은 수시로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신세계 관계자는 “비전을 구체화하고 중·장기 미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월에는 미국을 방문해 월마트 같은 쇼핑센터·마트·쇼핑몰·전문숍 등 다양한 선진 유통 업체 시설을 둘러봤다. 3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통 설비 박람회인 ‘유로숍(EUROSHOP)’ 현장을 방문해 디스플레이 집기, 쇼핑카트 등 각종 판매 시설의 최신 글로벌 트렌드를 점검했다. 7월에는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마이 후 틴 U&I 그룹 회장을 직접 만나 이마트의 베트남 시장 진출을 알리며 빅시 등 현지에 진출한 글로벌 유통 업체 매장을 둘러봤다.

현장 경영은 그가 경영 전면에 나선 후 일관되게 보여주는 경영 스타일이다. 간편 가정식 등 간편 브랜드 상품을 고객 편에서 직접 맛을 보거나 사용해 본 뒤에야 시장에 내놓았다. 신세계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즐기는 등 소비자 입장에서 항상 현장을 접하고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귀띔이다. 일반적으로 CEO의 현장 경영은 조직에 적당한 긴장감을 심어 줄 뿐더러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순발력 있는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기업의 경영 스타일이 달라졌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기업도 저마다 스타일이 다른 법이다. 기업의 본질인 이윤 추구와 사회 공헌 방식도 기업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신세계는 정 부회장 취임 이후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졌다.

예를 들어 백화점은 문화 마케팅을 적극 펼치고 있는데, 이는 정 부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살아 있는 거장 제프 쿤스의 ‘세이크리드 하트’를 도입해 전개한 아트 마케팅은 올 한 해 업계 최고의 화제였다. 제프 쿤스와 협업해 지난 5월 1개월간 광고·쇼윈도·쇼핑백·사은품 등에 토털 디자인 마케팅을 펼쳐 문화 예술 마케팅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8월에는 예술의 전당에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인 ‘신세계 스퀘어’를 개관해 고품격 클래식 공연을 수시로 개최하는 등 백화점 업계에 문화 예술 지원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마트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신가격 정책’이 더 강화됐다. 정 부회장은 올 한 해 이마트의 경영 방향으로 물가 안정과 동반 성장을 내세웠다. 유통 구조를 혁신하고 글로벌 소싱 역량을 강화해 품질 좋고 값싼 상품을 팔겠다는 의도다. 최근에는 이마트 TV를 내놓아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애고 대만에서 직수입해 동일한 사양의 제조업체 상품 대비 가격을 40% 정도 낮춘 것이다. 판매 3일 만에 5000대 물량이 모두 팔려 추가 발주에 들어갈 정도로 파장을 일으켰다. 병행 수입과 사전 기획으로 청바지 가격 혁명을 일으킨 것이나 산지 농가와 계약재배를 통해 배춧값을 대폭 낮추는 등 유통 구조 혁신을 통한 가격 혁명을 주도했다.

신사업 부문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정 부회장은 복합 쇼핑몰 개발에 공을 들였다. 복합 쇼핑몰이야말로 앞으로 유통 업계의 핵심 사업이 될 것이라는 게 정 부회장의 인식이다. 지난 9월 미국의 글로벌 쇼핑몰 개발, 운영 업체인 터브먼과 손잡고 시작한 하남유니온스퀘어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부지 11만7000여㎡에 백화점·패션전문관·영화관 등을 짓는 수도권 최대 복합 쇼핑몰 조성 사업이다. 10월에는 청라지구 복합 쇼핑몰 투자 협약식을 체결해 동북아를 대표하는 국제 비즈니스 도시에 교외형 복합 쇼핑몰을 개발하기로 했다.
현장 속으로 ‘풍덩’…복지·문화 ‘일일신’
조직 문화를 대대적으로 바꾸다

정 부회장이 취임한 후 조직 분위기가 크게 젊어진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과감한 복지 제도를 내놓으면서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퇴직 임직원 자녀들에게 10년간 연간 최대 1000만 원까지 학자금을 지원해 주는 퇴직 임직원 학자금 지원 제도는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내부 고객인 임직원들이 자긍심을 느껴야 매장을 찾는 고객들을 섬길 수 있다”는 정 부회장의 철학이 꽃을 피운 셈이다.

정 부회장은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위해 직원들의 복장 문화도 바꿨다. 2008년 도입한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청바지·운동화 패션까지 허용했다. 정 부회장도 지난 5월 이마트 법인 설립 비전 선포식에서 청바지를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사내 행사에서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지난 3월 ‘희망 배달 5주년’ 기념식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힌 채 아이들을 격려하는 정 부회장의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직접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춘 채 장학금을 전달한 것이다.

정 부회장은 새로운 리더십을 선보이며 3세대 경영인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고객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호평을 받았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트위터를 통해 고객과 적극 대화함으로써 소통 리더십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중간 관리자 단계를 거치면서 걸러지기 쉬운 고객의 쓴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취지로 그가 트위터를 적극 활용하면서 신세계는 젊은 이미지를 덤으로 얻었다는 평이다.

신세계의 2011년 경영 성적표는 우수하다.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월별 매출 신장률이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국내 대형 마트와 백화점 시장은 포화 상태다. 신사업 육성을 통해 활로를 뚫어야 한다. 그가 공을 들이고 있는 해외 진출도 풀어야 할 숙제다.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국 이마트를 되살리는 것도 그의 몫이다. 사회적으로 공생이 강조되면서 대형 유통 업체에 대한 견제도 만만치 않다. 유통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젊은 오너 경영인인 정 부회장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신세계를 세계적인 유통 기업으로 키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