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의 수난 시대다. 회사에선 잘리고(고용) 깎이며(월급) 그들을 기죽인다. 비정규직은 그렇다 치고 정규직조차 회사 출근을 감사히 여긴다. 경쟁 유도, 적자생존의 일상적인 구조조정 때문이다. 예전이었다면 묻어서라도 가겠지만 경쟁·성과주의 시스템에선 그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샐러리맨은 버텨내는 게 최선책이 됐다.

그래서인지 가축(家畜)에서 비롯된 ‘사축(社畜)’이란 말까지 나왔다. 회사 가축이란 뜻이다. 중도 퇴직 경험자 중 상당수가 ‘사축’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경험담도 늘어나고 있다. 노동시장이 경직적인 상황에서 일장풍파가 일상적인 경쟁 무대에 뛰어들어봤자 득보다 실이 많다는 구구절절한 메시지다.



잘리고 깎이고…월급쟁이 수난

사실 봉급쟁이 인생 연장은 그리 어렵지 않다. 종신 고용의 역사적 전통 유산을 가진 일본 기업에선 특히 그렇다. 여전히 해고 금지를 주창하는 최고경영자(CEO)도 많다. 직원을 자르는데 과민 반응을 보이며 가족주의 경영을 강조하는 경우다.

비자발적 퇴사가 적은 이유다. 이런 점에서 일본 기업엔 잉여 근로자가 적지 않다. ‘사내 실업’이다. 일할 의욕이 있는데도 실업자처럼 일이 없는 경우다. 그렇다고 일 없이 돈만 받아가는 사내 실업자를 언제까지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발적 퇴사를 유도하게 마련이다.

기업 내부에서 사내 실업자를 정규 라인 밖으로 배제시킴으로써 그들에게 소외 공포를 안겨주는 효과를 기대한 결과다. 암묵적·자발적 인원 조정이다. 사내 실업은 불안의 씨앗이다. 사내 실업 당사자의 해고 공포가 높다. 지금이야 버틴다지만 언제든 퇴사 압박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내 실업자는 중견 규모 이상의 회사에 많다. 규모가 클수록 전체 실적이 커 개별 기여도와 존재감이 묻히기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내 실업자 규모는 얼마나 될까. 상상외로 많다. 일본의 완전실업률(근로 의사)은 4%대다. 근로 의사가 없는 사람까지 합해도 5%대다(실업률). 즉 완전실업자는 300만 명 정도다(6200만 명×0.05%). 하지만 사내 실업은 완전실업자의 2배가 넘는다.

이는 ‘고용 보장’ 숫자로 확인된다. 일의 양보다 근로자가 얼마나 더 있는지를 계산한 수치다. 자료(경제재정백서·2009년)에 따르면 금융 위기 이후 기업의 사내 실업(잉여 인원)은 607만 명까지 증가했다. 전체 직장인의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직후 5년 평균이 300만 명이었으니 무려 2배나 늘어났다. 고용 위기의 심각성과 불안감이 극단적으로 높은 배경이다. 결국 실제 실업자까지 포함해 일 없는 사람만 900만 명이다. 사내 실업까지 실업 통계에 넣으면 완전실업은 16%까지 치솟는다. 같은 맥락에서 사내 실업률은 직장인 중 자영업자·공무원(1700만 명)을 제외하면 실제 13%로 계산된다.

사내 실업자의 연령은 무차별적으로 확산된다. 승진 정체에 임박한 4050세대가 전통적으로 많지만 최근엔 2030세대의 젊은 근로자까지 가세했다. 겨우 입사했는데 정규직에 어울리지 않는 잡일만 배당받는 것이 대표적이다. 인터넷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내가 사내 실업이 아닌지 불안하다”며 도움을 청하는 글이 끊이지 않는다. 2030세대의 사내 실업은 특히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은 일이 없어 업무 스킬을 배우지 못하니 전직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으니 처음엔 비자발적 사내 실업이다. 게다가 정규직이다. 그만큼 말 못할 고민이 깊다. 회사 입사 후 적당한 업무가 장기간 배당되지 않자 ‘사내 실업 증후군’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애초의 조바심이 추후엔 자포포기로 연결돼 현실 안주에 만족하는 사내 실업자도 많다.
유니클로 도쿄본부 사무실.2009년4월/도쿄=차병석 특파원
유니클로 도쿄본부 사무실.2009년4월/도쿄=차병석 특파원
사내 실업이 최근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서적 출간, 뉴스 보도 등으로 그들의 열악한 실태가 알려진 게 계기다. 2010년 하반기에 출간된 ‘사내 실업-기업에 버림받은 정규직’란 책이 도화선이 됐다. 자신이 사내 실업자였던 저자의 구구절절한 사내 실업 실태 고백이 화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사내 실업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가 주목을 받았다. “일도 없이 돈 받으니 더 좋을 것”이란 편견이 그렇다. 당연히 실상은 정반대다. 원래 600만 사내 실업자는 300만 완전실업자의 눈 밖에 났다.

일 없이 돈 받는 사내 실업이 취업 좌절 중인 완전실업자에게 좋게 보일 리 만무하다. 일자리를 둘러싼 격차 문제로의 연결이다. 즉 파견 해고와 내정 취소 등 청년의 일자리 불안 기저에 나가야 하는데 버티고 있는 600만의 사내 실업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봐서다. 일 안하는 정규직을 자르면 그만큼 청년 취업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다. 일부에선 “오르는 월급을 지키려는 욕구와 프라이드로 일도 없는데 회사를 계속 다닌다”며 사내 실업의 이기주의를 질타한다.

이때 흔히 거론되는 비교 대상이 과거 유행한 ‘마도기와(窓際)족’이다. 창가에 의자가 있어 온종일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다 퇴근하는 전통적인 잉여 인간을 뜻한다. 회사에선 주요 업무를 하지 않고 남겨진 일정 기간을 보낸 후 퇴직하는 게 보통이다. 업무에 방해되지 않도록 창가에 자리를 배치한 걸 풍자해 만들어졌다.

무위도식하며 기업을 좀먹는 용도 폐기의 퇴물 직원을 비하하는 일종의 야유다. 일종의 부정적인 전관예우다. 자르지는 못하고 얼마간 편의를 봐주는 일본적 고용 관행의 일부다. 종신 고용이 건재했던 1980년대 대거 확산됐다. 주로 퇴직에 임박한 관리직이 해당된다. 지금은 연령대가 낮아져 정리해고·명예퇴직에서 살아남은 후 회사에서 눈칫밥을 먹는 경우도 포함된다. 이미지는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정적 존재감과 집단적 소외감으로 요약된다.

사내 실업자는 ‘마도기와족’과의 동일 취급을 거부한다. 일이 없는 직원이란 점은 둘의 공통분모지만 세부 사정은 크게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금전 대우다. 마도기와족은 일만 없을 뿐 급료·대우는 정상 그룹과 동일하다. 퇴직 때까지 몇 년만 여유롭게 출근하면 퇴직금과 연금까지 나와 여생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사내 실업은 속내가 완전히 다르다. 당장 연령대가 낮아졌다. 40대를 비롯해 2030세대도 증가세다. 이들은 월급이 적어진데다 그나마 근무 기회가 없어 실적조차 별로다. 결과적인 실력 저하로 전직도 원천 봉쇄다.
<YONHAP PHOTO-1533> Japan's auto giant Nissan Motor employee assembles the company's electric vehicle Leaf at the Oppama plant in Yokosuka city, suburban Tokyo on July 2, 2011. Nissan started factory operation on Saturday and Sunday from this month as Japan Auto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 agreed to close their factories on Thursday and Friday for power saving since the expected power shortage in the wake of the March 11 earthquake and nuclear disaster.   AFP PHOTO / Yoshikazu TSUNO

/2011-07-02 16:51:09/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Japan's auto giant Nissan Motor employee assembles the company's electric vehicle Leaf at the Oppama plant in Yokosuka city, suburban Tokyo on July 2, 2011. Nissan started factory operation on Saturday and Sunday from this month as Japan Auto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 agreed to close their factories on Thursday and Friday for power saving since the expected power shortage in the wake of the March 11 earthquake and nuclear disaster. AFP PHOTO / Yoshikazu TSUNO /2011-07-02 16:51:09/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돈을 벌면서도 인원 정리 계속

즉 사내 실업자는 잔업 제로에 실력 향상 기회 제로다. 경영 악화 땐 자연스레 해고 조정 1순위에 오른다.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없다. 실태 보도 이전엔 실상조차 베일에 가려져 마땅히 고민을 상담할 대상도 없었다. 능력 부족을 탓할 뿐 자신만의 특수 사례로 취급하기 일쑤였다. 힘들게 취업 관문을 통과했는데 사내 실업자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실망감은 상당한 수준이다. 누구든 사내 실업 후보자란 점도 불안 근거다.

사내 실업은 기업의 변심과 맥이 닿는다. 과거 일본 회사는 종신 고용을 상식처럼 받아들였다. 지금도 일본적 가치 복원에 열심인 회사는 종신 고용과 해고 금지를 불문율로 이해한다. 이 때문에 적자를 내고 일자리가 없어도 해고만큼은 가급적 허용하지 않았다. 사내 실업 형태로 고용을 유지하며 훗날에 대비하는 전략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대량 감원과 내부 유보가 정비례한다. 돈을 벌면서도 인원 정리를 계속한다는 뜻이다. 인건비를 비용 요소로 본 결과다. 경기가 좋아 인원이 필요할 땐 값싼 비정규직을 잠깐씩 쓰는 대신 나빠질 땐 즉각적인 인원 감축으로 고용 비용을 줄이는 전략이다. 사내 실업은 이때 의미를 갖는다. 인원 정리 수순이 ‘비정규직→사내 실업자→정규직’으로 자연스레 옮아가도록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에 설치된 절묘한 충격 흡수 장치란 얘기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