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발전재단·한경비즈니스 공동 기획 ③


여성 친화 기업들의 키워드는 ‘유연함’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 관리자와 여성 고용을 크게 늘리면서 유연하고 자율적인 조직 문화를 낳고 이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경쟁력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우수한 여성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탄력적이고 유연한 근무 환경을 잘 유지하는 것이 비결이었다.

성 다양성을 관리자 단위까지 성공적으로 올렸고 제도뿐만 아니라 여성 배려 정책을 갖추고 있는 한국BMS제약·국제방송교류재단·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사례를 살펴보고 어떻게 경쟁력 제고로 연결했는지 알아봤다.


①여성 고용 어디까지 왔나
②여성 고용 왜 필요한가
③여성 친화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④여성 고용 확대, 대안은 무엇인가


외국계 바이오 제약 회사인 한국BMS제약의 대치동 사무실. 임원 회의 모습이 국내 다른 기업과 사뭇 다르다. 임원 회의라면 으레 머리가 희끗한 남성 중역들이 딱딱한 분위기에서 브리핑하고 경쟁적으로 안건에 대해 찬반 논의를 하며 때로는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한다. 한국BMS제약의 임원 회의도 수년 전까지는 비슷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 임원 회의에서는 임원 14명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고려하면서 여러 생각이 더해지고 합쳐져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권위적이고 상명하복식 회의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민주적인 분위기다.

어떤 의견을 내놓든 논리만 분명하다면 인정받을 수 있고 이렇다 보니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 논의를 거친 안건은 회사 정책에 적극 반영된다. 이러한 변화는 임원 14명 중 여성이 6명으로 늘어나면서 나타난 변화다. 지난해 한국BMS제약에 새로 부임한 마이클 베리 대표가 남성 위주의 조직 문화를 타파하고 여성 임원을 적극 영입한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11년 된 한국BMS제약은 초기 설립 때만 해도 남성 위주의 조직 문화였고 바로 전 사장 임기 중에는 여성 임원 수가 2명에 불과했다. 조직 구성원들은 기존에 비해 여성 인력이 늘어나면서 유연하고 포용성을 가진 조직으로 탈바꿈했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BMS제약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42.8%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전사적으로도 여성 직원의 비율이 현재 44%에 달한다. 미국 본사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고 이에 따라 한국지사도 ‘다양성으로부터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기조를 추구하고 있다. 장영윤 한국BMS제약 상무는 “한국에선 다양성을 추구할 때 외국처럼 인종·종교·출신 등이 크게 세분화되지 않기 때문에 다양성의 초점이 여성에게 맞춰진다”고 설명한다.

여성 직원을 통한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BMS제약은 출산·육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출산·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고 대부분 3개월이 아닌 1년간 휴직한다. 여성 직원 86명 중 18명이 산휴를 이용했고 현재 한 여성 임원도 산휴 중이다.

이와 함께 육아를 책임지고 있는 여성 직원에게는 유연 근로제가 큰 도움이 된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아이를 시설에 맡기고 찾는 것이 여유롭다. 아이가 아프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집에서 업무를 처리할 수도 있다. 이러한 회사의 지원 정책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직원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한다고 해서 생산성이나 성과가 줄어드는 일은 없다.

장 상무는 “매출이 지난해 전년 대비 30% 성장했다”며 “업계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리더십 등 여러 요소가 있을 수 있지만 성 다양성을 추구하며 유연한 조직 문화를 갖추게 된 것이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여성 친화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양 날개로 날아 기업 경쟁력 높인다"
AA제도 통해 점진적 변화 이끌어

아리랑TV채널을 운영하는 국제방송교류재단도 여성 인력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으로 손꼽힌다. 외국어 방송인 만큼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 보도 기자의 86%를 차지하고 있고 채널 마케터, 프로그램 제작 등 직무별로 약 30% 수준의 여성 인력이 배치돼 있다. 설립 15년 차를 맞는 아리랑국제방송은 지속적으로 여성 고용률이 상위 수준이었다.

하지만 여성 관리자 비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2004년 최초로 여성이 부장직에 올랐고 여성 관리자로는 유일했다. 적극적으로 여성 관리자를 늘리고 체계적인 여성 인력 활용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취지로 2006년 적극적 고용 개선 조치(AA) 제도가 아리랑국제방송에 도입됐다.

경영지원팀 이정호 부장은 “방송사 특성상 남녀 차별이 별로 없지만 대외 경쟁력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여성 인적자원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아리랑국제방송은 ‘젠더 파트너십 조직 문화’에 대한 여성 고용 촉진 컨설팅을 받았고, 간부 및 전 직원들이 관련 워크숍과 교육에 참가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아리랑국제방송은 여성 고용 목표제를 도입하고 여성 관리자 운용 목표를 수립했다. 또한 여성 인력의 복리 증진을 위해 ‘육아 데이’ 도입, 시차 출퇴근제, 태아 검진 휴가, 보건 휴가 보장 등 각종 프로그램을 운용했다. AA제도 도입 당시 여성 고용과 관련해 설정했던 목표를 예정보다 일찍 성취할 수 있었다. 여성 관리자 비율을 2012년까지 16.6%로 높이는 것이 목표였지만 2011년 벌써 목표를 초과해 18%를 기록했다.
여성 친화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양 날개로 날아 기업 경쟁력 높인다"
여성 관리자가 늘면서 조직 문화가 급속도로 활성화되는 긍정적 효과를 얻기도 했다. 실례로 아리랑국제방송은 내부 부서끼리 만족도를 평가해 점수화하고 있는데, 여성이 이끄는 부서의 점수가 월등히 높게 나온 것. 부서별 평균 점수가 5점 만점에 3.1점인 데 비해 여성 상사가 이끄는 부서는 3.5점을 받았다.

비슷한 예로 ‘금녀의 영역’이었던 방송 엔지니어 부문에도 여성 직원들이 투입되면서 분위기가 크게 변했다. 이 부장은 “엔지니어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강해 다소 배타적인 모습이 있었는데 여성 직원과 함께하면서 부서 내부나 타 부서와 원활히 소통하는 모습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현재 아리랑국제방송의 기술팀 50명 중 여성 직원이 4명으로 늘어났다.

아리랑국제방송은 지난 8월 송지애 전 CNN 한국지국장을 최고경영자(CEO)로 전격 영입하면서 최초의 여성 대표를 맞았다. 그리고 박칼린 킥 뮤지컬 스튜디오 감독(호원대 주임교수), 나승연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대변인 등 존경받는 여성 리더가 바로 아리랑국제방송을 거쳐 커리어를 키워나갔다. 사회적 여성 리더를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아리랑국제방송의 여성 친화적 기업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성 친화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양 날개로 날아 기업 경쟁력 높인다"
일과 가정 이상적인 조화 만들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2009년 한국정보사회진흥원과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통합돼 설립됐다. 이때 대대적인 조직 개편 과정에서 가족 친화를 경영 원칙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주목할 점은 가족친화담당관이 있다는 것이다. 주요 임무는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적극적으로 실행 방법을 찾고 가족 친화 경영과 성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워킹 맘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업무 환경을 만들었다. 남녀 직원 모두 아이가 6세 미만이라면 1년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는 등 휴직이 자유롭고 유연 근무제, 스마트 워크, 단시간 근로제, 안식년제 등을 통해 일과 가정의 조화를 제도적으로 보장받는다.
여성 친화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양 날개로 날아 기업 경쟁력 높인다"
이 때문에 여성 직원들의 이직이 거의 없고 기혼 여성이더라도 출산·육아에 따른 경력 단절이 없다. 여성 직원들이 슈퍼우먼이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족친화담당관 이헌중 부장은 “휴직 제도를 보장해 주는 만큼 직원들의 사명감이 높아지고 부서 내에서 서로 비는 자리를 채워 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따라서 휴직으로 공석이 있더라도 업무상 차질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조직 문화 덕분에 한국정보화진흥원은 기획재정부가 공공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고객 만족도 평가에서 중소형 준 정부 기관 중 제일 높은 등급을 2년 연속 받았다.


취재=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