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일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낸 기억이 별로 없다. 잠이 들면 일을 마치고 들어오셔서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시는 게 아버지의 생활이었다. 아버지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선 1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회사를 찾아가야 했고, 그나마도 시끄러운 공장 안에서 잠깐 보는 것이 전부였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그마저도 아버지 회사에 가는 일이 드물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10대에는 사실 아버지의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셨지만 회사 형편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자연히 집안 형편도 별로 좋지 않았다. 언제나 집보다 어려워진 회사 일을 먼저 걱정하던 아버지. 그러기에 어머니는 집안 살림을 위해 맞벌이를 하면서 홀로 살림을 꾸려 나가셨다. 삶이 힘드셨던 건 당연하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남자가 일을 시작하면 다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한때는 그런 아버지가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반대로 어머니가 아프고 힘들어하실 때마다 난 아버지가 무척 서운했다.

대학교 때의 일이다. 결국 아버지의 사업은 벼랑으로 치닫고 있었고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까지 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대구에 내려가 있는 동안 동업하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급기야 지방에서 홀로 법의 심판을 받으셔야 했다. 아버지는 친구가 당신을 구하기 위해 대구에 내려올 것이라고 끝까지 믿으셨지만 결국 어머니와 내가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야만 했다. 어떻게든 아버지를 석방시키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가 이런 고생을 하는 동안 아무 수입이 없었던 집안을 위해 난 휴학했고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버지 대신 가장이 되어 집안을 꾸려 나갔다. 군 제대 후에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어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했고 장학금을 타지 못하면 곧바로 대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사정이었기에 이를 악물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숨이 차도 계속 달려야만 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 중 가장 힘들었고 많은 눈물을 흘렸던 시기였다. 아버지는 당연히 그때의 일들을 전혀 모르신다.
[아! 나의 아버지] ‘일중독’ 아버지와 나
“난 절대로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리라.”

지금 와서 내 자신을 돌이켜본다. 그런데 일을 좋아하고 파묻혀 지내는 내 모습이 그 시절 아버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니, 너무도 닮은 모습에 놀라곤 한다. 그렇게 닮지 않겠다고 했건만….

20대 때부터 시작된 달리기를 멈추면 왠지 더욱 숨이 차올라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달리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도 없어 또 달리기 시작한다. 어떤 회사에 들어가든 사장님들이 제일 좋아할 스타일일 것이다. 그 덕에 칭찬도 많이 받고 사회에 나와서도 남들보다 빨리 성장한 것 같다.

지금 나는 내 사업을 한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가끔 두려울 때도 있다. 아버지와 똑같이 되는 것은 아닌지, 자식이나 아내에게 비쳐지는 내 모습이 결국 예전 아버지와 같아지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가끔 집사람에게 직접 확인해 보기까지 한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20대가 시작되던 때에 아버지가 성공해서 풍족한 삶을 살았다면 지금의 내 인생은 어땠을까. 달리지 않고 걷고 있지는 않을까. 풍요 속에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어느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좋건 나쁘건 아버지의 영향으로 중요한 20대를 하루하루 시간 낭비하지 않고 살았으며 지금도 소중한 시간을 열심히 달리고 있다. 또 가정에 소홀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난 아직까지도 아버지와 단둘이 있으면 서먹서먹하다. 그래도 이제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 건강하세요.”

유희동 코코네코리아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