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피델리티자산운용 전무

[투자 고수와의 대화] “한국 기업 이익의 질 달라져…조선업이 유망”
김태우 피델리티자산운용 전무는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을 가장 가까이에서 캐치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이유는 그가 외국인들이 한국에 투자하는 펀드, 즉 역외 펀드 중 가장 큰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펀드는 다름 아닌 ‘피델리티 코리아 펀드’다. 이 펀드의 6월 말 기준 운용 규모는 11억1700만 달러(약 1조2200억 원)에 달한다.

이 펀드와 똑같은 방식으로 운용되는 역내 펀드 규모는 7월 20일 기준 3143억 원으로 역외 펀드와 역내 펀드를 합하면 김 전무가 투자를 결정하는 펀드의 규모는 1조5000억 원을 훌쩍 넘어선다. 그렇다면 이처럼 큰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김 전무는 한국 증시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을까.

올 하반기 한국 증시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좋다’입니다. 올해도 국내 기업의 실적은 분기나 연간 기준으로 지난해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주가가 기업 이익의 함수라고 가정한다면 이처럼 좋은 성과는 주가 상승을 예상하게 합니다.

작년 우리 기업들의 이익은 85조4000억 원 수준이었으며 시가총액은 963조8000억 원이었습니다. 올해 예상되는 우리 기업의 이익은 113조 원에 달합니다. 반면 현재 시가총액은 1183조 원 수준입니다.

즉 작년 주가수익률(PER) 수준은 13.3배 수준이었던 반면 올해는 10배 정도밖에 안 됩니다. 코스피 지수가 처음으로 2000을 기록했던 2007년 PER는 15.2배에 달했습니다. 그때의 상장기업 이익은 불과 62조3000억 원 수준이었죠. 즉 한국 기업들의 이익이 한층 레벨업 된 반면 주가는 지극히 평범한 수준이라는 겁니다.

한국 기업들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지배력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의 주력 사업이랄 수 있는 D램, 휴대전화, 자동차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각각 약 60%, 30%, 8.5%에 달합니다. 2007년 초의 시장점유율은 약 45%, 28%, 5.3%에 불과했습니다.

올 하반기 기관과 외국인이 함께 매수에 나서는 ‘쌍끌이 장세’를 예상하고 있는데요.

먼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투자가의 순매수·매도 포지션은 거의 거꾸로 움직였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즉 외국인이 팔면 기관이 사고, 기관이 팔면 외국인이 사는 형태였죠.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먼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국내에서는 부동산·주식 등 모든 자산이 상승했습니다. 심지어 그림 값까지 올랐죠. 3년간 이어진 1000에서 2000까지의 주가 상승은 개인 투자자들이 최초로 ‘주식도 장기 투자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줬습니다.

반면 이 기간 외국인들은 왜 주식을 팔았을까요. 2004년 말 기준 외국인들은 국내 전체 기업 지분의 44%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 각국의 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지분 투자 비율 평균은 21%대였습니다.

또 1998년 외국인 투자 자유화가 시작된 이후 한국 기업 주식에 투자한 외국인들은 2005년까지 적게는 수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까지 수익을 냈습니다. 즉 외국인들은 ‘많이 먹고 많이 들고 있어서’ 판 겁니다.

2008년의 금융 위기는 반전을 줍니다. 한국 투자자들을 공포에 빠지게 한 거죠. 반 토막 난 주가에 ‘아직도 주식을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퍼진 겁니다. 그간 한국 증시는 매번 500~1000에서 왔다 갔다 한 경험이 네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죠. 당시는 한국만의 일이었습니다. 반면 금융 위기에 따른 하락은 비단 한국 증시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하락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틈타 외국인들이 다시 들어온 겁니다. 외국인들은 그 당시의 주가 하락은 글로벌 경제 위기일 뿐 한국 기업들의 이익 상승을 알았던 거죠. 우리가 공포에 떨던 사이에 말이죠.

하지만 지난 5월을 기점으로 펀드에 다시 돈이 들어옵니다. 기관의 매수 여력이 생긴 것이죠. 또 외국인들의 매도는 올 7월 초까지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며 그간의 스케일에 크게 못 미치는 약 2조 원어치를 매도했습니다. 2004년 이후 계속 엇갈리기만 하던 외국인과 기관의 투자 방향이 올해 하반기 처음으로 맞아떨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에선 국내 가계 부채의 증가가 주식시장은 물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가계 부채는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한국 가계의 금융자산은 이보다 더 가파르게 늘어난다는 겁니다. 2010년 1분기 가계 부채 증가율은 전년 대비 8% 수준이었으나 금융자산 증가율은 무려 16%를 넘었습니다.

올 1분기 역시 가계 부채 증가율은 8%에 머물렀지만 금융자산 증가율은 10%를 훌쩍 넘었습니다. 또한 최근 들어서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증가 속도가 가계 부채 증가 속도보다 더 빨라졌습니다. 즉 수입 증가 속도와 빚 증가 속도가 적절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죠. 주식 등 자산시장엔 긍정적인 움직임입니다.

[투자 고수와의 대화] “한국 기업 이익의 질 달라져…조선업이 유망”
그렇다면 하반기 가장 유망한 업종은 무엇입니까.

내년까지 내다본다면 가장 주목할 업종은 조선업입니다. 자동차·화학·정보기술(IT) 등도 괜찮지만 조선업이 현재 가장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내 조선업은 해양·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서 확실한 글로벌 경쟁 우위를 갖추고 있습니다.

후발 주자인 중국과의 격차도 큽니다. 또 일본 원전 사고 이후 각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즉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선박이나 설비에 대한 발주도 늘고 있습니다. 이 부문에서 국내 조선 업계가 확실한 차별화에 성공한다면 큰 수혜를 볼 것으로 판단됩니다.

2005년부터 ‘피델리티 코리아 펀드’를 운용하셨습니다. 수익률은 어떤가요.

설정 이후 올 3월까지 6년간 누적 수익률 139.02%를 달성했습니다. 코스피 수익률이 같은 기간 90.36% 올랐으니 50% 정도의 초과 수익을 낸 거죠. 자랑스러운 것은 설정 현재까지 24분기 중 19분기에서 코스피 수익률을 웃도는 안정적인 결과를 냈다는 겁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꾸준히 좋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비결은 뭡니까.

먼저 글로벌 금융회사인 피델리티의 글로벌 네트워크 때문일 겁니다. 국내 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해외 상황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전설적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가 몸담았던 피델리티는 세계적으로 약 1조9000억 달러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 독립 자산 운용사로, 주식 애널리스트 및 펀드매니저만 577명에 달합니다.

즉 쉽게 말해 현대자동차에 투자를 원한다면 경쟁 상대인 도요타를 분석하고 투자하는 전문가, 또 가장 큰 시장인 미국 자동차 시장을 분석하는 전문가 등을 한 번에 동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와 함께 ‘발로 뛰는 투자’를 한다는 점입니다. 2010년 한 해 동안 피델리티는 한국 기업에 대한 실사 및 콘퍼런스를 무려 714회 진행했습니다.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하루에 2.7개 기업을 탐방한다는 것이죠. 저만 해도 작년에 국내 기업 실사 및 콘퍼런스에 200회 정도 참여했습니다.

약력 : 1991년 하나은행. 2000년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 팀장. 2004년 피델리티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 2006년 피델리티자산운용 전무, 한국주식부문 대표(현).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