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아이콘 따라잡기 세 번째

세기의 로맨티스트 윈저공이 미국인 이혼녀 심프슨 부인을 사랑해 왕위를 포기하고 ‘공’ 칭호를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자유로운 사랑만큼이나 패션에서도 자유로웠는데, 현재 세계 남성 패션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멋쟁이로 꼽힌다. 도대체 왜 윈저공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남성 패션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그는 20세기 보수적이었던 영국 왕실의 돌연변이로 참 ‘끼’가 많은 로열 패밀리였다고 할 수 있다. 틀에 박힌 듯이 보수적이었던 영국 왕실의 패션에서 벗어나 다양한 옷 입기를 시도했는데, 당시 그 다양한 시도들은 클래식에 철저히 입각한 새로운 스타일이었으며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 상류층 남성들에게 교과서처럼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날 남성 클래식을 이야기할 때 윈저공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가 힘들 정도다. 다양한 패션 용어들도 탄생했는데, ‘윈저 노트’와 ‘윈저 칼라 셔츠’가 대표적이다. 윈저 노트는 윈저공이 즐겨 사용하던 매듭이 큰 넥타이 매듭법으로 각이 벌어진 와이드 스프레드 셔츠에 어울린다.

이 셔츠가 바로 윈저 칼라 셔츠로 다른 어떤 셔츠보다 포멀한 타입이다. 특히 더블브레스트 슈트에 잘 어울린다. 윈저 칼라 셔츠는 다양한 패션 브랜드들이 트렌드와 무관하게 매 시즌 선보이고 있는 클래식 아이템이다.

윈저공은 글랜 체크무늬(흰색과 검정색, 흰색과 회색, 흰색과 갈색 등의 배색으로 이뤄진 스코틀랜드 격자무늬의 일종)를 매우 좋아했으며, 이러한 무늬와 무늬를 겹쳐 입는 ‘패턴 온 패턴’ 룩을 즐겨 입었다.

당시만 해도 이러한 무늬가 있는 셔츠와 타이에 재킷까지 함께 입는다는 것은 영국 신사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또한 윈저공은 당시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 클럽에서 아가일 무늬(어떤 색의 다이아몬드 체크 위에 가늘고 경사진 격자무늬가 겹쳐지는 무늬)의 브이넥 스웨터만 입고 골프를 했는데, 이 복장은 흰 셔츠와 타이에 재킷을 입고 헌팅캡을 쓰는 것이 정석이었던 당시 신사의 골프 패션에 파격적이지 아닐 수가 없었다.

그날 윈저공의 골프 클럽에서의 의상은 고지식한 영국인들이 노동자 계급의 생활복에서 비롯된 스웨터를 신사의 정식 의상 품목 중의 하나로 인정하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기본에 충실하되 파격을 즐기다
[황의건의 Style& Story] 희대의 멋쟁이·클래식의 대명사 ‘윈저공’
윈저공에게 패션은 무엇이었을까. 정치에서 물러나고 권력을 내려놓은 후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의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커버하기 위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한국에서는 남성 클래식과 럭셔리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곤 하는데, 필자는 남성 클래식과 럭셔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윈저공부터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질 좋고 비싼 옷을 입고 다양한 브랜드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윈저공의 삶을 이해한다면 더욱 많은 것이 보일지도 모른다.

의외로 역사에 길이 남을 멋쟁이 윈저공은 그다지 많은 옷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물론 필자의 옷장도 언제나 간결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안에서 남들과 다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코디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날그날 스타일링을 할 때 사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스타일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 빅팀(패션의 희생자)’이 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옷장 안에 모든 아이템들이 어떻게 매치해도 서로 맞아떨어질 수 있도록 제대로 맞춰 쇼핑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초보 연기자들이 자연스러운 애드리브를 할 수 없듯이 패션에서의 애드리브도 그 기본과 룰을 알 때 가능하다. 물론 그 기본과 룰은 언제나 ‘클래식’이다. 한국 남성들이여, 이제 클래식의 애드리브가 가능할 때까지 클래식을 몸으로 배우고 가슴으로 익히자.

황의건 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