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청와대가 개각을 단행한 지난 5월 6일 저녁 과천 정부청사 기획재정부의 기자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인데도 기자들은 퇴근을 미룬 채 컴퓨터 앞을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7시. 재정부 장관에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이 내정됐다는 속보에 기자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기자들에게도 의외였다. 농수산식품부·환경부 장관 등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내정됐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왔다. 개각이 되면 무조건 내정자의 첫마디와 첫 표정을 취재해야 한다.

박 내정자를 아는 선배 기자를 통해 박 내정자의 위치를 수소문했다. 박 내정자는 서울 밀레니엄힐튼 호텔에 있다고 했다. 무작정 호텔로 달려갔다. 박 내정자의 수행비서관을 통해 기자들이 공동으로 인터뷰를 요청했고 20∼30분 뒤 박 내정자가 모습을 보였다.

박 장관은 “청와대 참모 출신인 만큼 일을 하라고 맡기면 아무리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마땅히 총대를 메고 가야 할 상황”이라며 “서민 생활과 일자리 창출에 사심 없이 올인하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경제 사령탑이 된 박 장관의 첫 공식 발언이었다.

내정자 집 인터뷰도 필수
개각날 벌어진 좌충우돌 취재기
신임 내정자에 대한 제대로 된 인터뷰는 내정자 자택에서 해야 된다는 게 선배들의 가르침이다. 호텔에서 인터뷰한 내용으로 기사를 작성한 뒤 박 장관의 자택이 있는 분당 서판교로 향했다.

도착하니 밤 11시. 30분을 기다려도 박 장관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확인해 봤더니 이미 집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 한잔 주시라”는 기자의 말에 전화기 너머로 박 장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잠옷을 입고 있던 박 장관이 옷을 갈아입고 기자를 맞았다.

박 장관의 부인이 내온 차와 과일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박 장관은 “지금까지 국제금융 쪽만 안 해봤는데 열심히 공부하면 쫓아가지 못할 것이 없고 부족한 부분은 참모에게 맡기면 된다”며 취임 뒤 국정 운영에 대한 의지만큼은 강하게 밝혔다.

기자들의 ‘뻗치기(취재를 위해 현장에서 무조건 기다리기)’가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장관에 내정된 뒤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은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내정자를 만나기 위해 지난 5월 9일 저녁 9시 내정자 사무실이 차려진 서울 강남 양재동에 있는 농수산물유통공사를 찾았다.

2002년 차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뒤 10년 만에 장관에 ‘깜짝’ 발탁된 터라 개인적으로도 궁금증이 컸다. 그러나 장관은 사무실을 이미 떠난 상태였다. 빗속을 뚫고 자택이 있는 강남 대치동으로 이동했다.

경비원한테 내정자가 방금 집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전화를 걸었다. 서 내정자는 “아직은 밖에서 일을 보고 있으니 전화로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조건 인터뷰를 해야 된다는 의무감과 지금까지의 뻗치기가 아깝다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기자의 부탁을 정중히 거절하는 내정자에게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아침에 “전화 인터뷰도 곤란하다”던 서 내정자도 한 발 물러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취임 뒤에 하겠다”며 “고등학교 때 농촌을 잘살게 하겠다고 다짐한 뒤 30년 동안 농업과 농촌을 위한 길을 걸어온 만큼 남은 평생을 올인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보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