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이명박 대통령은 포항 동지상고(야간)에 다니던 학생 시절, 한 여학생을 지독하게 짝사랑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과 같은 교회에 다닌 이 여학생은 교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담당했다.

그렇지만 이 대통령은 동지상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이 여학생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다. 이 여학생도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왔다.
MB가 문화 예술 명예박사된 사연
이 대통령은 성인이 돼 이 여학생을 수소문해 찾아갔지만 냉담한 반응에 다소 실망하고 발걸음을 돌렸고 이후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는 지난 대선 유세 때 남편이 부드러운 남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교회에서 피아노 치는 여학생이 가장 부러워서 자기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려고 마음먹었던 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문화 예술과 거리가 멀었던 시골 소년이 이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이 여학생의 피아노 치는 모습 때문이었다고 지인들과 참모들에게 자주 언급했다.

이 대통령이 첫 월급으로 중고 카메라를 산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간부 사원이 돼선 오디오를 제일 먼저 구입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라디오 연설 때 “해외 출장을 다닐 땐 국내에서부터 미리 계획을 짜서 음악회와 예술 작품을 보러 다녔다”고 했다.

또 “사무실에 틀어놓은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으며, 문화를 통해 폭넓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긍정과 희망의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투자를 유치할 때 ‘세율이 얼마냐, 우리 기업이 가면 어떤 경제적 혜택을 줄 것이냐’는 등의 경제적 질문을 할 줄 알았지만 그들은 ‘서울에 오페라 하우스는 있느냐’, ‘우리 직원들이 주말에 여가를 어떻게 보낼 수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먼저 한다”며 문화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 오케스트라 설립을 제안했고 2005년 재단법인 서울시향이 탄생했다. 지휘자 정명훈 씨를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초빙했다.

이 대통령이 즐겨하는 시 낭송도 이 여학생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에서 비롯됐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이 대통령은 연초 시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시 낭송회를 갖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그대의 두 눈이 너무 아름답습니다…”로 시작되는 자작시를 낭송하면서 시인들과 교감의 시간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한 사석에서 “중고등학교 때 시인이 되려고 했다기보다는 그냥 저녁에 들어가면 내 삶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며 “그래서 노트에 적은 것이 결국 삶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한 바 있다. 조병화 시인의 ‘5월이 오면’이라는 시를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7대학은 5월 14일 프랑스를 방문한 이 대통령에게 문화 예술 분야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대학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문화 예술에 대한 열정을 높이 샀다”고 수여 배경을 밝혔다.

국가 정상이 대학에서 문화 예술 관련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이례적이라고 한다. 이 대통령도 문화 예술 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7개의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경제·경영·행정·정치학 관련이다. 시골 소년이 한 여학생을 짝사랑한 게 세계 문화 예술의 중심지에서 문화 예술 명예 박사학위를 받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홍영식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