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라이프스타일 따라잡기

강남 그리고 강북. 이 두 단어는 어쩌면 서울을 가르는 행정구역상의 경계임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으로는 한강보다 더 멀게 느껴지게 하는 것만 같다. 강북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강남을 뉴 머니, 즉 1980년대 버블 경제를 틈타 부동산으로 벼락부자가 된 졸부들이 사는 곳으로 비하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강북의 성북동·평창동처럼 강남에도 최근 20년 사이에 그 비하의 면죄부를 받은 동네가 있으니 바로 ‘청담동’이다. 청담동에는 그간 강북에 없었던 모던한 ‘신 서울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청담동에는 패션을 넘어 스타일이라는 것이 존재하게 됐으며 고급 호텔 요리에서는 결코 찾아 볼 수 없는 창의적인 ‘파인 다이닝’ 음식 문화가 공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과 동경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모던한 ‘新 서울 문화’의 시발점
‘청담동 며느리 룩’의 실체

세계적인 명품 매장이 양쪽으로 늘어선 거리와 고급 빌라들이 조용히 앉아 있는 청담동은 지형적으로도 이미 럭셔리하다. 지하철이나 버스로는 절대로 한 번에 발을 디딜 수 없으며 지대가 너무 높아 걷거나 산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자연스레 차가 없는 ‘뚜벅이’들의 출입이 일차적으로 제한된 지역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발레 파킹 서비스, 대리운전 서비스가 생겨난 곳이 청담동이기도 하다.

우리는 청담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의 스타일을 두고 농담 삼아 ‘청담동 여자, 청담동 며느리 스타일’이라는 치기어린 표현을 종종 쓰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러한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정형화된 그들만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연예인 중에서는 심은하와 이영애처럼(실제로 그녀들은 청담동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과하게 패셔너블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그러면서도 독특한 우아함과 요조숙녀다움을 지니고 있어야 청담동 레이디 스타일이다.

물론 과한 액세서리는 전혀 하지 않으며 헤어는 언제나 단정하고 내추럴함을 유지하기 위해 평상시 엄청난 머릿결 관리가 필수다. 또한 요즘 대세인 한 듯 안 한 듯한 ‘민낯 화장’, ’물광 메이크업’도 이미 10여 년 전부터 청담동에서는 ‘조성아’, ‘정샘물’, ‘이경민’ 등 국내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에 의해 유행의 시발점이 됐다.

최근 청담동 여성들은 로고가 드러나 있는 유명 브랜드는 입지 않는다. 의상은 도무지 속을 뒤집어 보지 않고서는 그 브랜드를 알 수 없는 희귀 브랜드만을 선택한다. 10여 년 전 청담동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몸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 아르마니·페라가모·지춘희 등이었다면 지금은 세계 각국의 희귀한 브랜드나 아직 유명세를 덜 치른 인디 디자이너 옷들로 그들의 옷장을 채우고 있다.

예를 들어 과감하게 보디라인을 드러내는 랑방·필립림·지방시·발망 등이 그것이다. 다만 백은 각 브랜드별 시그니처 백을 장르별로 소장하고 있다. 영원한 클래식 아이템인 크로커다일 악어 백뿐만 아니라 에르메스의 벌킨 백, 샤넬의 2.55 백 등 다양한 최고급 백들을 십여 종 이상 소유하고 있다.

패션이 시즌별 유행을 탄다고 해도 백만큼은 유행을 타지 않는 아이템을 선택한다. 매 시즌 200여만 원 미만의 잇 백에 열광하는 패션 추종자들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구두는 옷을 입을 때마다 다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수십 켤레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마놀로 블라닉, 크리스티앙 루부탱, 로저 비비에 등과 같이 클래식한 구두에서부터 요즘에는 주세빼 자노띠, 지미추, 스튜어트 와이츠먼 등과 같이 조금 더 섹시하고 트렌디한 브랜드로 넘어가고 있다.

청담동에는 낮에 유난히 여성들이 많다. 청담동 여성들에게는 브런치를 하면서 가볍게 낮술(샴페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을 하는 문화가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다. 이것이 부정적이다, 아니다를 이야기하기 전에 브런치 문화가 이미 유럽·미국·일본 같은 선진국의 상류사회에서는 일상적인 문화라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청담동의 평일 낮 11시, 서너 살배기 정도 되는 아이를 둔 젊은 여성들이 청담동으로 찾아든다. 친구들과 브런치를 즐기기 위해서다. 아기 엄마라고 믿기 어려운 몸매와 스타일을 지닌 그녀들은 자리를 잡자마자 사내아이에겐 닌텐도 게임기를 쥐어주고 여자아이에겐 미니 DVD 플레이어에 예쁜 공주 애니메이션을 틀어주는 것으로 수다를 떨 준비를 마친다.

브런치 문화가 시작된 곳

샴페인과 오르가닉 샐러드, 그리고 메인 메뉴로 이어지는 동안 수다는 절정에 이르고 디저트 타임에 이은 국적 불명의 진한 아메리카노 커피로 두 시간 이상의 브런치는 끝이 난다.

그리고 낮술에 대한 ‘완전범죄’를 위해 한 가지 의식을 추가하는데 바로 알코올기가 남아 있는 입 안을 깔끔하게 가셔줄 페리에 같은 스파클링 워터다. 이처럼 대낮에 청담동에서 한가로이 샴페인 브런치를 즐기는 여성들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대부분 재테크·건강·뷰티 등이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인 만큼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대단한데, 오로지 자식들에게만 집중해 금전적·시간적인 투자를 하느라 정작 자기 자신은 문화 생활을 할 여유가 없는 ‘하우스 푸어’인 대치동 엄마들에 비해 청담동의 엄마들은 경제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더 여유롭고 독립적이다.

가족을 위해 절대로 극성맞은 모습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자기 자신이 가족만큼이나 소중하다. 즐길 줄 아는 우아한 엄마들인 것이다. 하지만 안으로는 매우 열정적인데,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모범 답안이라는 게 나와 있을 정도로 조기 유학과 그전에 진행해야 할 여러 가지 필수 조건들이 구체화돼 있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청담동 여성들이 사실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청담동에서 나고 자란 여성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는 주거지역의 의미라기보다 다소 번잡스러운 상업지역으로 팽창하고 번성하면서 청담동에는 진짜 청담동 여성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담동 여성’들의 정체성은 구체적이고 상징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 부류의 여성들이 타 지역에서 몰려들어 자신의 여흥을 즐기고 문화를 소비하는 곳으로 청담동이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짜 청담동 여성들은 이마저도 진부하다며 도산공원이나 한남동 끝자락 이태원으로 숨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황의건 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