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이 버드랜드소프트웨어 대표

[한국의 스타트업] “사업 하려면 뚜렷한 가치관이 필요하죠”
버드랜드(Birdland).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이름이다. 버드랜드소프트웨어를 찾아가면서 이름의 유래가 궁금했다. 버드랜드는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라는 그룹의 재즈 음악 곡명에서 따 왔다.

첫인상에서 받은 느낌과 달리 버드랜드는 자유분방함과 개성이 물씬 풍기는 곡이다. 버드랜드소프트웨어의 최정이 대표는 “각자의 강한 개성을 품고 있지만 힘을 합치면 큰 시너지를 내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에게 적합한 곡인 것 같다”며 이름을 지은 배경을 설명했다.

버드랜드소프트웨어는 이처럼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면서도 스마트 TV 시대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기술 기업을 꿈꾸는 엔지니어들이 뭉친 당찬 스타트업이었다.

버드랜드의 창업 멤버인 최정이 대표와 한동훈 이사, 이용언 수석 프로그래머 세 사람은 KAIST 석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 대표는 카이스트 전자공학과 석사, 한 기술이사는 전산학과 석사, 이 수석 프로그래머는 재료공학과 석사 출신이다. 카이스트 93학번인 최 대표는 시큐어넥서스라는 보안 관련 벤처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의 스타트업] “사업 하려면 뚜렷한 가치관이 필요하죠”
인터넷이 PC에서 TV로 넘어올 것이라는 신념

“너무 한탕을 노리고 진짜 알맹이는 없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네오위즈에 있던 장병규 대표를 찾아갔습니다.” 그가 고민을 털어놓자 카이스트 선배이기도 한 장병규 대표가 이런 조언을 해 줬다. “아이템을 쫓아가지 말고 시장의 큰 흐름을 보면서 계속 도전하다 보면 기회가 올 겁니다.”

대화를 나누며 문득 그는 깨달았다고 한다. “아 내가 그동안 사업 철학이 없었구나.” 사업을 하기 위해선 뚜렷한 목표뿐만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시장이 움직이는 큰 흐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창업한 회사는 큐브온이다. 창업 연도는 2004년. 장병규 대표와 만난 바로 그해다. 시장의 큰 흐름을 생각하던 그는 인터넷의 주요 무대가 PC에서 결국은 TV로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카이스트 97학번 후배이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한동훈 이사와 함께 큐브온을 시작했다. 큐브온은 디빅스(Dvix) 플레이어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비욘위즈라는 회사와 접촉하게 된다.
[한국의 스타트업] “사업 하려면 뚜렷한 가치관이 필요하죠”
“비욘위즈는 휴맥스 초창기 멤버인 박한기 대표가 만든 셋톱박스 및 디빅스 플레이어 제조업체였습니다.”

비욘위즈가 큐브온을 인수하면서 최 대표는 비욘위즈에서 셋톱박스를 만드는 일에도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비욘위즈가 토필드라는 회사와 소송에 휘말리면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2009년 2월, 최 대표는 한 이사, 이 수석 프로그래머와 함께 회사를 나와 원래 그들이 하고 싶었던 스마트 TV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해 8월 버드랜드소프트웨어를 설립했다. 사업 목표는 스마트 TV용 소프트웨어 제작이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PC를 살 때 제조업체의 브랜드보다 중시하는 것이 인텔 인사이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마크 등이 됐습니다. 겉을 누가 만들든 핵심 칩이나 소프트웨어를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만들었다면 안심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마트 TV에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버드랜드소프트웨어는 이제 설립한 지 2년 된, 자본금 2억 원짜리 작은 회사다. 설립 후 지금까지 주로 외주 업무를 하거나 주문 제작을 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해 왔다. 직원 수도 7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허황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이들이 시장의 흐름을 상당히 잘 보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스마트 TV의 모습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 기술력이 이들의 아이디어를 받쳐주기만 한다면 확실히 일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버드랜드소프트웨어는 본앤젤스투자파트너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금액은 많지 않지만 이들로서는 처음으로 받은 대외적인 평가였다.

지금의 스마트 TV엔 사실 ‘스마트’가 없다
[한국의 스타트업] “사업 하려면 뚜렷한 가치관이 필요하죠”
최 대표는 앱스토어를 TV로 옮겨놓거나 PC에서 하던 인터넷을 TV에서 그대로 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의 지금의 스마트 TV에 상당히 의문을 갖고 있다.

“스마트 TV는 인터넷 콘텐츠를 그냥 TV로 옮겨온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스마트 TV죠. 방송과 다양한 동영상이라는 기존 TV의 기능에 인터넷이 추가됨으로써 어떤 새로운 경험을 줄 것인가. 특히 TV에서만 가능한 것이 스마트 TV의 모습일 겁니다. 스마트 TV에서만 할 수 있는 것. 그게 중요한 거죠.”

물론 최 대표가 딱 떨어지는 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의 방향을 그렇게 보고 그 시장에 대비한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제조사와 동등한 관계로 계약하고 대규모 매출이 발생하는 것은 6월 말부터다. 세계 디빅스 플레이어 선두권 업체인 엑스트리머(Xtreamer)와 계약, 소프트웨어를 공급한다. 이 제품이 6월에 처음으로 나온다. 라이선스만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제품이 팔리는 만큼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올해 PVR도 시작하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스마트 TV용 소프트웨어를 양산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죠. 그때쯤 되면 스마트 TV 시장도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겁니다.”

임원기 한국경제 IT모바일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