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국민연금의 의결권 확대를 통해 대기업을 견제해야 한다”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발언으로 불거진 논란은 결국 곽 위원장의 개인 의견에 불과한 것이며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식으로 일단락됐다.

곽 위원장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된 후 재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현 정부의 정체성은 친시장”이라며 “개인이 불쑥불쑥 시장에 혼선을 줘선 안 된다”고 못을 박은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 위원장 측은 “사전 협의가 있었다”며 여전히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어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일까.
‘국민연금 의결권 확대’ 발언 진실은
“청와대와 정부 안에 동조자 적지 않다”

지난 4월 26일 미래기획위원회 주최로 열렸던 토론회에 모습을 보인 곽 위원장은 무척 자신에 찬 표정이었다. 그는 논란이 된 기조연설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대기업들이 정부의 말을 안 듣는다. 정부가 무슨 힘이 있느냐. 국민연금의 의결권 확대는 가입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한다”며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곽 위원장은 자신의 발언이 언론에 소개된 후 재계의 반발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트위터를 통해 “반발은 당연히 예상했다. 그래도 가야 할 길”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또 “청와대와 정부 안에서도 동조자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실제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토론회가 열리기 사흘 전인 4월 23일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 각 부처 장관들이 모였던 재정전략회의를 통해 곽 위원장이 자신이 발표할 글을 직접 읽었다”며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김석동 금융위원장 등 관계 부처 장관들도 이를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날 윤 장관은 “취지는 옳다. 잘 검토해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도 “10% 상한선만 지켜진다면 주주권을 행사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진 장관은 “국민연금 이사장을 정부가 임명하는 만큼 주주권을 행사하면 ‘관치’로 비쳐질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이 같은 장관들의 토론 과정에서 특별한 찬성이나 반대 의견을 표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곽 위원장은 재정전략회의가 끝난 뒤 청와대 측에 “이 내용 그대로 토론회 때 발표하겠다”고 했으며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다만 이 대통령은 “그러면 ‘사견(私見)’이라는 부연 설명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최근 기자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 “솔직히 (곽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실무적인 차원에서 전혀 협의된 내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임 차관은 또 “한국노총·민주노총 관계자 등 비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위촉돼 있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관계 부처 장차관으로 이뤄진 정부 측 위원들이 대부분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임 차관의 이 같은 설명은 현 시스템에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확대하면 관치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확대하겠다면 먼저 국민연금이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틀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호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