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자체 ‘우리도 있다’

매년 3·6·9·12월은 지수 선물, 개별 종목 선물, 지수 옵션, 개별 종목 옵션의 만기일이 겹치는 달이다. 장 마감 10분 동안 조 단위의 돈이 오가며 지수 변동이 극심해지는 이 시기를 그래서 ‘쿼드러플 위칭 데이(Quadruple witching day:네 마녀의 날)’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11일의 옵션 만기 쇼크가 대표적인 사례. 장 마감 10분 전부터 도이치증권에서 풀어낸 엄청난 양의 매도 물량으로 29조 원이 증발했고 코스피 지수는 2.7% 급락했다. 풋옵션 매도 포지션을 취했던 투자자들은 대규모 손실을 봤다.

3월 16일, 증시 관계자들과 투자자들은 장 마감 직전 숨죽이며 지수 변화를 체크했다. 올 들어 첫 번째 선물 옵션 동시 만기일에 지난해와 같은 증시 급변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이날 역시 외국인들은 1조1800억 원어치에 이르는 순매도에 나섰다. 특히 마감 직전 동시호가 때 6000억 원어치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하지만 시장의 우려와 달리 이날 최종 지수는 전날에 비해 19.89포인트(0.99%) 하락하는데 그쳤다. 동시호가에서도 3.83포인트(0.19%) 하락해 11·11 쇼크가 재현되지는 않았다.

외국인의 매도 물량만 본다면 증시 급락을 가져오고도 남을 양이었다. 바꿔 말하면 이들을 제외한 누군가 대규모 매수에 나서 증시 쇼크를 막았다는 얘기다. 주인공은 증시 투자자별 구분에서 ‘기타’에 속하는 ‘국가·지자체’였다. 이날 ‘기타’는 연·기금 2400억 원과 함께 400억 원어치가 넘게 주식을 사들여 지수 급락을 방어했다.
우정사업본부, 운용자금 3조 원 ‘큰손’
‘옵션 만기 쇼크’ 막은 주인공

한국거래소는 투자자별 매매 주체를 크게 개인·외국인·기관으로 나누고 있다. 기관에는 다시 증권·보험·투신·은행·종금·기금·사모펀드 등이 포함된다. 이 밖의 투자자를 ‘기타’로 분류하는데 이들이 바로 국가와 지자체다. 주로 우정사업본부·고용노동부·서울특별시·한국자산관리공사·정책금융공사 등이 이에 속한다.

특이할 만한 것은 국가·지자체의 증시 투자금 대부분이 우정사업본부 자산이라는 점이다. 우정사업본부는 국내 금융시장에서 80조 원(예금 50조 원, 보험 30조 원)을 굴리는 ‘큰손’이다.

전체 운용 자금 중 채권 투자액이 절반 이상이고 주식 투자금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3조 원에 달한다. 우정사업본부는 기획재정부 산하 기관으로 예금과 보험 사업으로 얻은 자산을 건전한 금융시장 육성과 국가의 경제적 역할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법령에 명시돼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지수를 방어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건 차익 거래를 통한 대규모 매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차익 거래는 선물과 현물의 가격 차이를 이용한 매매를 말한다.

선물 가격이 오르면 현물을 매수하고, 동시에 고평가된 선물을 파는 것. 원래 수준으로 복귀하면 반대로 고평가된 현물을 팔고 선물을 사는 방식으로 투자금을 청산해 차익을 얻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현물과 선물의 가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증권 거래세(매도 금액의 0.3%)’를 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우정사업본부는 바로 이 거래세가 면제되는 유일한 투자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0월 올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우정사업본부의 거래세 과세를 2013년 1월 1일부터로 유예하는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차익 거래는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데, 최근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곳도 바로 우정사업본부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