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천국의 미래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5월 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을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가장 심하게 침해할 우려가 높다며 우선 감시 대상 국가로 지정했다. 중국은 7년 연속 우선 감시 대상 국가로 지정됐다.미국의 영화·소프트웨어·음악·출판 기업이 모여 설립한 국제지식재산권연맹은 2009년 미국 기업이 지재권 침해로 150억 달러(16조 원)의 손해를 봤다고 추산했다. 이 가운데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이 중국의 불법 복제 때문에 입은 손해가 35억 달러(3조7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불법 복제로 대표되는 짝퉁은 중국에서 관광 상품이 될 만큼 자리를 잡았다. 중국이 짝퉁과의 전쟁을 치른다며 경찰이 압수하고 소각하는 장면 등을 수시로 언론을 통해 내보내지만 짝퉁 피해는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짝퉁은 중국에서 산자이(山寨)이라고 부른다. 도둑들의 요새란 뜻으로 깊은 곳에 숨어 은밀하게 작업한다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 다른 나라에도 가짜 상품은 있지만 유독 중국의 짝퉁이 세계인의 주목을 끄는 것은 종류를 가리지도 않고 워낙 대놓고 뻔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막을 내린 상하이 모터쇼. 작년엔 세계의 명차인 롤스로이스 짝퉁이 전시돼 놀라게 하더니 올해 역시 다양한 짝퉁을 선보였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상하이자동차는 이번 모터쇼에서 쌍용 카이런의 앞뒤를 베낀 ‘로웨 W5’라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내놓았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합작 관계에 있는 베이징자동차는 BC302라는 자체 모델을 선보였다. 벤츠 B클래스와 실내까지 거의 비슷하지만 크기는 작다. 메르세데스벤츠 마이B와 꼭 닮았다.
통은 ‘혼다’인데, 얼굴은 ‘벤틀리’스럽고, 엉덩이에는 ‘벤츠’ 램프가 붙는 식의 ‘짬뽕’ 짝퉁 차도 눈에 띄었다고 외신은 전했다. 생긴 것은 분명 1990년대 차를 닮았는데 후면부에 ‘EV(Electronic Vehicle: 전기차)’라는 엠블럼이 붙어 있는 차도 있었다. 전기차에는 불필요한 내연기관(가솔린·디젤) 차량에서 사용하는 변속기도 그대로 달려 있었다. 중국 짝퉁 문화의 발원지로 과거 의적(義賊) 문화를 들기도 한다. 잘나가는 사람의 것을 훔쳐 베낀 뒤 싼값에 만들어 못사는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적 문화와 맥이 닿아 있고 이게 중국식 기개라는 설명이다.
산자이도 아예 산업화되는 모습이다. 휴대전화는 신제품이 나오면 며칠 내에 짝퉁이 나온다. 쉽게 짝퉁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분업화돼 있기 때문이다. 몇 명의 업자들이 모여 역할을 분담한다.
나는 케이스, 너는 무슨 부품, 너는 무슨 부품, 이런 식으로 역할을 나눈 뒤 한정된 물량만 생산한다. 지하시장에 물량을 뿌리고 난 뒤 잠적하는 게 기본이다. 심지어 공장 전체를 베낀 경우도 있다. 과거 일본의 한 전자업체 공장을 통째로 베끼고 수출 주문을 받아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던 업체도 있었다.
하지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산업질량(품질)협회가 최근 발간한 ‘산업질량 신용백서’에 따르면 산업 신용 문제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한 해 평균 5855억 위안(97조 원)이며 이 중 짝퉁 제품 제조·판매, 품질 불량 등에 따른 손실은 2000억 위안(34조 원)에 달했다.
기술력이 뒤처진 과거에는 산자이 제품이 중국 경제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도 했지만 이젠 오히려 중국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질적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장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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