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값의 역습
담뱃값이 오르는 데 농민 단체가 반대 시위를 하는 이유는 뭘까. ‘던힐’, ‘마일드세븐’ 등 외산 담뱃값이 줄줄이 인상됐다. 관련 농민 단체의 시위와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소비자물가를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부 유출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담뱃값 인상에 따른 각종 이슈를 들여다봤다. 외산 담뱃값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일본계 담배 회사인 JTI코리아는 5월 4일부터 소매점에서 파는 ‘마일드세븐’과 ‘셀렘’ 등 2종 10개 제품의 값을 현재 2500원에서 2700원으로 8% 인상하기로 했다.
이는 JTI가 지난 2004년 12월 세금 인상분에 따라 500원씩 가격을 인상한 이후 처음으로 7년 만에 담뱃값을 올린 것이다. 이에 앞서 BAT코리아도 담뱃잎 가격 인상을 이유로 지난 4월 28일부터 전 제품 값을 2500원에서 2700원으로 인상했다.
BAT코리아가 공급하는 담배는 던힐·켄트·보그 등 애연가들에게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제품들이다. BAT코리아와 JTI코리아는 국내 담배 시장점유율이 각각 18%, 7%로 영향력이 큰 편이다.
담뱃값은 조세율이 61.98%에 달한다. 제조업체 출하 가격 29%, 담뱃세 53%, 부가가치세 8%, 소매업자 마진 10%로 이뤄져 있다. 2500원짜리 제품을 기준으로 총 1549.5원의 제세 기금이 부과된다.
담배 사업권자의 가격 결정권이 제한적이고 소매업자 역시 가격 결정권이 없다. 이에 따라 그동안의 담뱃값 인상은 정부 당국에 의한 제세 기금 인상에 따른 불가피한 인상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신제품을 내놓으면 기존 담배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한 경우는 있지만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담뱃값을 담배 사업자가 자의적으로 인상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농민 단체 “외국 담배 기업 사회적 책임 다해야”
담뱃값을 올린 외국 담배 기업들은 담배 가격을 인상한 이유로 경영 수지 악화를 들었다. BAT코리아 측은 “2005년 대비 담뱃잎 가격이 60%, 인건비가 30%가량 상승하면서 최근 2년간 영업이익이 34%나 감소했다”며 “이번 인상은 원자재 값 상승과 물가 인상률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JTI코리아 역시 비용 증가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가격 인상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농민 단체와 소비자들은 외산 담배 기업들의 담뱃값 인상 이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26일 대전에서 경작 농민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BAT코리아의 담배 가격 인상 규탄을 위한 집회’를 열었던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는 외산 담배 기업들이 국내 잎담배 사용 약속 불이행, 이익의 낮은 사회 환원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회피하면서 가격 인상에만 나선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성명서에서 중앙회는 “BAT코리아는 원재료를 전량 수입해 제조할 뿐 국내산 잎담배는 단 한 잎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제조 공장을 설립한 2002년 당시 국산 잎담배 사용을 약속하고도 이를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키지 않아 잎담배 생산 농가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회는 외산 담배 기업들의 낮은 이익의 사회 환원율을 지적하면서 “국산 잎담배 사용 계획 및 대한민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조속히 발표하라”고 촉구했다.
한국금연연구소도 논평을 통해 “국민에게 독을 팔아 이윤만 챙겨온 BAT코리아가 이번에는 원자재 값 상승을 내세우며 독자적으로 담뱃값을 200원 올리겠다고 밝힌 것은 탐욕에 눈이 멀어 우리 흡연자를 우롱하는 미친 짓”이라며 당장 철회를 요구했다.
농민 단체와 소비자들의 주장처럼 정말 외산 담배 기업들의 가격 인상이 국부 유출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까.
외국계 3사 매출액 대비 기부금 ‘0.00034%’에 불과 이윤 창출이 목표인 기업이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가격 결정은 개별 기업의 자유 영역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진출 20년을 넘기며 이미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외국계 담배 회사들이 사회 공헌 활동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인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사회 공헌은 이미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의 ‘책임’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
외국계 담배 회사 3곳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2976억 원 규모였다. 이들은 국내 담배 시장 규모의 42%를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계 담배 회사 3곳이 지난해 한국 사회에 기부한 기부금은 고작 4억4755만 원에 머물렀다. 매출액 대비 기부금이 0.00034%에 그친 것이다.
BAT코리아의 2010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국내에서 587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기부금은 고작 3억727만 원으로 매출액 대비 0.00052% 수준에 그쳤다.
한국필립모리스도 상황은 비슷하다. ‘말보로’, ‘팔리아멘트’, ‘버지니아 슬림’, ‘라크’ 브랜드를 가진 한국필립모리스는 지난해 489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국내 기부 금액은 한 푼도 없었다.
지난 2009년에는 겨우 8843만 원을 기부했었다. 이 또한 매출액 대비 0.0002% 수준에 불과하다. JTI코리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매출액 2211억 원을 올렸지만 기부금은 고작 1억4028만 원으로 매출액 대비 0.00063%에 머물렀다.
물론 기부금이 적다고 사회 공헌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감사 보고서에 나오는 기부금은 다양한 봉사 활동에 쓰인 활동비 등을 제외한 현물이나 현금 부문만 기재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BAT코리아는 ‘예비 사회적 기업’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기업이나 단체를 돕는 프로그램이다. 한국필립모리스는 1999년부터 올해까지 32대의 냉동 탑차를 사회 복지시설에 기부했다.
다만 국내 기업인 KT&G와 비교해 보면 외국계 담배 회사들이 사회 공헌 활동에 소극적이라는 말이 나올만하다. 단순히 기부금 항목만 비교해도 그렇다. 지난해 2조4999억 원의 매출을 올린 KT&G의 기부금은 293억9200만 원이었다. 외국계 담배 회사 3곳의 기부금액인 4억4755만 원 대비 무려 65배가 넘는다.
분명 외국계 담배 회사의 매출보다 KT&G의 매출이 많긴 하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담배 시장점유율은 KT&G 58%, BAT코리아 18%, 한국필립모리스 17%, JTI코리아 7%순이라는 것을 따져본다면 KT&G의 기부금액 상대 비율이 외국계 회사들의 그것보다 크게 높은 건 사실이다.
외국계 담배 회사의 기부금은 앞으로도 크게 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유는 본사에 대한 높은 현금 배당률과 로열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BAT코리아는 2010년 당기순이익 122억 원 전부를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브리티시 아메리칸 타바코 p.l.c’에 배당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BAT코리아는 2009년에도 주당 5778%라는 높은 배당금을 지급했다. 즉 BAT코리아의 주당 가격이 7만 원인데 주당 404만 원의 배당금을 본사에 지급한 것이다.
또 BAT코리아는 지난 2008년 매출 5989억 원, 순익 77억 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하면서 던힐과 켄트 등의 순매출의 5%를 상표 사용료로 지급하고 있으나 정확한 로열티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담배 업계에 따르면 당시 매출원가 4078억 원을 감안하면 로열티 지불액은 200억 원 정도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필립모리스코리아도 비슷하다. 2010년 418억 원, 2009년 367억 원의 로열티를 지불했다.
이 같은 높은 배당률과 거액의 로열티는 외국계 회사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또 원가 인상과 흡연율 저하로 경영 실적이 악화된다는 것도 납득이 가는 설명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지난해 BAT코리아가 회사 임직원에게 지급한 복리후생비가 38억6400만 원, 필립모리스가 직원들을 위해 지급한 복리후생비는 44억3776만 원, JTI코리아가 임직원에게 지급한 복리후생비는 38억6400만 원이라는 것이다.
담뱃값 인상은 물가지수에 악영향
이와 함께 외국계 담배 회사들의 담뱃값 인상이 단지 흡연자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국민 경제 전체에 미칠 영향도 곱씹어봐야 한다. 이유는 물가 상승 때문이다.
담뱃값은 생각보다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물가를 나타내는 주요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의 산정 항목에 들어 있어 담뱃값 인상이 물가 변동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이 때문에 2009년 담배 부담금 인상을 추진하다가 서민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 포기하기도 했다.
담배가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8%로 489개의 소비자물가 품목 가운데 14번째를 차지할 만큼 높다. 소주가 0.11%인 점을 감안하면 10배에 달하는 수치다. BAT코리아의 시장점유율이 18%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담뱃값 인상으로 소비자물가가 0.0156% 정도 오를 것으로 추산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7492억 원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JTI코리아 역시 담뱃값 인상을 결정해 파급력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외국 담배 기업들의 담뱃값 인상은 단지 흡연자뿐만 아니라 비흡연자를 포함한 국민 경제 전체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물가 상승 등 국내 경제 상황을 잘 아는 국내 담배 기업은 가격을 올리는 데 주의할 것”이라며 “외국 회사는 협조가 쉽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가격 인상을 자제하도록 협조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취재=권오준·이홍표 기자
사진=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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