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정치’에 주목하라

허버트 허시(Herbert Hirsch)는 ‘대학살과 기억의 정치(Genocide and the Politics of Memory)’에서 기억의 정치란 곧 기억의 조작, 정치적 신화의 창조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집단적 기억의 망각과 왜곡·부인·조작의 정치를 말한다.

집단적 증오가 영속화되는 것은 여러 가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제도들을 통한 사회화라는 과정 속에서 다른 집단에 대한 파괴의 이념이 집단적 기억으로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폭력과 그 절정으로서 제노사이드(대량 학살)의 악순환을 초래한다.

기억의 정치와 집단적 증오는 더욱 대량화된 형태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그 동원의 메커니즘이 곧 정치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적 증오를 영속화하는 것은 여러 가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제도들을 통한 사회화라는 과정 속에서 다른 집단에 대한 증오와 파괴의 이념이 집단적 기억으로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폭력과 그 절정으로서 제노사이드의 악순환을 보장한다.

현재 기억되는 것만이 역사가 된다

마이클 아이젠버그는 역사를 “말해지고 행해진 것들에 대한 기억”이라고 요약했다. 이처럼 “과거에 이루어진 말과 행동들에 대해 현재 기억되고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한 인식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역사가 우리 자신의 현재에 갖는 의미를 결정한다.

결국 과거의 사건들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장차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한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역사와 그에 대한 우리의 인식 사이에 기억이라는 매개를 상기시키는 것은 기억이 매우 정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기억의 정치란 곧 기억의 조작, 정치적 신화와 창조와 같은 것을 말한다. 그것은 집단적 기억의 망각과 왜곡·부인·조작의 정치를 말한다. 기억의 정치는 어쩌면 강자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역사는 강자의 관점에서 서술되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왜곡된 기억의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사례는 수없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G 사익스는 1989년 저서에서 60종의 미국 역사 교과서를 조사한 결과 학교의 역사·사회 교과서들이 그 사회 권력 집단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미국의 정치 철학자 프레드 달마이어에 따르면 유럽의 아메리카 정복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제노사이드의 역사였다. 그것은 남북아메리카 통틀어 볼 때 무려 7000만 명의 인디언 원주민들을 학살 또는 기아와 질병으로 인한 죽음으로 몰고 간 과정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것을 ‘아메리카의 홀로코스트’라고 일컫는다.

문제는 오늘날 미국인들이 학교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의 미국인들 조상이 인디언들에게 강요한 제노사이드의 유혈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콜럼버스는 영웅으로서 추앙받고 있으며 그의 정복은 ‘콜럼버스의 날’로 기려지고 있다.

최근 한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한 외국인 남성이 야스쿠니 신사 안에서 신사 참배 관련 인터뷰 중인 다모가미 도시오 전 항공자위대 보좌관에게 “독일이라면 헌법 위반으로 당신은 체포될 것이다. 알고 있나?”고 물어본다.

신사 내에 있던 일본인들이 금세 이 남성을 에워싸고 욕설을 퍼부으며 성난 목소리로 따지고 든다. 이 남성이 “일본의 (전범을 추모하는)이런 비상식적인 모습이 괜찮다고 생각하나”고 말하자 일본 군중은 더욱 거칠게 항의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불어나는 군중 속 여기저기서 “바보 자식아 돌아가!” “헌법 위반이라니 무슨 말이야? 독일은 유대인 학살을 저질렀지만 우리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게 바로 집단적 기억의 왜곡에 의한 기억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20세기의 문명과 야만’이라는 책에서 “기념비와 기념관 건립, 그리고 기념일 제정과 같이 과거의 비극을 화석의 형태로 보존하고 추억하는 데에는 찬성하지만 그 비극의 아픈 교훈을 오늘 우리의 행동과 사상에 살이 있는 형태로 반영하는 일에는 반대하는 경향이 강하다”라면서 “이것이 기억의 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과거와의 진실한 대면을 방해하며 자기 성찰과 자기비판의 기회를 차단한다. 국가권력의 담당자들 또는 지배적인 사회 세력들이 과거의 사건에 대한 국가적 신화를 창조해 진실을 은폐·왜곡·축소·과장하는 집단적인 신화의 창조 역시 기억의 정치에 있어 중요한 측면들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은 일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과거에 보다 정직한 대면을 받아들였다. 기념식, 전범 재판, 재판 절차, 공공 교육 등을 통해 나치즘 문제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독일은 패전 후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비롯한 연합국들에 의해 핵심 전범 집단이 체계적으로 해체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 공격을 받은 것을 핑계로 자신들을 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로 인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군국주의 질서의 정점을 이루고 그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했던 천황의 제도와 그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위협 대처에 최대 중점을 두었던 미국이 천황을 비롯한 일본 군국주의를 전후 일본의 경제적 부흥의 추진 주체로 허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까지 일본의 역사 왜곡과 전범 숭배 등 일본인들의 침략 전쟁에 대한 집단적 무지는 미국의 방조 위에 세워진 것이다.
독도의 가을
    (독도=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일본이 방위백서에 독도를 자국영토로 표기할것을 결정하는 등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3일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가 청명한 가을햇살 아래에서 빛나고 있다.
mtkht@yna.co.kr
(끝)
독도의 가을 (독도=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일본이 방위백서에 독도를 자국영토로 표기할것을 결정하는 등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3일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가 청명한 가을햇살 아래에서 빛나고 있다. mtkht@yna.co.kr (끝)
왜곡된 기억은 기억의 정치로 맞서야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바로 ‘기억의 정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본 외무부 홈페이지에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의 포인트’라는 글이 실려 있다.

외국인이 보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오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올해 개정된 일본 중학교 교과서들도 이 논리를 충실히 따랐다. 바로 허시가 말한 기억의 정치, 집단적 기억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홍보인 것이다.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독도의 영유권 침탈을 노골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외교부 홈페이지에서조차 독도에 대한 ‘기억의 정치’를 강화하는 제대로 된 내용을 볼 수 없다.

일본을 여행하면 가이드는 모두 이런 코멘트로 시작한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해야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도몬 후유지가 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는 일본의 CEO들이 후계자로 가장 선호하는 인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꼽았다. 도쿠가와라는 사람 자체는 싫어하지만 260년 동안 국가를 이끌어 온 그에게 지속 경영의 비법은 배우고 싶다는 것으로 풀이한다.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도쿠가와는 병사 한 명도 출정시키지 않았다. “새로 내려주신 간토 지방을 다스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이유였다. 그는 도요토미의 침략 전쟁을 처음부터 반대했다.

도요토미가 사망한 후에 도쿠가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선에 나가 있는 일본 병사들을 모두 철수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에 호감을 느낀 조선은, 사실 국교를 단절하고 관계를 끊어야 할 일본과 교류를 다시 회복했다고 도몬 후유지는 지적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최고경영자들 가운데 자신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타입이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후계자들 중에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타입이 많다는 것이다.

어쩌면 여기에 ‘두 얼굴의 일본’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마치 그들끼리는 ‘메이와쿠’를 내면화하면서 밖으로는 영토 야욕과 침략 근성을 드러내는 국민성과 잇닿아 있는 것 같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얼굴을 한 일본의 리더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 역사 왜곡과 같은 기억의 정치는 더욱 판칠 것이다. 역사 왜곡과 망각을 반복하는 일본의 국가 이데올로기는 평화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보다 침략전쟁에 나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더 연결돼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일본의 왜곡된 기억의 정치, 기억의 조작에 맞서 치밀한 기억의 정치가 필요하다. 누가 기억의 정치에서 강자가 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 하위의 기업 경영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