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상속, 최신 트렌드
요즘 부자들은 어떻게 상속할까. 편법이지만 전통적인 방법이 여전히 인기다. 무기명채권·귀금속·그림·골동품 등을 이용하는 방법이 그렇다. 더욱이 최근에는 그림을 편법 증여나 상속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자산관리 전문가인 류우홍 안양대 부총장은 “그림 등을 이용한 상속 증여는 뾰족한 단속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며 “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술품 거래를 선호하는 이유는 세금이 붙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술 작품 가격이 6000만 원 이상인 작고 작가의 작품을 매매할 때 매매 차익의 20%를 양도소득세로 부과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다만 올해부터 2년간 유예한 후 2013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거액 상속에도 유리하다. 해외시장에서는 수백억 원이 넘는 작품도 허다하다. 삼성가 비자금 조성 용도로 의심받았던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200억 원대로 추정됐다.
이뿐만 아니다. 미술품은 아예 객관적인 가격을 매기는 것조차 어렵다. 50억 원에 사서 10억 원에 샀다고 하면 그만이다. 정부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재산 목록에 공개되는 미술품은 시가보다 낮게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품 가격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양도소득세나 취득세·등록세 등 각종 세금을 납부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현금화도 수월하다.
한국에는 부동산 부자들이 많다. 이들도 상속 문제로 자산관리 전문가를 찾고 있다. 부동산 부자들은 자녀에게 증여하면서 매매로 허위 신고하는 사례도 많다. 물론 불법이다. 최근 국토해양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9개월 동안 증여를 매매로 위장해 신고했다가 들통 난 것이 78건이다.
증여세가 매매에 따른 양도소득세보다 훨씬 무겁기 때문이다. 증여는 세금 부과 기준 금액이 시세이며 세율도 10~50%로 높다. 양도세는 증여세 부과 기준 금액 중 집값 상승분에 대해서만 매기고 세율(6~35%)도 낮다.
증여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부담부증여도 자주 활용한다. 채무를 끼워 증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전체 집값에서 채무 금액을 빼고 증여세가 부과된다. 당연히 증여세가 줄어든다. 채무액만큼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만 이때도 증여자가 비과세 요건을 충족한 주택을 부담부증여하는 경우 양도소득세가 비과세된다.
가치가 낮은 재산을 증여해 가치를 높이는 방법도 부자들이 자주 쓰는 방법이다. 기업 상속으로 치면 최근 한창 논란이 되는 ‘일감 몰아주기’ 방법이 그것이다. 비상장회사를 설립한 뒤 유상증자를 거쳐 기존 주주가 실권을 한 뒤 제3자 배정으로 자녀에게 전량 인수하도록 한 후 그룹의 몰아주기로 회사를 키운다. 이후 주력 계열사 지분 확보에 나서며 그룹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경영권을 물려줄 수 있어 오너들이 선호하고 있다.
비슷한 방법으로 개인 사업자가 사업이 번창하면서 자녀 명의로 법인을 설립해 증여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강남에서도 유명한 학원 대표가 H은행 PB센터에 찾아왔다.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세율이 높고 대부분의 학원비를 신용카드로 받기 때문에 세원이 노출되고 있다. 학원 대표는 자녀가 2명이다. 결국 자본금 2억 원의 법인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지분의 절반을 두 명의 자녀에게 넘겼다. 이렇게 되면 학원 수입이 많아지더라도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배당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상속 문제가 해결된 셈이다.
종신보험·연금 이용사례 증가
이 밖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부동산을 구입해 1억 원을 호가하는 나무를 수십 그루 심거나 장뇌삼 등을 심어 부동산 가치를 대폭 높이는 방법도 애용되고 있다.
현금 흐름이 좋은 알짜 자산을 미리 증여해 상속 대비 절세 방법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적절한 시점에 빌딩 등의 알짜 자산을 증여하면 부동산을 물려받은 자녀는 자연스럽게 현금 자산을 키워나갈 수 있다.
현금 동원력을 가진 자녀는 나머지 상속재산을 현금으로 매매할 수도 있다. 매매는 시가의 30% 범위 내에서 거래가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소득 대비 자산 규모를 중시하는 국세청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손자에게 직접 증여하는 부자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신한은행 WM사업부의 황재규 세무사는 “우리나라 부자들은 증여를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에 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다 보니 손자에게 직접 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령의 나이에 자녀에게 증여하면 증여자가 10년 이내에 사망할 경우 증여 금액을 상속 금액에 합산한다. 증여의 효과가 상실되는 셈이다. 하지만 손자에게 증여하면 상속세에 합산되는 기간이 5년이다. 황 과장은 “암 선고를 받았거나 건강에 자신이 없어진 분들이 주로 손자에게 직접 증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을 이용해 상속에 대비하는 흐름도 커지고 있다. 김종완 삼성생명 FP센터 강남팀장은 “상속에 대비 종신보험과 연금을 이용하는 사례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일시에 거액의 자금을 자녀에게 증여하면 과세표준이 3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증여 세율이 50%나 된다. 일시에 자녀에게 현금으로 이전했을 때 관리능력이 부족한 자녀는 재산을 탕진할 수도 있다.
종신보험은 사망 시점에 유가족이 보험금을 타기 때문에 상속의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연금의 경우 피보험자를 자녀로 해두면 본인이 살아 있을 때는 은퇴 자금 용도로 쓰지만 사망하면 자녀들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금 마련의 성격이 강하다.
유산 분쟁의 가능성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은행의 유언 신탁 상품도 인기다. 유언 신탁은 유언장 없이도 신탁 계약을 통해 상속해 줄 수 있는 금융 상품이다.
고객이 생전 및 사후에 신탁재산의 수익권을 취득할 수 있는 수익자를 지정함으로써 자녀들의 유산 분쟁 가능성을 예방할 수 있다. 최봉수 삼성증권 S&I GFC 부장은 “국세청의 조사 방식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절세 방법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예전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최 부장은 “다양한 사례를 찾아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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