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경기 회복 ‘안간힘’

도쿄 도심 길거리는 지진 발생 전후로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당장 저녁만 되면 도쿄 도심 길거리는 활기를 잃는다. 불빛이 사라져서다. 지진 이후 전력 부족을 이유로 국가적 절전 방침(제한 송전)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빛을 잃자 거리의 소비 심리도 덩달아 다운됐다. 여기에 지하철 등 대중적인 교통수단마저 단축 운행을 결정해 발걸음에 무게를 더했다. 손님이 줄어드니 점포로선 폐점 시간을 앞당길 수밖에 없다. 매출이 50% 이상 급감한 곳까지 생겨났다.

방사능 공포 확산으로 일부 채소와 해산물도 대량 폐기됐다. 동물원을 비롯한 관광지 등은 개장 시간을 줄이거나 임시 폐업에 속속 가세하는 분위기다. 즉 자숙 경제다.

‘자숙 경제 망국론’ 힘 얻어
<YONHAP PHOTO-0080> In this photo taken Saturday, March 12, 2011, a ship gets stranded at a port in Kamaishi, northern Japan, a day after a powerful earthquake-triggered tsunami hit the country's east coast. (AP Photo/The Yomiuri Shimbun, Kenji Shimizu) JAPAN OUT, MANDATORY CREDIT/2011-03-16 00:23:02/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In this photo taken Saturday, March 12, 2011, a ship gets stranded at a port in Kamaishi, northern Japan, a day after a powerful earthquake-triggered tsunami hit the country's east coast. (AP Photo/The Yomiuri Shimbun, Kenji Shimizu) JAPAN OUT, MANDATORY CREDIT/2011-03-16 00:23:02/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자숙 경제를 낳은 계획 정전 후폭풍은 확실히 컸다. 물건이 팔리지 않거나 예정된 이벤트가 중지되는 등 부정적 영향이 나날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도쿄도가 올봄 벚꽃 구경을 중지시킨 게 대표적이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피해 지역을 감안할 때) 야간 벚꽃 구경은 특히 자숙해야 할 것”이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도쿄도가 관리하는 유명 공원에선 벚꽃 구경을 자제해 달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여기엔 방사능 염려로 외출을 삼가는 경향도 한몫했다.

실제 봄맞이 벚꽃 축제는 내수 확대로 연결되는 일반 최고의 소비 이벤트 중 하나다. 송년회·신년회 등을 능가하는 최대 축제로 명성이 높다. 흥청망청은 아닐지언정 대부분 벚꽃 시즌엔 야외 활동과 관련된 소비수준을 늘리기 때문이다.

실제 1~2주 정도 지속되는 벚꽃 시즌에 맞춰 맥주 소비량이 급증하는 게 보통이다. 명당 장소를 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벚꽃 축제는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최적의 기회로까지 정착된 분위기다. 금융 위기 직후였던 2009년 벚꽃 축제의 경제 효과가 1400억 엔에 달했다는 추산도 있다. 이런 시즌 행사를 자제하라니 반발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자숙 경제의 확산 속도가 의외로 빠르기 때문이다. 실제 지진 이후 일반인의 각종 행사마저 자숙하는 분위기다. 개강과 입사 등 4월 이후 시작되는 각종 환송회·결혼식 등을 중지·연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벤트의 자숙 결과는 곧 외식·유통업의 매출 감소로 직결된다. 벚꽃 놀이 자제 수준을 감안할 때 소비 위축이 5월 초의 황금 연휴(골든 위크) 때까지 이어질 우려도 높아졌다. 최장 10일까지의 장기 휴가답게 여행·관광 등 일본 국내 소비경기가 절정에 달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재로선 먹구름이 적지 않다.

자숙 무드의 제기 배경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지진 피해가 역대 최고 수준인데다 방사능 공포까지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마당에 피해 지역을 배려하지 않는 정상 생활은 도의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이 힘들어하는데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력 부족이라는 실제적인 위축 효과도 자숙 무드를 강화한다. 이 결과 절전·절약 등은 피해자를 위한 최소 배려로 필요악이란 입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밴드 활동이나 만화·오락프로그램 등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시각도 적지 않다.

반면 ‘자숙 경제 망국론’도 조금씩 세를 확산하는 모습이다. 지금은 작은 위안에 만족하기보다 대의를 생각할 때라는 의견이 그렇다. ‘자숙’을 통해 거듭 침체된 분위기를 만들기보다 ‘응원’을 위해 적극적인 소비 복귀를 유도하는 편이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일본 경제가 침체해서는 피해 복구를 위한 자금 조달은 물론 피해자의 직간접 지원 체계에도 결국 마이너스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요컨대 쓰고 벌지 않으면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여세를 몰아 인터넷에선 자숙·근신을 둘러싼 반대 운동을 펼치자는 여론까지 힘을 얻는다.

‘자숙, 자숙, 자숙으로 일본이 망하지 않을까’라는 특집 기사를 내보낸 시사 주간지 슈칸신초(週刊新潮)는 “도쿄 도심의 유명 클럽 호스티스 중 상당수가 자택 대기조 신세”라며 “지나치게 강조된 자숙 현상과 침체 무드가 곳곳으로 파급 중”이라고 보도했다.

잡지는 “피해자의 처지를 강조하는 ‘작은 정의’가 일본 경제를 망칠 것”이라며 “해외에선 이런 일본 특유의 자숙 문화에 위화감을 느낄 정도”라고 덧붙였다. 해외는 3월 27일 뉴욕타임스의 “일본에는 자숙이라는 강박관념이 만연 중”이란 보도를 의미한다.

자숙 무드야말로 또 다른 재해라며 반발하기는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대중 인기가 높아 차기 여성 총리 1순위에 꼽히는 렌호 장관이 선두주자다. 도쿄도의 벚꽃 놀이 자제 촉구에 대해 “자유로운 행동과 사회활동을 권력으로 제한하는 건 최소한으로 해야 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편의점의 심야 영업 제한 여론에도 “야간에 쓸 전력은 여유가 충분하다”라며 “전력이 있는데도 경제활동을 공권력으로 제한하는 건 일본 경제에 좋지 않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일축했다. 지나치게 위축된 자숙 무드가 확산되지 않도록 가능한 범위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자는 얘기다.

“방사능보다 무서운 건 경제가 돌지 않는 것”
일본 경제가 되살아 나고 있는 가운데 고층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는 도쿄시내 전경
/허문찬기자  sweat@   20060211
일본 경제가 되살아 나고 있는 가운데 고층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는 도쿄시내 전경 /허문찬기자 sweat@ 20060211
피해 지역에서의 자숙 무드 경계 시각도 구체적이다.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이와테의 한 전통주 제조업자는 ‘꽃놀이를 즐겨달라’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자숙이라는 2차 재해가 피해 지역 경제를 힘들게 하고 있다”며 “경제 활성화가 피해 지역으로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 밖에 피해 지역 제조업자·관광업자 등은 “재해 복구를 위해서는 감정적인 위로보다 실제적인 응원이 우선”이라는 호소가 이어진다. 경제 아랫목인 도쿄의 소비 위축이 그렇잖아도 힘든 피해 지역 등 윗목의 지방 경제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지진 이후 소비 감소가 3조 엔에 달하며 최소 2년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진단했다.

자숙 경제 확산은 피해 복구비 마련에도 장애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재정 적자에 골머리를 싸고 있는 일본 정부가 마련해야 할 천문학적인 복구비용은 사실상 향후 일본 경제의 최대 이슈 중 하나다. 그만큼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나마 증세만이 가장 유력한 선택 카드다. 그런데 자숙 경제에 따른 근무시간·소비여력 감소는 증세 카드로서는 악재일 수밖에 없다. 결국 증세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경제활동이 필수라는 얘기다.

자숙 무드에 대한 인터넷 여론은 훨씬 부정적이다. “자숙 경제는 바보나 할 짓”이라는 격한 반응이 셀 수 없이 많다. 2000년대 중반 정보기술(IT)로 성공과 몰락을 동시에 경험한 호리에 다카후미 전 라이브도어 창업자는 “절약과 자숙이라면 일본 경제는 정말 무너질 것”이라며 “방사능보다 무서운 건 경제가 돌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경제활동을 자숙할 필요가 없는 곳까지 재해 충격에 동조해 소비 규모를 줄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력 부족에 따른 절약 방침과 관련해서는 “경제 등불까지 끌 필요는 없다”는 비유까지 나왔다.

이 결과 자숙 경제 확산을 막으려는 움직임도 구체적이다. 몇몇 지자체가 특히 적극적이다. 공식적으로 각종 이벤트를 벌여 피해 지역을 도와줄 구체적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구마모토·후쿠오카 등은 자숙보다 응원 무드를 조성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적극적인 소비 활동 이벤트를 펼칠 것으로 밝혀 화제를 모았다. 4~5월에 걸쳐 지역 주민의 여론을 모아 도움이 될 수 있는 행사를 펼칠 계획이다.

찬반양론에서 한발 비켜선 의견도 있다. 피해 지역을 도울 수 있는 직접 품목을 선정해 이것을 집중적으로 소비하자는 목소리다. 벚꽃 축제를 즐기되 피해 지역의 특산 소주를 마시면 일석이조의 응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낮의 벚꽃 축제’를 즐기자는 제안도 있다. 밤의 벚꽃 놀이가 제격이지만 제한 전력을 감안해 대낮에 꽃놀이를 하자는 절충수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 change4dre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