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를 극복하고 있는 주식시장

주식시장에 올해처럼 온갖 악재가 한꺼번에 시리즈로 휘몰아친 경우도 드물다. 지난해 12월 중순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은 높은 실업률과 살인적인 물가, 극심한 빈부 격차를 견디다 못해 시민들이 들고일어난 일종의 민란이다.

이 시위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이집트·예멘·리비아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정정이 불안해지고 급기야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하고 리비아는 내전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 와중에 국제 유가가 연초 대비 20% 가까이 폭등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에 암운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근원을 추적해 보면 MENA 사태의 기저에는 3년 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와 지난해 유럽의 재정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양대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4조 달러에 육박하는 천문학적인 돈이 시장에 풀려나와 전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물가를 자극해 왔다. 참고로 2009년 이후 금값이 62%, 은이 230%, 동은 200% 가까이 올랐고 주석은 178%, 유가(WTI)는 140%, 옥수수 값은 87%나 올랐다.

미국의 막대한 달러화 방출이 인플레 쓰나미가 되어 지구촌을 강타하면서 상대적으로 빈부 격차가 심하고 통치 시스템이 낙후된 MENA 지역이 먼저 그 희생양이 된 것이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했던가. 가뜩이나 세계 금융시장이 중동발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이번에는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과 거대한 쓰나미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원자력발전소가 붕괴되면서 방사능 유출 공포가 극에 달하면서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져들었다.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요동쳤다.

외국인이 돌아오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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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닛케이지수는 12%나 폭락했고 엔화는 막대한 복구비를 마련하기 위해 해외 자산을 매각, 일본으로 들여올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에 편승해 달러당 76엔까지 치솟는 이변이 연출됐다.

이제 일본은 지정학적으로나 금융시장으로나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Safety Haven)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투자자 모두가 직시하게 됐다. 더욱이 위기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 관료 조직의 무기력함과 매너리즘은 3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잃어버린 15년이 말해주듯 일본의 위기는 비단 경제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필자는 향후 일본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까지 하락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동안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안전 자산 선호 현상으로 일본의 엔화가 경제적 체력에 걸맞지 않게 고평가돼 왔다.

미국과 유럽이 동시에 불안하다 보니 달러화나 유로화가 피난처가 되지 못했고 중국의 위안화 역시 외환시장의 미비로 안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애꿎게 일본의 엔화가 유일한 안전 자산으로 선호되면서 상식을 넘어선 강세 기조를 이어온 것이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한국의 원화가 엔화 대비 35% 가까이 저평가돼 한국의 수출 기업들에 날개를 달아준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됐다.

이번 사태를 빌미로 일본은 지난 몇 년간 억울하게 희생해 온 엔고의 멍에와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게 됐다. 우선 지진 복구비로 44조 엔(57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야 한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게다가 일본에 생산 기지를 둔 제조업체들은 호시탐탐 생산 기반을 해외로 옮기려고 시도할 것이고 일본에서 부품을 조달하던 해외의 파트너들도 이참에 거래처를 다변화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 일본 농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오염 우려에서 보듯이 일본 제품에 대한 기피 현상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남의 불행에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만 일본과 경합 관계에 있는 한국의 수출 기업들이 제법 큰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전반적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번 사태로 한국 기업들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데 점수를 주고 있다. MENA 사태와 이머징 인플레 우려로 연초부터 3개월 동안 5조 원 가까이 한국 주식을 팔아 치웠던 외국인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최근 3주 만에 4조5000억 원어치에 달하는 한국 주식들을 집중 매수하고 있다. 10배 아래로 떨어진 시장 주가수익률(PER)과 상대적으로 견조한 기업 실적, 원화 강세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다. 또 여러 가지로 불안한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이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안전한 대체 투자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정부의 환율 정책 변화도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인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그동안 수출 활성화를 위해 환율 조작국이라는 오명을 감수하면서까지 원화 가치의 안정에 매진해 온 정부의 정책 기조에 변화가 엿보인다.

연일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가계 부실이 우려되고 식료품·기초소재·통신요금·유류가격에 정부가 직접 개입해 가격 통제에 나서고 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틀을 훼손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원화 절상을 통한 수입 물가의 안정이다.

여기에는 한국 수출 기업들의 강화된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도 자리 잡고 있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물가정책의 실패로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경제적 성과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절박한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논란과 잡음이 많았던 대기업 중소기업 간의 ‘동반 성장’과 ‘상생’은 계층 간의 소득 양극화 해소와 고용 창출이라는 절박한 정책 목표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선택으로 굳어지고 있다.

글로벌 위기 극복 과정에서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원화 약세)의 수혜가 일부 수출 대기업에 국한돼 왔다. 하지만 이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통한 양극화 해소와 실업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정부의 판단이 인위적 개입을 강박하고 있다.

이제 시장 정서에 반하는 과도한 초과이익이나 배타적 승자 독식의 이익 향유가 기업에 오히려 부담이 되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동반 성장과 상생이 시대적 요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장세와는 분명 다를 것

종합해 보면 글로벌 금융 환경이 고유가·고금리·원고 등 신3고 시대의 진입을 예고하고 있으며 이 추세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어려움이 엔화 가치의 약세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고 달러화의 약세가 원자재, 특히 유가의 상승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국도 시차를 두고 금리 인상을 통한 출구전략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달라진 금융 환경에 맞는 투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확고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핵심 우량주와 기존의 주도주를 일정한 축으로 하되 서서히 수출주 위주의 포트폴리오에서 점차 내수주의 비중을 높여야 하며 승자 독식 프리미엄을 만끽해 온 대형주 위주의 포트폴리오에서 실적과 가치가 수반되며 저평가된 중소형 우량주의 비중을 높여 나가야 한다.

이미 소리 소문 없이 구석구석에서 중소형주의 반란이 시작되고 있다. 이와 함께 장기간 무시되고 방치돼 온 코스닥 우량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정부 정책의 후광을 업고 있는 대체에너지주와 바이오 헬스케어 등 녹색 성장 관련주에서 꿈의 주식들을 찾아보자.

올해 주식시장은 지난 2년간 전개된 장세와 사뭇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시야를 넓혀 탁월한 기업 가치와 성장성에도 불구하고 시류에서 소외된 주옥같은 종목들을 찾아보자. 바야흐로 종목 발굴가(Stock Picker)들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최남철의 투자 X파일] ‘신3고’ 돌입…‘종목 발굴’의 시기 왔다
최남철 삼호SH투자자문 운용대표

1988년 국민투자신탁 펀드매니저를 시작으로 푸르덴셜자산운용을 거쳐 삼호SH투자자문 운용대표를 맡고 있다. '꿈의 기울기에 투자하라'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