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은 졌으면 깨끗이 승복해야지 사사건건 시비다.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패배를 인정하면서 했던 ‘지금부터 당신은 나의 대통령’이라는 말을 되새겼으면 좋겠다.”(친이계 핵심 의원)

“여권 주류인 친이계의 불도저식 국정 운영 방식 때문에 한나라당이 지금 위기에 빠진 것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다면 친이계도 무엇이 옳은 길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친박계 중진 의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동남권 신공항 재추진’ 발언으로 그동안 잠잠했던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간 갈등이 다시 폭발했다. 두 진영은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단독 회동 후 ‘화해 무드’를 유지해 왔지만 신공항 문제로 다시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 친이·친박은 왜 만날 싸울까
‘주인의식 경쟁’과 ‘지역적 이질성’ 때문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 간의 감정의 골은 여야의 간극보다 더 크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 문제를 꺼내들 당시 임기 내 개헌에 반대하는 당내 친박계에 대한 설득을 포기한 채 민주당 등 야당에 대한 설득에만 힘을 쏟았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한 의원들이 자신이 발의한 법안에 사인을 받을 때도 친이계는 친이계끼리 친박계는 친박계끼리 사인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각종 당내 회의에서도 상대 계파의 의원이나 관계자가 참석하면 주요 내용을 빼놓고 보고하는 경우도 있다.

공식적으로 두 진영의 간극이 벌어진 것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 때부터다. ‘정말 지독한 경선’이었다는 평가처럼 두 진영은 서로의 약점을 물어뜯으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혈전을 벌였다.

이들의 대결은 친이계의 승리와 박 전 대표의 ‘깨끗한 승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2008년 총선을 앞둔 공천 경쟁에서 다시 한 번 극한 대립을 하게 된다. 이후 ‘박근혜 총리 입각’, ‘세종시 수정안 논란’, ‘친이계의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문제 등을 거치며 두 진영 사이의 간극이 더욱 벌어지게 됐다.

하지만 두 진영 사이의 감정적 간극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경쟁에서 나온 갈등보다 정서적으로 절대 함께할 수 없는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주인의식’ 논란이다.

사실 현재 당내 비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친박계 주요 인사 중에는 당이 탄생할 때와 ‘탄핵’, ‘차떼기 논란’ 등으로 당이 위기를 맞았을 때 선봉에서 당을 구한 공신들이 많다. 이런 이유로 친박계 인사들은 비주류임에도 불구하고 당에 대한 강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다. 세종시 논란 등 친이·친박 간 갈등이 첨예했을 때도 박 전 대표의 탈당 가능성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당의 주류인 친이계 인사들은 10년간 민주당에 빼앗겼던 여당의 지위를 찾았다는 ‘정권교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박 전 대표가 무너져가는 당을 일으켜 세운 것은 인정하지만 집권 여당이라는 한을 푼 건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지역적 이질성이다. 의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지역구에 다시 당선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수도권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친이계와 영남권의 대주주인 친박계는 늘 정치적 계산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결국 친이계는 영남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친박계에 ‘국가 이익’을 등한시한다며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일 수밖에 없고, 친박계는 대통령의 공약 철회 등을 이유로 친이계에 달면 먹고 쓰면 뱉는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신공항 논란을 계기로 정치권에선 두 진영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금부터가 대선 경쟁이 본격화되는 시점이고, 현 권력과 각을 세우는 것이 대선 가도에 도움이 된 전례로 비춰볼 때 앞으로 친이·친박 사이에서 ‘화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구동회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kugi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