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클래식 음악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고전음악 산업의 변신을 주도하고 있다. 아르투르 니키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 음악사의 한 획을 그은 거장 지휘자들이 몸담았던 베를린필은 1891년 세계 최초로 베토벤 교향곡을 녹음했고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전음악 음반화를 주도하며 클래식 음악의 상업화를 선도했다.
고전음악 산업 변신 주도 ‘베를린필’
그랬던 베를린필이 최근 들어 발 빠른 ‘디지털화’로 주목받고 있다.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다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편견을 깨고 온라인 공연 중계 같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 도입, 전 세계에서 충성도 높은 청중을 확대해 수익을 늘리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최신 디지털 기술을 빠르게 흡수한 베를린필이 클래식 음악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베를린필은 2008년 세계 각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오케스트라 공연 실황을 중계하는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디지털 콘서트 홀’이라는 이름의 이 서비스는 연간 150유로(23만 원)를 내면 32회에 이르는 베를린필 정기 공연과 2008년 이후 축적된 각종 연주 데이터베이스(DB)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상임지휘자인 사이먼 래틀 경이 지휘하는 최정상급 연주를 안방에서 고화질(HD) 화면으로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서비스 도입 2년 만에 적지 않은 가입비에도 불구하고 유료 가입자가 5000명을 넘어서는 등 서비스가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이다. 내한 연주 시 40만∼50만 원이 넘는 티켓 가격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등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 아시아와 미국 등 비 유럽권 클래식 애호가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디지털 서비스 고가에도 인기

베를린필 관계자는 “30년 전만 해도 1년에 20∼25장의 앨범을 냈지만 요즘엔 한 해에 많아야 다섯 장을 출반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새 수익원을 모색한 결과”라며 “연간 40회 해외 공연을 비롯해 130회 연주를 하지만 연주 성과를 더 많은 지역과 사람에게 확대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베를린필은 마케팅에서도 정보기술(IT) 분야 신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베를린필의 페이스북 페이지엔 친구가 16만 명이나 등록돼 있다.

최근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발생한 강진은 IT화된 베를린필의 강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진 발생 1주일 뒤에 지진 위로 공연을 전 세계에 온라인으로 중계한 것. 폴란드 작곡가 비톨트 루토스와브스키의 ‘현을 위한 장송곡’은 CNN과 NHK 등에도 소개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곧이어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공동으로 대지진 희생자를 돕기 위한 합동 자선 연주회도 가졌다. 당시 공연 수익금은 모두 유니세프를 통해 일본에 전달됐고 연주회는 역시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독일에 있든, 일본에 있든, 미국에 있든, 태국에 있든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이 최상급 연주를 동일한 품질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베르린필의 이 같은 재빠른 디지털화는 다른 주요 오케스트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런던필하모닉 등 유럽 오케스트라들과 보스턴심포니, 샌프란시스코 필하모닉 같은 미국 관현악단들도 온라인 서비스를 준비 중이거나 검토하고 있다.

FT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전설적 지휘자들이 클래식 음악의 아성으로 구축한 베를린필이 시대 변화에 발맞춰 빠르게 미래를 준비하며 다른 오케스트라의 변화도 유도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김동욱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