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지방 공항 적자 원인은

국내 14개 지방 공항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는 지난해 1287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겉으로만 보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딴판이다. 개별 공항들의 처지는 한마디로 극과 극이다.

‘빅3’인 김포·제주·김해는 밀려드는 고객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반면 나머지 11개 공항은 갈수록 줄어드는 여객 수요로 언제 문을 닫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빅3는 1793억 원을 벌어들였지만 나머지 공항들은 507억 원을 까먹었다.

한국공항공사는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국내 공항의 운영을 책임진다. 활주로와 계류장 등 항공기 이동 지역과 여객 청사, 화물 청사, 공항 내 상업시설과 주차장 등을 관리한다. 지방 공항 건설은 국책 사업으로 국토해양부의 몫이다. 국토부가 예산을 투입해 공항을 건설한 뒤 운영권을 공사에 넘기는 식이다.

항공 수익보다 임대 수익 비중 커

[추락하는 지방공항의 진실] 97년 후 수요 급감…가동률 0.28% 공항도
공항의 주 수입원은 공항 시설을 이용하는 항공사가 내는 착륙료와 여객 이용료다. 이들 ‘항공 수익’은 국내선과 국제선, 항공기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공항 수입의 또 다른 축은 임대 수익이다.

공항 청사 또는 유휴지에 각종 상업 시설을 유치해 임대료를 받는 형태다. 작년 공항공사는 항공 수익에서 1690억 원, 임대 수익을 포함한 ‘비항공 수익’에서 3165억 원을 남겼다. 쉽게 말해 항공기 이착륙보다 임대 사업에서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결국 공항의 수익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이용객 수다. 공항 이용자가 몰려야 운항 노선과 편수가 늘어나고 착륙료와 여객 이용료도 더 많이 챙길 수 있다. 이는 임대 수익도 마찬가지다. 지방 공항 대다수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은 여객 수요에 뭔가 이상이 생겼다는 뜻이다.

199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국제공항급의 더 크고 더 화려한 공항들이 대거 문을 열었지만 항공 수요는 오히려 곤두박질쳤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낙관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1988년 해외여행 자유화와 복수 민항 체제 출범으로 국내 항공 수요는 매년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급성장했다.

1997년 국내선 이용자가 5100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외환위기와 함께 모든 것이 달라졌다. 2000년 국내선 항공 수요는 4605명까지 다시 살아났지만 2002년 서해안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대진고속도로 개통과 2004년 KTX 등장으로 또 직격탄을 맞았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시작된 2007년 3409만 명까지 떨어졌던 수요는 지난해 경기 회복과 저가 항공의 약진으로 4094만 명 선을 가까스로 회복했다.

하지만 시련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KTX 경부선 2단계 개통으로 올해 국내선 항공 수요는 7.4%가량 뒷걸음질 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4년 KTX 호남선이 개통되면 또 한 차례 파란이 불가피하다.

이영혁 한국항공대 교수는 “KTX 노선 확충과 속도 개선을 통해 장기적으로 전국 주요 도시를 90분 거리로 연결한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라며 “상당 기간 지방 공항의 수요가 줄면 줄었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 초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공항 개발 중·장기 종합 계획’에서도 국내선 수요는 2030년께에나 1997년 수준을 겨우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항공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공항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2002년 개항한 양양국제공항은 연간 317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지난해 이 공항을 찾은 이용객은 중국 동방항공을 타고 상하이와 선양을 오간 8930명이 전부다.

시설 활용률이 0.28%로 1%를 한참 밑돈다. 지난해 양양국제공항이 벌어들인 돈은 4억 원에 불과했다. 반면 공항 유지비는 72억 원이나 돼 6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가장 최근에 문을 연 무안국제공항(2007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연간 여객 수용 능력이 519만 명에 달하는 이 최신 공항의 지난해 이용객은 10만 명에 불과했다. 애초 광주공항과 통합하는 것을 전제로 시설 계획을 세웠지만 광주공항 유지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의 반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항공 수요가 전반적으로 늘었지만 무안국제공항은 오히려 전년 68억 원에서 71억 원으로 적자 폭이 더 커졌다.
[추락하는 지방공항의 진실] 97년 후 수요 급감…가동률 0.28% 공항도
현재 지방 공항들이 희망을 걸고 있는 마지막 돌파구는 국제선이다. 국내선 여객 수요는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국제선은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항공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지방 공항들도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소 회의적이다. 이 교수는 “항공 산업은 전형적인 네트워크 산업”이라며 “항공 자유화가 될수록 오히려 허브 공항으로 수요가 더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방의 틈새시장에 기댄 국제선 유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중국 항공 산업의 급성장이 몰고 올 후폭풍을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한 저가 항공사 관계자는 “한국은 중국과 일본 환승객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며 “중국이 공항을 대거 늘리고 운항 노선을 다양화하면 환승 수요가 중국으로 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일본 여행객들은 싼 운임을 좇아 인천공항을 많이 이용하는 것처럼 한국인들이 중국을 거쳐 해외여행에 나설 때가 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변화가 국내 지방 공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