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례로 보는 서울의 미래
도시는 일정한 생로병사의 사이클을 그리며 성장한다. 도시화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교외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공통적으로 도심의 쇠퇴와 공동화라는 난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처방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도시 재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처음 나타난 개념이다. 단순히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일차원적인 ‘도시 정비’나 ‘도시 개발’을 한 단계 뛰어넘어 도시의 경제적 부흥과 활력 회복을 겨냥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는 지금 도시 재생 경쟁이 한창이다. 공동화된 도심에 새 활력을 불어넣는 도시 재생 사업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도시 경쟁력과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영국을 비롯해 일본·독일·미국 등에서 낙후된 기존 시가지를 되살리기 위해 다각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영국은 공적 기능의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일본은 민간 자본과 노하우를 도시 재생에 끌어들여 새로운 수요 창출을 꾀한다. 재개발로 도시 경쟁력·브랜드 가치 ‘쑥’
도시 재생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영국 런던 동쪽 템스강 주변의 도크랜즈다. 18세기에 항구도시로 형성돼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런던의 관문이자 세계 제일의 항만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선박의 대형화와 최신 대형 컨테이너항의 등장으로 도크랜즈 지역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1981년 이 지역의 모든 독(dock)이 폐쇄되면서 도크랜즈는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로 넘쳐났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영국 정부는 1978년 ‘중심 도시 재개발법’을 제정하고 런던도크랜즈개발공사(LDDC)를 설립했다. 여의도 면적의 7배가 넘는 이 지역의 도시 재생 사업을 전담하는 기구다. LDDC는 템스강을 중심으로 카나리 워프, 아일 오브 독, 로열 독, 워핑, 설리 독 등 5개 독으로 구분해 개발에 들어갔다.
카나리 워프 지역은 244m 높이, 50층 규모의 금융센터를 비롯해 93만㎡ 규모의 업무시설, 400실 규모의 호텔, 상가, 레스토랑, 기타 위락시설이 입주해 5만 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냈다. 아일 오브 독은 위락센터와 1만2500석 규모의 대규모 실내 스포츠 센터인 런던 아레나, 그리고 해양 레포츠 센터 등이 들어섰다.
로열 독에는 런던시티공항이 건설됐고 3000가구가 넘는 주택과 8만4000㎡ 규모의 쇼핑센터, 요트장, 23만2064㎡ 규모의 과학·산업단지, 2만3000석 규모의 다목적 실내 스타디움, 2만㎡ 규모의 전시실, 500실 규모의 호텔 등이 지어졌다.
워핑은 이미 오래전에 조성된 창고를 이용한 대규모 복합 쇼핑센터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관광객 유치에 크게 기여했다. 설리 독은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창고를 개축한 500가구의 주택에 2만 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런던 브리지 시티’ 오피스 거리와 쇼핑센터로 탈바꿈했다.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도크랜즈는 고용 기회가 3배 이상 늘어났고 입주 기업도 5배가량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거주자들의 일자리 문제 해결에도 상당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항만 주변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 새로운 첨단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근로자들은 다른 지역 항만이나 새로운 일자를 찾아 이주했다. 정부가 나서 관광이나 숙박, 음식점 등 전혀 다른 일자리를 만들어준 경우도 있다. 이들을 위한 재교육과 직업 훈련에만 5년 동안 3000만 파운드가 투자됐다.
프랑스의 랑그독·루시옹 개발은 1960년대 초 정부의 지역 개발 정책에 대한 관심과 드골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시작됐다. 초기에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30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된 범정부적인 지원에 힘입어 지금은 도시 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5200헥타르(ha)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인 랑그독·루시옹 지역 개발은 1963년 설립된 랑그독·루시옹 해안관광개발본부가 중심이 돼 추진됐다. 프랑스는 1965년 도시 개발 업무를 전담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지역상공회의소·개발은행·도시개발회사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민·관 합작 공사인 개발회사(SADH)를 설립했다. 정부의 집행력에 민간의 스피드와 융통성이 더해지면서 사업 추진 속도가 한층 빨라졌으며 그 효과도 극대화됐다.
현재 랑그독·루시옹 지역은 바다·자연·호수가 조화를 이루며 250ha에 달하는 도심 내 녹지 공간이 조성돼 녹지 공간 비율이 20%를 차지하는 쾌적한 도시가 됐다. 이 지역이 새롭게 바뀌면서 스페인으로 향하던 프랑스 관광객과 북유럽 관광객을 대거 흡수했다. 랑그독·루시옹을 찾는 관광객 수가 매년 120만 명을 넘어섰고, 이에 따른 관광 수입도 4억 유로에 달한다.
일본 요코하마는 도시 재생에 성공해 주변에서 중심지로 재탄생한 곳이다. 특히 미나토미라이21 지역은 오래된 항구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도시를 되살린 좋은 사례다.
미나토미라이21은 도쿄 도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 전철역에서 내리면 지하통로와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대형 쇼핑몰과 호텔, 오피스가 입주한 고층 빌딩으로 바로 이어진다.
이곳은 요코하마 도심에 있던 조선소, 창고 용지와 매립지를 주변 지역과 연계해 개발한 것이다. 용적률을 완화해 건물을 높게 짓게 해 주는 대신 건축물 디자인과 녹지 조성 등 공공 개발 목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도록 했다.
낡은 공업도시에서 매력적인 문화도시로
스페인 대서양 연안 바스크 지방에 있는 인구 35만 명의 항구도시 빌바오도 도시 재생과 관련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곳이다. 빌바오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철강과 조선업으로 호황을 누렸지만 1980년대 들어 쇠락했다.
제조업의 쇠퇴와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의 영향 때문이었다. 1983년 덮친 700년 만의 대홍수는 도시의 생존 기반을 무너뜨렸다. 네르비온 강이 넘쳐 수변의 도심지는 폐허가 됐고 산업 활동이 멈추면서 8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됐다.
그러나 빌바오는 발상의 전환과 민·관 협력을 통해 불과 20여 년 만에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다시 태어나는데 성공했다. 1985년 민간 전문가 15명이 빌바오 도시재생협회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도심에 역사 보존 구역을 설정하고 이 구역 안의 건물들을 복원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러한 활동은 방치됐던 항만 시설과 산업 지대를 비롯한 도시 전역의 재생 사업을 촉발했다. 1987년 빌바오 시는 도시 재생을 위한 첫 번째 도시기본계획을 내놓았다. 빌바오시의 전략은 철강·조선 등 전통적 산업 기반에서 과감하게 탈피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하역장과 조선소는 문화지대로 변모했고 철도역 주변은 주택지로 옷을 갈아입었다. 1997년 문을 연 구겐하임 미술관은 개관하자마자 세계적인 명소로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매년 2000억 원의 수입과 4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 도시 재생을 통해 우중충했던 쇠락한 공업도시가 매력적인 문화도시로 재탄생한 것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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