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본 ‘서울시 2020년’ 청사진

서울시가 2005년 발표한 ‘2020 도시기본계획’은 서울의 미래 청사진을 담고 있다. 뉴타운에서 도심 재생, 서남권과 동북권 르네상스, 용산업무지구 개발까지 언뜻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서울시의 각종 개발 사업을 일관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핵심 열쇠가 바로 이 기본계획에 들어 있다. 전문가들이 “10년 후 서울의 모습을 알려면 도시기본계획부터 봐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의 10년 후 모습은?] ‘1도심·5부도심’ 재편…‘삶의 질’에 초점
장거리 통근 구조 고착화

서울시가 5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이 기본계획은 지난 수십 년간 유지돼 온 서울시 개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함축한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도시 수요를 따라잡는데 급급했던 기존의 양적 성장 전략에서 한발 벗어나 삶의 질과 쾌적성에 포인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이 이제는 ‘인구 집중기’를 벗어나 ‘상대적 분산기’로 접어들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가장 큰 변화 요인은 인구구조의 변화다. 서울시의 인구가 매년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1970년 543만 명이던 서울시 인구는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놀라운 속도로 증가를 거듭해 1990년 1061만 명을 기록했다. 20년 사이에 인구가 거의 두 배가 된 셈이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이러한 증가세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1992년 1097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서울 인구는 오히려 감소세로 돌아섰다. 서울시의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20년 서울시 인구는 980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고령인구는 점점 많아지고있다.

서울시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2000년 5.4%에서 2020년 15.1%로 3배 가까이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새로운 물결은 서울의 도시 구조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개발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또 다른 이유는 고도 성장기에 누적된 각종 도시 문제들이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만성적인 교통 혼잡과 환경오염이다.

이는 도시 성장 과정에서 서울의 공간 구조가 심하게 뒤틀려 버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서울이 동북아 경제를 선도하는 세계 도시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을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사진>세운상가구역 제32지구 일대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해 11일 검찰이 압수수색을 실시한 부동산 개발업체 H사가 고층 주상복합건물을 세우려고 한 세운상가구역 제32지구 일대
/이상학/사회 2005.5.11 (서울=연합뉴스)
leesh@yna.co.kr
<사진>세운상가구역 제32지구 일대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해 11일 검찰이 압수수색을 실시한 부동산 개발업체 H사가 고층 주상복합건물을 세우려고 한 세운상가구역 제32지구 일대 /이상학/사회 2005.5.11 (서울=연합뉴스) leesh@yna.co.kr
우선 서울을 도심과 동북·서북·서남·동남 등 5개 생활권으로 나누면 이들 간의 심각한 불균형 현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심과 강남을 포함한 동남권은 비대하게 성장한 반면 기타 지역은 자족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발전에서 뒤처져 있다.

이들 지역은 도착 통근과 출발 통근의 비율로 계산한 직주(職住) 비율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도심권·동남권은 통근 통행 유입이 많고 동북권·서북권·서남권은 통근 통행 유출이 압도적으로 많다. 서울 내부에 장거리 통근 구조가 고착화돼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서울 각지에서 도심과 강남으로 출퇴근하기 위한 통근 전쟁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서울 도시 공간의 전면적인 재편이 필요하다. 우선 생활권별로 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이 있는 자족적인 직주근접형 도시 구조를 갖출 수 있도록 중심지(부도심)를 육성해야 한다.

2020 도시기본계획의 핵심 뼈대인 ‘1도심, 5부도심 구상’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5개 부도심은 용산(도심권), 청량리·왕십리(동북권), 상암·수색(서북권), 영등포(서남권), 영동(동남권)을 가리킨다.

도심은 600년 역사를 지난 4대문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도심 지역이 해당된다. 국가 중추기관이 밀집된 전통적인 국가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서울 대도시권의 주핵으로서 역사와 문화 자원이 풍부하고 금융권과 기업 본사 등 현대적인 업무와 상업 기능이 집적돼 있다.

그러나 도심 지역은 거주 인구 감소와 경쟁력 약화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1970년 이후 시행된 도심 집중 억제와 강남 개발 정책, 명문 고등학교의 강남 이전 등으로 1990년 이후 10년간 4대문 안의 도심부 인구는 약 4만 명 줄었으며 같은 기간 도심부 고용도 약 8만 명 감소했다. 이처럼 거주 인구가 줄어들면서 주거 환경의 질과 주거지로서의 매력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서울의 10년 후 모습은?] ‘1도심·5부도심’ 재편…‘삶의 질’에 초점
5개 생활권별 부도심 육성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이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도심부 개발에 민간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유의 역사성과 입지 매력을 살릴 수 있도록 규제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도심 재생의 초점을 환경의 질 개선에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동북아 중심의 국제도시’ 서울의 얼굴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국제금융센터와 업무 및 상업 기능, 도시형 산업 기능을 대폭 보강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600년 고도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친환경적 공간으로 조성하며 도심 주거 기능을 보완해 24시간 움직이는 매력 있고 활력 넘치는 거리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부도심은 각 생활권별 ‘핵’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서울 대도시권의 도심 의존도를 줄이고 다핵 분산형 공간 구조로의 전환을 이끄는 중심지다. 이들 지역은 국제 업무 기능 등 도심의 기능을 일부 분담하고 각 생활권역 및 수도권 배후도시의 고용 중심지 역할을 맡게 되며 수도권에서 도심으로 유입되는 교통을 흡수함으로써 직주근접화를 실현하게 된다.

용산은 도심과 영동(강남), 여의도의 3핵을 연결하는 중심축상의 전략 요충지로, 고속전철이나 인천국제공항과도 곧바로 연결되는 곳이다. 용산 역사는 서울역과 바로 인접해 있기 때문에 도심 기능과 연계해 서울의 국제 경쟁력 강화의 거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고속철도 역사, 신공항철도, 광역철도를 하나로 묶어 3핵 간의 연계를 강화하고 이 일대를 용산공원과 한강의 자연 요소와 연계된 쾌적한 부도심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청량리·왕십리는 동북생활권의 부도심 역할이 강화된다. 동북권은 주거지 위주로 개발돼 고용 기반이 취약하며, 이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통근하는 장거리 통근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청량리·왕십리가 부도심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고용 기반 확충이 최우선 과제다.

상암·수색은 2020 도시기본계획에서 새롭게 부도심으로 승격된 곳이다. 이 지역은 인천국제공항과 가까운 국제업무축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입지 특성 때문에 첨단 디지털 멀티미디어 도시로 특화돼 개발된다.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를 미래 지향적이고 친환경적인 생태공원으로 되살린 것을 계기로 환경 친화적인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다.

영등포는 수도권 서남부 지역의 산업 기반을 지원하는 부도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여의도에 증권과 보험 등 금융 업무 기능이 영등포역 주변에는 상업 기능이 밀집해 있다.

또한 배후지인 준공업 지역에는 산업 생산 기반과 이를 지원하는 상업 기능이 다양하게 분산돼 있다. 서울시는 서울과 수도권의 도시형 산업을 지원하는 이 지역의 기존 기능을 강화해 지역경제 발전을 이끌어 낸다는 전략이다.

영동지역은 동남권과 수도권 남부지역을 포괄하는 광역생활권의 부도심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지역은 1990년대 도심을 능가하는 수준의 국제 업무, 첨단 정보 산업, 전시 및 숙박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중심지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서울시는 향후 주변 지역의 기반 시설과 연동해 개발 밀도와 속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갈 계획이다. 개발 압력이 테헤란로와 강남대로에 집중되도록 유도해 집적 경제의 이점을 극대화하는 한편 개발제한구역 등 주변 지역으로 과도하게 확산되지 않도록 억제한다는 계획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