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 현인’ 워런 버핏 밀착 취재

‘50조 원의 사나이’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3월 20일 한국을 찾았다. 그가 투자한 대구텍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대구텍은 이스라엘 절삭공구 전문 기업인 IMC의 계열사다. 버핏 회장의 벅셔해서웨이는 지난 2006년 IMC의 지분 80%를 인수했다.

이에 따라 대구텍은 버핏이 직접 투자한 유일한 한국 기업으로 기록됐다. 버핏 회장이 3월 21일 대구텍을 찾은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4시간 동안의 밀착 취재를 통해 그의 성공 키워드 5가지를 추려봤다.
[비즈니스 포커스] 슈퍼 부자 진면목 보여준 ‘50조 원의 사나이’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계산에 철저하라 = “노, 비즈니스(No, Business).” 버핏의 한국 방문에 모든 미디어들이 들썩였다. 그의 공항 입국부터 출국까지 행동 하나하나를 미디어는 놓치지 않았다. 대구텍에도 이른 시각부터 취재진 150여 명이 그를 기다렸다. 당연히 취재 경쟁도 치열했다.

그 틈 속에서 한경비즈니스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독 취재에 성공했다. 비결은 에이탄 베르트하이머 IMC 회장의 도움이었다. 버핏이 표지로 등장한 한경비즈니스 자매지 ‘머니’를 보고 에이탄 회장이 일찌감치 호감을 표시했던 것.

결국 에이탄 회장은 대구텍 사옥 2층의 회의실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버핏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에이탄 회장은 호의의 표시로 버핏에게 ‘머니’를 손에 들고 찍자고 권유했다.
[비즈니스 포커스] 슈퍼 부자 진면목 보여준 ‘50조 원의 사나이’
“안됩니다. 이건 비즈니스입니다.” 하지만 버핏은 그의 권유를 단박에 거절했다. 비교적 화기애애하던 현장의 분위기가 싸해질 정도였다. 이유는 그가 워싱턴 포스트의 지분을 24%나 가지고 있는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즉 한 언론사의 대주주로서 타 언론사에 도움이 되는 일을 절대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버핏의 별명 중 하나는 ‘오마하의 현인’이다. 그가 그저 주식 투자로 막대한 부를 얻었다면 ‘투자 귀재’ 정도의 별명으로 그쳤을 것이다. 귀재를 넘어 ‘현인’이라고 불릴 수 있던 이유는 존경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선한 인상 때문에 많은 이들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그는 그 누구보다도 계산에 밝은 비즈니스맨이었다. 실제로 그가 기자회견장에 마련한 좌석에 앉자마자 터지는 플래시 속에서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바로 탁자에 놓인 코카콜라를 집어 드는 일이었다. 그것도 카메라에 가장 잘 찍힐 수 있는 각도로 말이다. 버핏은 코카콜라에 2억 주(8.6%), 131억 달러어치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다.

[비즈니스 포커스] 슈퍼 부자 진면목 보여준 ‘50조 원의 사나이’
△‘헛돈 쓰지 마라’ 시간과 돈은 효율적으로 =
“전혀 없습니다. 전 올림픽을 직접 보러 간 적도 없습니다. 보고 싶으면 TV로 봅니다. 경기장에 가면 그 게임만 볼 수 있지만 TV로 보면 같은 시간에 열리는 여러 경기들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내년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대구시 관계자 및 지역 언론들은 ‘화제의 인물’ 버핏을 통해 대구는 물론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홍보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때문인지 한 지역 언론사 기자가 회견 중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대회를 직접 보러 올 계획이 없느냐”고 물었다. 버핏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버핏의 투자법은 잘 알려져 있듯이 ‘시간과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주가가 싸 보이는 좋은 회사의 주식을 사서 ‘마르고 닳도록’ 보유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떻게 보면 미국의 시골구석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재수 좋은 노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그 ‘좋은 회사’를 어떻게 찾을 것이며 ‘주가가 싸다’는 것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버핏은 세계와 마주보며 쉴 틈 없이 투자 기회를 찾고 있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하루 24시간이라는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올림픽 경기를 TV로만 본다는 것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효율성’의 결과인 셈이다.

그는 이번 방한을 계기로 ‘공항 패션의 종결자’로 등극했다. 트렌디한 최신 패션을 선보여서가 아니다. 전용기를 타고 한국을 방문한 버핏은 세계 최고 수준의 부호임에도 불구하고 소탈한 차림으로 나타나 시선을 끌었다.

그의 ‘이보다 더 편할 수 없는 패션’에 환영 나온 사람들까지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패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전용기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비행기에서는 기압이 낮아져 최대한 몸을 죄지 않는 옷이 건강에 좋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버핏다운 효율성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보장하나’ 아는 것에만 투자하라 = “애플의 10년 후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잘 알려진 버핏의 투자 철학 중 하나는 자신이 잘 아는 기업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이번 방한에서도 버핏은 이 같은 그의 철학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가 애플보다 코카콜라를 선호한 것은 이런 원칙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오래전부터 미국인의 기호식품이어서 지속적인 수익 창출을 예상할 수 있고 회사의 현금 흐름 추정도 상대적으로 쉽다.

애플은 최근 몇 년 새 급성장했지만 전자산업 기술은 존속 기간이 짧아 몇 년 후 어떤 국면을 맞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지속성에는 의문이 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정보기술(IT) 관련주에 무조건 “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 질문에 대해서는 “전자 관련 주식은 많이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은 보유 의사가 없다.

지속적으로 전자 관련 주식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전자 주식과 관련한 투자는 앞으로도 비슷한 경향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뒀다.

실제로 그의 투자법은 최근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버핏은 최근 해외 주식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버핏은 해외 기업에 투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버핏은 해외 주식 비중을 늘려왔다. 벅셔해서웨이의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해외 주식 비중은 2003년 3.8%에서 2005년 4.1%, 2007년 7.8%, 2009년 13%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금융 위기 이후 최근 2년 사이 증가 폭은 약 6%포인트(2008년 8.8%→ 2010년 14.75%)에 이른다.

[비즈니스 포커스] 슈퍼 부자 진면목 보여준 ‘50조 원의 사나이’
△‘유머를 잃지 마라’ 여유롭고 활기차게 =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국내 기업들의 편법 승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버핏은 “한국 기업들의 상황은 잘 모른다”라며 질문을 피해갔다. 오히려 그는 “바라건대 기업들이 후계 상속 문제 때문에 기업을 매각하려 한다면 우리 쪽에 콜렉트 콜(수신자 부담 전화)로 연락”하라고 말했다.

버핏은 올해 여든 살이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빡빡한 일정에 지칠 만도 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여러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대구텍 방문 당시에도 그랬다. 다소 민감한 질문에도 유머를 섞어가며 답했다. 행동도 활력을 잃지 않았다. 대구텍 공장 순회 후 본사 건물로 들어서자 대구텍 직원들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입구에 서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버핏은 두 팔을 번쩍 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자신을 반갑게 맞아줘 고맙다는 의미였다. 굳은 표정으로 악수 정도를 나누는 여느 최고경영자(CEO)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돈은 돈일 뿐’ 돈만 너무 좆지 마라 = 흔히 큰 부자는 돈이 구애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2006년 41조 원의 재산을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면서 쓴 서약문에는 그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비즈니스 포커스] 슈퍼 부자 진면목 보여준 ‘50조 원의 사나이’
“전 재산의 99% 이상을 기부할 것을 약속한다. 나의 부(富)는 미국에서 살게 된 것, 운 좋게도 좋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덕이다. 소위 ‘난소의 로또’에 당첨된 것이다. 1930년 미국에서 태어날 확률은 30 대 1이었고, 백인 남성으로 태어난 것도 대다수 미국인이 마주하게 되는 장벽을 피할 수 있게 해줬다.

거액의 재산은 나와 가족에겐 죄책감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다. 재산의 1% 이상을 갖는다고 우리 가족의 행복 가치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머지 99%는 타인의 건강과 복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갖고 나머지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 나눠주고자 한다. 물질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또 안 되기도 한다. 내 개인 항공기는 내게 도움이 되지만 집을 10채 소유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소유가 많다 보면 나중에는 물건이 사람을 소유하게 된다. 내가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자산은 건강과 친구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