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 어디로
3월 11일 발생한 대지진(도호쿠·간토대지진) 이후 일본을 둘러싼 먹구름이 나날이 짙어지는 형국이다. 전대미문의 충격적인 지진·쓰나미에 이어 이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원전 사고까지 덮쳤다. 지진 이후 일본 경제는 당분간 힘들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가뜩이나 정부 재원이 부족한 판에 천문학적인 자금 투여가 필요한 돌발 악재까지 생겨서다. 지진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15조 엔)가 증발할 것(바클레이스)이란 분석에서부터 피해 복구에 최소 5년이 필요할 것(세계은행)이란 진단까지 나왔다.무엇보다 재정 적자가 걱정거리다. 일본의 채무 비율은 이미 GDP의 200%대에 육박한다. 1월 현재 국가 채무가 1000조 엔에 달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국가 신용 등급을 ‘AA-’로 낮춘 이유다. 국가 예산 92조 엔 중 세수(37조 엔)도 절반 이하다.
이 가운데 44조 엔은 순전히 빚(국채 발행)이다. 여기에 향후 복구 비용으로 최대 10조 엔이 든다면 그만큼 빚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반면 세수 확대는 쉽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엔화 강세까지 시름을 더한다.
지진 이후 엔화 수요 등 강세 요인이 재정 악화 등 약세 요인을 능가했기 때문이다. 이때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세수 기반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다만 꼼꼼히 뜯어보면 충격은 단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애초 예상보다 충격이 크겠지만 서둘러 체력 회복에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요컨대 지금의 부정적 분석 결과는 과민 반응일 확률이 높다.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이 무엇보다 파워풀하기 때문이다. 단기 충격파는 있을지언정 장기 치명타는 우려에 그칠 개연성을 높이는 최대 이유는 일본 경제의 자존심이랄 수 있는 특유의 제조업 경쟁력에서 찾을 수 있다.
독보적인 기술력과 압도적인 점유율 덕분이다. 소재 산업을 비롯해 일본이 시장 리더로서의 결정력을 지닌 업종은 셀 수 없이 많다. 피해는 입겠지만 제조업의 근본 파워는 건재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실제 생산 중단된 것도 직접 피해는 극히 일부분이다. 잘 보면 일시적인 조업 중단이지 제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국채 대부분 국민이 보유
재정 위기도 실은 다른 국가와 단순 비교하기가 어렵다. 일본의 국부(2006년)는 부채(5840조 엔)를 빼도 순자산(2720조 엔)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한다. 또 국가 부채 대부분이 국채 형태로 일본 가계가 보유 중이다.
93%의 국채가 우체국예금 등을 통해 나라 안에서 소화된다. 다른 적자 국가처럼 외국 채권자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일 자체가 없다. 또 대외 순채권액(266조 엔)만 GDP의 55% 수준이다. 지진 이후 엔화 강세를 설명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물론 빚이 부담은 되지만 그만큼 안전망이 탄탄하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편에선 지진 이후 피해 복구가 새로운 성장 활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1990년대 이후 복합 불황으로 고질적인 내수 침체에 신음하던 일본 경제로선 일종의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인프라를 재건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액수의 건설 경기가 일어날 것(로이터)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 돈이 있어도 쓰지 않던 일본 가계의 방어적 소비 행태는 지진 이후 바뀔 확률이 높다. 피해가 없는 지역에도 내진 강화 등 지진 여파와 관련된 추가 소비가 기대된다. 또한 1995년 고베대지진 이후에도 애초의 우려를 불식하고 V자형 반등에 성공했던 기억이 있다.
재정·불황 등 경제 체질이 당시와 다르지만 재건 작업이 본격화되면 충분히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결국 지금은 극심한 공포감의 과대 포장과 확대재생산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비관이 낙관보다 훨씬 무서운 법이기 때문이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change4dream@naver.c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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