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차세대 리더 - 한진그룹
한진그룹은 ‘사오정’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차세대 리더군도 50대 중·후반에서 60대 초반을 넘나든다. 이 경험 많고 노련한 리더들이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등을 국내 최고는 물론 세계적인 물류 기업으로 키웠다. ‘재계의 젠틀맨’ 조양호 회장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한진그룹의 ‘날개’들을 소개한다. 한진그룹은 1969년 대한항공을 정부로부터 인수해 항공운송 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한진해운·한진 등을 잇달아 설립하면서 한국 최고의 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4월 현재 공정거래위원회 자산 기준으로 재계 순위 9위(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로 총 39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사는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다. 작년 대한항공은 매출 11조4590억 원, 한진해운은 9조4233억 원 등으로 두 계열사만 합쳐도 매출액이 20조 원이 넘는다. 한진그룹 차세대 리더들의 연령대는 다소 높은 편이다.
대한항공은 부사장 이상 직급의 연령이 60세가 넘고 전무급도 대체로 50대 후반이다. 상무급은 상무A, 상무B, 상무보 등 3단계로 나뉘는데, 상무A는 1950년대 초·중반 세대가 장악하고 있다. 기업 문화도 인위적인 구조조정 등은 거의 없고 연공서열이 중시되는 분위기다.
이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시스템 경영과 맥락을 같이한다. 조 회장은 “조직은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한진그룹의 목표는 글로벌 리딩 물류 기업이다. 이를 위해 물류 기업으로서의 체질 강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그룹의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송기에 대한 투자 및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글로벌 리딩 물류 기업’이라는 비전을 앞장서 실행하고 있는 차세대 리더들은 누구일까. 대한항공
대한항공은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다. 2010년에 사상 최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린 대한항공의 2011년 성장 동력은 ‘차별화된 품질 경영’이다. ‘하늘의 호텔’로 불리는 초대형 최고급 여객기 A380기를 도입하는 것도 ‘차별화된 품질 경영’의 일환이다.
대한항공은 올 연말까지 A380기를 5대 도입하고 오는 2014년까지 추가로 5대를 들여와 총 10대의 A380 차세대 항공기를 운항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대한항공은 현재 39개국 112개 취항 도시를 10년 후에는 140개 도시로 늘려 나갈 계획이다. 이 야심찬 비전을 최선봉에서 이끄는 리더가 지창훈 총괄사장이다.
지 총괄사장은 지난해 인사에서 60대 부사장들을 제치고 57세라는 다소 젊은 나이에 전임 이종희 사장의 뒤를 이어 총괄사장에 올랐다. 대한항공에서 50대에 사장에 취임한 것은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당시 지 총괄사장과 함께 조양호 회장의 자녀들인 조현아·조원태 상무의 전무 승진이 있었다.
이를 두고 재계는 대한항공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지 총괄사장은 항공사에서는 드물게 화물과 여객 사업 경험을 두루 거친 항공 전문가다. 더욱이 대한항공이 6년 연속 화물 세계 1위에 걸맞은 서비스의 질적 향상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 총괄사장을 보좌하고 있는 부사장단은 3명으로 언제든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리더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용원 수석 부사장이다. 서 부사장은 지 총괄사장의 입사 동기로 HR 전문가다.
인재개발관리본부장과 그룹 경영지원실장을 겸임하고 있는 그는 주로 인사·법무·대외 부문 등 관리 업무에서 경력을 쌓아 왔다. 또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 육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회사 측은 “노사관계 안정화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노사문제 전문가”라고 그를 소개했다. 대한항공은 거액의 항공기를 도입하거나 리스하고 있기 때문에 재무 부문이 중요하다. 재무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상균 부사장은 자금부로 입사해 자금운영팀장, 리스크 매니지먼트 TF팀장, 자금전략실장, IR 담당 임원 등을 거친 전형적인 재무통이다.
덕수상고 출신으로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회사 측은 “각종 재무 관련 프로젝트를 맡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라며 “지난해 재무 부문 전사적자원관리(ERP)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라고 밝혔다.
항공사는 재무와 함께 정비도 핵심 부서에 속한다. 강영식 부사장은 정비사로 입사해 항공기술 훈련원장, 원동기정비공장장, 정비품질BU장 등을 거쳐 정비본부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회사 측은 “항공기 정비 분야에서 탁월한 기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라며 “정비 서비스 품질 향상으로 비행 장애율 및 지연 결항률을 현저히 낮췄다”라고 평가했다.
전무급에서는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객실승무본부장 겸 기내식기판사업본부장과 장남인 조원태 경영전략본부장이 주목받는다. 조현아 전무는 1999년 KAL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했다. 이후 대한항공 기내판매팀장을 거쳐 기내식기판사업본부장과 객실승무본부장을 겸임하고 있다.
조원태 전무는 2003년 한진정보통신 영업기획담당으로 입사해 이듬해인 2004년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6년 자재부 총괄팀장, 2009년 여객사업본부장 등을 거쳐 올해 경영전략본부장에 취임했다.
여객사업본부장과 화물사업본부장도 핵심 보직이다. 대한항공의 수익을 책임지고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전임 이종희 사장은 여객사업본부장 출신이고, 지 사장은 여객 사업과 화물 사업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여객사업본부장은 우기홍 상무, 화물사업본부장은 올 초 전무로 승진한 강규원 전무가 맡고 있다. 1962년생인 우 상무는 대한항공 상무A 중 가장 젊다. 여객 사업 본부는 대한항공 고위 경영진의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 이 밖에 운항본부장인 황철 상무와 자금전략실장인 김현석 상무 등도 차세대 리더로 빼놓을 수 없다.
한진해운
한진해운은 한진그룹을 떠받치는 두 축 중 하나다. 그렇지만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타계한 후 조 회장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을 맡으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2009년 지주사인 한진해운홀딩스를 출범시킨 것도 계열 분리를 염두에 둔 수순이다.
김영민 한진해운 사장은 씨티은행 미국 본사 등에서 20여 년간 근무한 영입파다. 2001년 한진해운 자회사인 미국 현지법인 TTI사 사장으로 한진해운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4년 한진해운 부사장에 올랐고, 2009년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합리적인 스타일로 논리 정연하며 추진력이 강하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한진해운홀딩스를 포함해 한진해운의 부사장은 3명이다. 윤주식 경영지원본부장은 기획부문 담당 상무와 재무그룹 그룹장을 거쳐 올 초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선임됐다. 기획과 재무 분야를 두루 섭렵한 한진해운의 차세대 리더로 첫손가락에 꼽힌다.
조용민 한진해운홀딩스 대표이사도 한진해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차세대 리더다. 조 부사장은 씨티은행 출신으로 1995년 한진해운으로 자리를 옮겼다. 벌크 본부장, 대외협력담당 부사장 등을 거쳐 지난해 초 한진해운홀딩스 대표이사 부사장에 선임됐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무리 없이 이끌었다는 평가다. 합리적인 업무 스타일로 업무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컨테이너BU·벌크BU·터미널BU·제3자물류BU 등 4개의 BU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도 차세대 리더 군에 속한다. 매출 구성비가 70%에 달하는 컨테이너BU장은 이원우 부사장이다. 올 초 부사장으로 승진한 이 BU장은 1986년 한진해운에 입사해 구주지역본부장과 기획관리그룹장을 거쳐 2009년부터 컨테이너BU장을 맡았고, 2년 만인 올 초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했을 정도로 CEO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다.
기타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 ‘거인’이라면 나머지 계열사들은 ‘난쟁이’들이다. 규모상으로만 보면 그렇다. 이들 계열사들의 핵심 경영진은 대부분 대한항공 출신이다. (주)한진은 육상 물류 회사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을 제외하고 한진그룹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계열사다.
석태수 대표이사 부사장은 대한항공 미주지역본부장과 경영기획실장을 거쳤다. 한진 대표이사를 맡자마자 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 인수를 성사시키고 중국과 미주 등 해외시장 개척에 성공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원종승 정석기업 대표이사 부사장도 한진그룹의 차세대 리더로 꼽힌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의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기업이다. 원 대표는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한국은행과 국제상사를 거쳐 1985년 대한항공 기획관리실로 옮겼다. 미주지역본부 재무보좌역과 그룹경영조정실장을 역임했다. 정석기업은 향후 한진그룹의 후계 구도 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재무통인 원 대표에게 시선이 쏠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재건 진에어 대표는 뉴욕지점과 자카르타지점 등 대한항공의 해외 지역에서 근무해 온 인물로 중저가 항공사 진에어를 불과 2년 만에 흑자 전환시키며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성수 한진정보통신 대표는 대한항공 전산실 공채 1기 출신이다.
대한항공 정보시스템실 실장을 지낸 정보통신 전문 경영인으로 2003년 한진정보통신 대표이사에 취임해 8년째 CEO로 일하고 있다. 권오상 한진관광 대표는 도쿄여객지점장과 일본지역본부장을 역임한 자타 공인 일본통이다. 취재=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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