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에 일본 동북지방을 진원지로 발생한 대지진은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다. 대지진의 충격이 일본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를 얼마나 위협할 것인지, 대재앙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행동하는 일본인들의 질서의식, 원자력 발전의 안전 관리 문제, 정부 위기 대처 능력의 중요성 등 다양한 논점이 제시되고 있다.
일본은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지위를 작년에 중국에 내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며, 3조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의 순채권국으로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자금 공급처이기 때문에 그 향방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선진 일본 경제에도 극심한 전력 부족, 석유 부족에 따른 수송 물류가 대혼란을 일으켜 산업 활동이 마비되고 국민 생활이 순식간에 도탄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혼란도 전력 공급이 끊겨 발생했다.
물류 차질로 상점에서 식품과 물을 구하기도 어려워진 데다 전력이 부족해 수도권 각지에서 제한 송전이 실시되면서 도쿄의 밤거리가 부분적으로 10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마저 주고 있다고 한다.
마치 일본에 에너지 위기가 닥친 것 같은 현상이다. 막대한 외화 자산을 가진 일본이더라도 필요한 에너지를 제때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석유 한 방울은 피 한 방울’이라는 말도 있지만 에너지는 월마트에 가면 언제나 구매할 수 있는 제품과 다른 전략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 화석연료 자원 고갈 문제가 심각해지고 에너지 위기가 초래된다면 이번 일본과 같은 현상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경험을 통해 실감하는 것은 효과적인 에너지 믹스의 중요성이다. 에너지는 특수한 재화이기 때문에 다른 산업과 같이 효율만을 중시할 수 없다. 일반 제조업에서는 재고나 과잉 설비가 죄악시되지만 에너지에 관해서 보면 겨울의 난방 수요, 여름의 냉방 수요 등에 따라 1년 내내 수요량 안정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충분한 여유 공급 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한 개의 에너지원에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확보함으로써 특정 에너지의 가격 급등, 공급 차질 등 각종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효과적인 에너지 믹스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국을 일률적으로 관리하는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추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풍력·태양에너지·수력·바이오매스 등 지역의 자연 에너지 활용 여건을 살려 최대한 재생에너지의 개발에 주력하면서 에너지 수급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기존의 화석연료 자원을 활용하는 21세기형 에너지 베스트 믹스를 추구해야 한다. 예를 들면 바람이 많은 제주도의 풍력발전 등이다.
일본 원전 사고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대규모 발전 시설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긴 거리를 통과하는 송전망을 구축해 소비지에 전달하는 기존 대형 시스템의 불안정성도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는 지역 차원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시스템을 보완적으로 추가해 전체 에너지 공급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태양광발전 등의 신·재생에너지는 코스트가 높다는 효율성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에너지 문제에서는 효율보다 효과를 중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거듭 제기돼 왔던 안전성 문제에 대한 대처에 코스트 문제가 작용해 회피된 측면이 있으며 이러한 폐해는 결국 최종적인 국가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에너지 문제에 관해서는 지나친 효율성이나 전략적 집중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이 효율을 어느 정도 희생하고 효과를 중시하기 위해서는 결국 에너지를 활용하는 다른 산업의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끊임없이 높여야 하고 전체적으로 안정성을 갖춘 산업 강국을 지향해야 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1963년 일본 도쿄 출생. 1985년 일본 호세이대 경제학과 졸업. 1988년 고려대 경제학 석사. 1988년 LG경제연구원 입사.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수석연구위원 및 재팬인사이트 편집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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