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채환

“어제 최고경영자(CEO) 모임이 있었는데 명함을 갖고 가지 않았어요. 명함이 떨어졌다고 핑계를 댔더니 어떤 분이 ‘어색해서 그렇죠?’ 하시더라고요. 사실 그랬어요. 배우로 살아온 지난 20년 동안 전 얼굴이 명함이었잖아요. ‘대표’라고 떡 하니 찍힌 명함을 내미는 게 여전히 낯설어요. 대표라는 직함 자체도 얼마나 어색한지 몰라요. 지금은 그나마 익숙해졌는데 처음엔 직원들에게 그냥 ‘송채환 씨’라고 부르면 안 되느냐고 했을 정도였죠.”
[스타 비즈 인사이드] 송채환, 연기 내려놓고 골프 비즈니스 ‘티샷’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송채환(43)이 ‘CEO’ 타이틀을 추가했다. 골프를 매개로 한 프리미엄 사교 클럽 ‘럭셔리21(www.luxury21.kr)’을 창업한 것.

회원제로 운영되는 ‘럭셔리21’은 단순 라운딩 매칭만이 아니라 골프장 부킹 서비스, 유명 프로의 맞춤 레슨, 유명인과의 동반 라운드, 각종 이벤트 유치 등 골프에 관한 모든 재미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기존에 없던’ 시장이다.

구력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 실력은 초보인 그녀가 골프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최원일 대표와의 ‘인연’ 때문이다.

“지난해 아이들을 데리고 이은미 씨 콘서트에 갔었는데 최원일 대표도 그 자리에 있었나 봐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그 자체로 눈에 띄었겠지만, 신나게 손 흔들며 콘서트를 즐기는 모습이 상당히 열정적으로 느껴졌대요.

광고 모델 정도겠지 생각했다가 공동대표직 제안을 받고 좀 놀라긴 했지만 최 대표가 골프를 너무 사랑하는 걸 보면서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을까’ 굉장히 궁금했죠. 한편으론 20년간 연기를 하면서 제 일에 대해 염증이 느껴졌을 시기이기도 했고요.

또 연기자란 직업을 평생 하게 될 텐데 지금 한번쯤 살짝 ‘외도’를 한다고 해도 문제될 것 같지 않더라고요. 인생에서 좋은 경험이 될 것도 같았고요.”

사업을 시작하며 다시 잡은 골프채는 그전에 몰랐던 ‘재미’와 ‘여유’를 안겨주었고 연예계 관계자들이 아닌 낯선 세계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 자체가 신선한 공기로 작용했다.

잘 모르던 경제 흐름도 살펴보게 되고, 전혀 관심 없던 주식 시장에도 관심이 가고, 또 요즘엔 일본의 지진 쓰나미를 바라보며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를 생각할 정도로 마인드가 바뀌었다.

럭셔리 서비스로 ‘감동 경영’ 나서

워낙 겁이 없는데다 도전을 즐기는 성격까지 한몫해 새로운 일을 진심으로 즐기게 되자 성과는 저절로 따라왔다. 창업 4~5개월 만에 정회원 수 1500명을 넘어섰고 예비 정회원이라고 할 수 있는 비회원은 4000여 명으로까지 늘어났다.

회원 수 5000명을 목표로 2년 투자를 예상했던 초기 플랜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를 내고 있는 셈. 회사 규모도 빠르게 커졌다. 상담원 20여 명을 포함해 직원 수가 30여 명으로 늘었고 사무실도 경기도 분당에서 강남으로 확대 이전하며 826㎡(250여 평) 건물 안에 숏 게임을 할 수 있는 연습장까지 갖추게 됐다.
[스타 비즈 인사이드] 송채환, 연기 내려놓고 골프 비즈니스 ‘티샷’
“회사 이름이 ‘럭셔리’여서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골프의 대중화예요. 물론 예전에 비하면 골프 자체가 많이 대중화되긴 했지만, 우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재미있고 편하게, 그리고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즐기게 되기를 바라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럭셔리’란 명칭을 쓴 건 그만큼 대중들에게 럭셔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뜻이에요.”

아닌 게 아니라 이미 한희원 프로와 홍진주 프로를 초청해 회원을 대상으로 클리닉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고, 3월 19일엔 국내 최고의 레슨 프로인 고덕호 프로를 초청해 숏 게임 연습 비법을 전수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최고급 호텔에서 디너 만찬을 즐기며 프로에게 레슨을 받고 게다가 선물까지 챙겨주니 오히려 회원들 입에서 “럭셔리 21은 무슨 돈으로 회사 운영을 하느냐”라는 감동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현재 1년 회원비가 30만 원인데 강남 이전과 함께 50만 원으로 상향 조정될 예정이에요. 사실 크게 부담되는 비용이 아니잖아요. 기존 회원들 중에는 30만 원을 투자해 벌써 그 이상의 혜택을 누린 분들이 많을 거예요.

우리는 지금 회사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어요. 창업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프로들을 초청한 이벤트를 몇 번씩 했다는 것도 업계에선 놀랄만한 일이죠. 철저히 회원 쪽에서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럭셔리21’의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수익을 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회원들을 만족시키는 회사라고 입소문이 나면 더 많은 회원들과 함께 큰 꿈을 꿀 수 있지 않겠어요. 다만 한 가지, 우리가 즐길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그걸 얼마나 누리느냐는 회원 개개인에게 달려 있어요.

그걸 다 누리는 분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굉장한 즐거움을 맛보게 될 테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어떻게 해드릴 방법이 없는 거죠.”

공동대표라고는 하지만 회사 경영 전반을 맡아 하다 보니 여간 바쁜 게 아니다. 더구나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과 여섯 살인 아들의 엄마 역할에,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딸 역할에 틈틈이 하고 있는 공부까지 그야말로 울트라 슈퍼우먼의 일상이다.

그나마 남편이 해외에 있어 아내 역할은 쉬고 있다며 웃어보인다.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 재미에 푹 빠져 5~6년간 방송 활동을 쉬었다며 당분간 사업 때문에 연기에 ‘올인’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열정과 사랑을 사업에 쏟을 터”

“‘장군의 아들’로 데뷔해 연기를 진짜 미친 듯이 했었어요. 한때는 드라마 일곱 개를 동시에 하면서 ‘틀면 나온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심지어 공연 중에 팔을 다쳐 깁스를 했는데 깁스를 톱으로 잘라내고 무대에 서기도 했어요.

큰아이 낳고는 1주일 만에, 둘째 아이 낳고는 3일 만에 드라마 촬영장에 나갔을 정도니 말 다했죠. 육아에 전념하면서는 그렇게 내 안에 끓는 열정을 아이들 키우는데 다 쏟았어요. 저는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하늘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만큼 열정과 사랑이 많은 사람이에요.

이제는 사업에 열정을 쏟을 차례죠.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왜 연기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시는데, 연기는 때가 되면 또 하게 되지 않겠어요. 제가 뭘 하든 ‘배우 송채환’이라는 타이틀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람을 너무 믿는 게 오히려 탈일 정도로 사람을 워낙 좋아한다는 그녀가 사람들에게 좋은 만남을 주선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운명적인 일이 있을까. 지난 20년, 연기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그녀가 이젠 새로운 일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